[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소위 세계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의 공통점은 브랜드 이름을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기 있게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명품' 출판사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생 1인 출판사가 있다. 이학영 대표(37)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학영學榮'. 내가 같은 방식으로 뭔가를 창업했다면 물류·화물 회사 '㈜운송'으로 오해받는 불상사를 면할 길이 없겠지만, '학영'은 '배움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매우 거룩하면서도 출판사스러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학영 대표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입학해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현재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 공부 중인 신학생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다. 이력만 보면 어떤 아우라가 뿜어 나오는 것 같은데, 막상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그의 이미지는 좀 가볍(?)다. 페이스북에서 '학도사'라는 계정으로 활동하는 그는, 프로필에 '목사' 직함을 달고 피드를 거룩한 묵상글 따위로 도배하거나 '무슨무슨 대표' 직함을 달고 인간 위의 인간인 듯 젠체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도서출판 학영'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게 당최 공식 홍보물이 맞나' 싶을 정도의 자유분방함과 B급 감성으로 무장한 출판사 관련 소식들이 올라온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함께 일할 번역자를 공개 구인하는 '제1회 천하제일 번역 대회', 차기 출간 목록으로 준비 중인 '학영 더 그레이트 슈퍼 울트라 절기 시리즈', '엿장수 마음대로 바꿨습니다ㅋㅋㅋ 이런 게 1인 출판사 하는 맛 아니겠습니까?' 등이 있다. 쿨타임 돌면 찾아오는 '간헐적 까칠이' 컨셉으로 자신이 몸 담아 온 학교·교계·출판계의 잘못된 문화 등을 유쾌하게 일갈하기도 한다. 아무튼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는 어떻게 1인 출판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출판 일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곧 출간될 세 번째 책을 마무리하고 8월 말 본격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이학영 대표를 7월 27일 서울 중구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쩌리 출판사라 인터뷰하기 민망하다"며 수차례 고사하는 통에 섭외에 애를 먹었다. 이 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는 감은사 이영욱 대표, 도서출판 100 김지호 대표의 인터뷰가 발행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터뷰를 수락했다. "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라면서. 이들과 함께 기독 출판계 '차세대 삼대장'을 자처하는 이학영 대표를 만나 보자.

아래는 실제로 만나 보니 상당히 진중한(?) 편인 이학영 대표와의 일문일답.

'감은사' 이영욱 대표가 공유한 '도서출판 100' 김지호 대표 인터뷰에 '도서출판 학영' 이학영 대표가 남긴 댓글. "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사' 이영욱 대표가 공유한 '도서출판 100' 김지호 대표 인터뷰 게시물에 '도서출판 학영' 이학영 대표가 남긴 댓글. "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학영이라고 한다. '도서출판 학영' 대표이자, 미국 고든콘웰신학교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현직 신학생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며 1년간 온라인 수업만 들었다.

- 더 소개할 내용은 없는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이고, 총신이 낳은 아들이자 '총총' 진고…ㄹ

- 그만하셔도 되겠다.(웃음) 출판사 이름이 대표 이름이다. 주로 명품 브랜드들이 창업자 이름을 따는데. '학영'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나.

출판사 이름을 지을 때는 이게 그렇게까지 큰 포부 같은 걸 나타내는 이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짓고 나니 사람들이 "이름 걸고 차릴 정도면 패기가 엄청나다"고 놀리더라. 그때 가서야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깨달았으나, 이미 그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한 후였다.(웃음) 원래 '갈릴래아',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쇄신)' 등 몇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보다 친근한 '학영'으로 정했다.

사실 '학영'이라는 이름은 20살에 개명 신청해서 직접 지은 거다. 원래 이름은 이진우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족보(?) 같은 걸 보시더니 개명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형하고 같이 바꿨다. '배울 학' 자를 가운데 돌림자로 하고 마지막 글자는 각자 고를 수 있어서 '영화 영' 자를 골랐다. 합치면 '배움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뜻이다. 내 삶의 모토와 맞았고, 짓고 보니 출판사 방향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형은 '백성 민' 자를 써서 '학민'이다. 사실 내가 학민을 하고 싶었는데, 장자에게 우선권이 있다며 형이 '민'을 먼저 가져가는 바람에 남은 후보 중 '영'을 골랐다. 지금은 내 이름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웃음)

- 페이스북 페이지 소개에 '출판사·교회'라고 되어 있더라. 도서출판 학영은 '교회'인가.

아, 그런가. 몰랐다. 고쳐야겠다.(웃음)

인생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방황 스토리

-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됐는지.

아버지의 권유로 공대에 진학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너무 재미없고 적성에 안 맞아서 방황했다. 뒤늦게 사춘기를 겪은 거다. 진로 고민이 꽤 심각해져서 어머니의 권유로 100일 작정 기도를 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상당수 모태신앙인이 그렇듯, 주일만 겨우 지키는 날라리 생활을 했다. 작정 기도 기간에 소위 '하나님 체험'을 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 C. S. 루이스 등의 책을 읽으며 신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당시엔 목회자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신학 자체가 재밌어서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공대를 자퇴하고 수능을 다시 봐서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실제로 만나 본 이학영 대표는 생각보다 진중(?)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실제로 만나 본 이학영 대표는 생각보다 진중(?)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신학교 생활은 어땠나. 학교생활이 출판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하다.

처음 학부에 들어갔을 때는 뭣도 모를 때라 학교 수업을 충실히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고민과 아쉬움이 생기더라.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수업 내용들이 다른 기독교 전통에 배타적·부정적일 때가 꽤 있었다. '같은 기독교인데 왜 이렇게까지 싸우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총신이 추구하는 개혁주의 전통을 배우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부심을 넘어 우월감까지 내비치는 분이 많았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총신이 '애증'의 대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웃음)

학부는 1년을 조기 졸업했다. 좋게 보면 정말 열심히 한 거고, 나쁘게 보면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거다.(웃음) 당시엔 애증에서 '증'이 좀 더 컸기 때문에 곧바로 신학대학원을 가기가 싫었다. 마침 졸업 시즌에 미국에 계신 이모님께서 영어 공부하러 오라고 하셔서 '신대원 무시험 전형 입학(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총신대 학부를 마친 성적 우수자에게 무시험 입학의 기회를 준다 - 기자 주)'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1년 반 동안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연찮게 기독교문서선교회(CLC)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됐다. 원래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CLC에서 1년간 일하면서 책을 만드는 재미를 알게 된 것 같다.

- 결국엔 신대원을 갔다. 그리고 출판사도 시작하게 됐다.

사실 신대원 입학을 아주 포기하진 않았고 미룬다는 생각만 있었다. 다만 무시험 입학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기 때문에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CLC를 퇴사하며 입시 준비를 시작했는데, 당시엔 '왜 무시험 입학을 안 하고 사서 고생하며 시간을 낭비할까' 많이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입시 준비 덕분에 성경을 정말 많이 읽을 수 있었다. 학부 3년 동안 겨우 성경 1독 했을까 말까인데, 신대원 입시 기간에는 거의 한 달에 1독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입시를 치른 게 전화위복(?)이 되어 출판사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시험을 통해 수석으로 입학한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무시험 전형은 장학금이 전혀 없다), 사역하는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과 신대원을 다니며 영어 학원 강사 일로 번 돈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었다. 사실 유학을 생각하며 모은 돈이었는데, 고든콘웰신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준 덕분에 신대원 때 모은 돈이 오롯이 남아 출판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신대원을 졸업할 즈음 친한 친구였던 이영욱 대표가 출판사(감은사)를 차린 게 큰 자극을 줬다. 당시 이영욱 대표가 내게 신학 서적 번역을 맡겼는데, 책을 출간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재밌겠다. 나도 저렇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외적인 상황과 내적인 동력이 이어져 작년 5월 '도서출판 학영'을 차리게 됐다.

두 권의 책을 내며

- 지금까지 두 권을 냈다. 첫 책은 <예수>였는데, 독특하게 한영 합본으로 나왔다. 앞표지부터 읽으면 한글, 뒷표지부터 읽으면 영문이었는데. 왜 이렇게 만든 건가.

<예수 - 한 권으로 읽는 역사>는 작년 7월에 낸 첫 책이다. 사실 작년 9월 유학으로 출국할 줄 알았다. 그전에 한 권을 내고 어느 정도 출판사 틀을 잡아 놓고 싶었다. 그러려면 너무 두꺼운 건 못 내겠다 싶어서 얇은 책을 골랐는데, 이게 또 첫 책이니까 평범하게 내긴 싫었다. 뭔가 눈에 띄는 특이한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

그때 내가 보던 영어 문법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영어 원서로 돼 있고 뒤집으면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다. 신학도 배우고 영어도 공부할 수 있으니, 신학생·목회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첫 책이라 실수가 많았다. 나도 처음이었고 디자인해 주신 분도 단행본 출간은 처음이었다. 주변에서 첫 책은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더욱 주의하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겉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나는 예외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귓등으로 들었다가 크게 후회하고 반성했다. 더욱이 괜히 한영 합본으로 뒤집어 만든다고 해서 몇 배로 고생했다. 인쇄소에서 3~4번 확인 전화가 오기도 했다. 진짜 앞뒤로 찍는 거 맞냐고. 이렇게 하는 거 처음 본다고.(웃음)

도서출판 학영의 두 번째 책 <로마서에 가면> /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44쪽 / 1만 3000원.
'도서출판 학영'이 출간한 두 번째 책 <로마서에 가면> /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44쪽 / 1만 3000원

- 두 번째 책 <로마서에 가면>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판매량으로도 체감이 됐나.

많이 체감했다. 출간한 지 한 달 조금 넘어서 1쇄 1500권을 다 팔았다. 주변에서도 대단한 성적이라고 얘기해 주시더라. 여기저기서 소개해 주시고 알려 주신 덕분에 잘 팔린 것 같다. 보통 로마서에 관한 책을 보면 '이신칭의'나 '개인',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나 '공동체'에 집중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보다 한 단계 더 큰 '하나님의 관점', '우주적인 차원'에서 피조 세계 전체에 복음이 미치는 영향을 논한다. 최근 신약학계에서는 '묵시론적 바울학파'가 주목을 많이 받는데, 저자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역시 그 흐름에 속하는 학자 중 하나다.

- 좋은 책을 고르는 스킬도 중요한 것 같다. 외서 출간 정보나 학계 동향은 어디서 파악하나.

일단 외국 출판사 카탈로그나 해외 신학자들의 홈페이지·블로그 등을 열심히 살핀다. 며칠 시간을 내서 하루 종일 찾아본다. 수백 권을 훑어보다가 괜찮은 책은 미리 보기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렇게 다시 수십 권을 추린 뒤에는 책을 구해 읽어 본다. 사실 이건 다른 출판사도 다 하는 걸 텐데, 나는 이에 더해 '유학생' 신분의 장점을 살리기도 한다. 공부하는 신학교 강의계획서에 중요한 외서가 많이 실려 있으니 그걸 몽땅 다운받아서 살펴본다. 상당수 도서는 강의계획서에서 도서명을 클릭하면 학교 온라인 도서관 전자책으로 바로 연결된다. 꽤 많은 도서를 앉은 자리에서 바로바로 확인·검토할 수 있다.

학영의 고민, 까칠이의 고민

- 도서출판 학영만의 출판 철학, 출판 지론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나.

신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한 기독교 진영·전통이 기독교 전체를 다 담아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나의 기독교 전통을 절대화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상대화하여 다른 전통들과 대화하고 유익한 점을 나누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신학적으로 보수·진보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갈리는 게 싫다. 분명 양쪽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장점이 있는데, 서로가 반대편의 단점에만 주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도서출판 학영'은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책을 기획할 때,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특정 교파(교단)·전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다만 이미 많이 소개된 학자나 익숙한 내용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굳어진 생각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교정하는 책을 선호한다.

또 '학문으로서의 신학'과 '교회를 위한 신학'이 각기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의 연구는 당장에 목회적으로 쓸모가 없다거나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식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자들도 교회와 목회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면 좋겠고. 이런 생각을 갖고 책을 기획하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내적인 측면을 말한 것이고, 외적으로는 책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만드는 출판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겉표지·내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이유가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면, 원곡 가수의 노래보다 더 좋아서 노래를 뺏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나. '아 이 책은 학영에서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웃음)

- 페이스북에서 '학도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금 얘기한 '고착된 신학 풍토'를 일갈하는 '간헐적 까칠이' 컨셉이 인상적인데.

일단 앞서 말했듯이, 같은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누가 더 옳으냐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 싫다. 기독교와 성경이 얼마나 큰데, 하나의 전통으로 다 담을 수 있겠나. 각자가 속한 교파(교단)의 전통과 교리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기독교 전체와 성경 그 자체를 먼저 충실히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자칫 교파주의·교조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본다.

전통을 고민 없이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당장에 '하이루 방가방가'라고 인사하면 사람들 반응이 어떨까. 인사하고 싶은 반가운 마음이야 똑같겠지만 표현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마찬가지로 전통을 살리는 길은 '문자 그대로'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 '재해석'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교회든 신학교든 "개혁이 필요하다"고 자주 말하는데, 결국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이전과는 다른 사고, 다른 관점, 다른 표현으로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 '감은사' 이영욱 대표와 함께 '제1회 천하제일 번역 대회'를 진행했다.

평소 이영욱 대표와 자주 연락한다. 신학적 관심사도 비슷하고 둘 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니 공통된 고민이 많다. 그중 하나가 번역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감은사·학영 모두 난이도가 있는 신학책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번역자 찾기가 유독 더 어렵다. 그러던 차에 아예 공개적으로 구인을 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천하제일 번역 대회'를 열었다.

'감은사'와 '도서출판 학영'이 공동 개최한 '제1회 천하 제일 번역 대회' 포스터. 도서출판 학영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감은사'와 '도서출판 학영'이 공동 개최한 '제1회 천하제일 번역 대회' 포스터. 사진 제공 도서출판 학영

스펙이나 경력은 상관없이, 순전히 번역문만 보자고 했다. 총 열다섯 분이 지원했고 그중 한 분과 실제로 번역자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 분들이 부족했다거나 탈락했다는 개념은 아니다. 그분들과 번역 스타일이 맞는 책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컨택할 수 있다.

기회를 봐서 '제2회 천하제일 번역 대회'도 열 예정이다. 이번에는 1회처럼 제출 기한을 두지 않고, 1년 내내 열어 두고 번역 투고를 받으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1인 출판의 쌈마이(?)와 보람

- 홍보물을 직접 디자인하던데, 출판사 공식 홍보물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장난스러운 문구가 많다. 바뀐 출간 예정 목록을 두고서 "엿장수 맘대로 바꿨다(이런 게 1인 출판사 하는 맛 아닌가ㅋㅋㅋㅋ)"라고 쓴 게시글도 봤다.

사실 난 상당히 진중한 편이다. 글도 각 잡고 쓰면 엄.근.진. 모드로 쓸 수 있다. 정말이다. 믿어 달라.(웃음) 그런데 온라인에서조차 무게 잡고 싶지는 않다. 신학이라고, 기독교 출판사라고 꼭 양식을 갖추고 각을 잡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권위적인 것도 싫고, 그냥 친근한 언어로 일상처럼 가볍게 던지는 걸 선호한다. 내용이 중요한 거지 형식이 무거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게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더 즐겁고. 페이스북 계정 '학도사'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볍게 비친다는 걸 잘 아는데(심지어 학도사랑 내가 동일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 가벼움이 오히려 더 좋다.

말 나온 김에 엿장수 마음 얘기를 하자면, 원래 세 번째 책으로 제이미 클락 솔즈의 <요한복음에 가면>을 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폴라 구더라는 저자의 책을 발견했고, 이걸 먼저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서를 바꿨다. 어차피 순서 바꾼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이 정도 자유도 없으면 기성 출판사랑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다. 사장 맘대로 하는 게 1인 출판사의 거의 유일한 장점 아닌가.(웃음)

그렇게 곧 나올 책이 폴라 구더의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다. 구더는 제2의 톰 라이트라고 불리는 학자여서,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나라>(IVP)를 오마주했다. 심지어 저자 소개까지 비슷하게 했다. 기본적으로 구약부터 제2성전기 문서와 신약까지, 하늘나라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알려 주는 책이다. 정작 성경에 없는데 통념으로 굳어진, 근거 없는 하늘나라 이미지를 교정해 주고, 성경이 말하는 하늘나라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소개한다. 기대하셔도 좋다.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 / 폴라 구더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84쪽 / 1만 6000원 (근간)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 / 폴라 구더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84쪽 / 1만 6000원 (근간)

-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외부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이 '마케팅'이다. 기본적으로 출판사 이름 자체가 더 알려져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다.

마케팅에 있어서는 감사하게도 많은 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분들, 서평을 써 주시는 분들, 그리고 유튜브 채널 '일요책방'이나 '오늘의 신학 공부' 등에서 학영의 책을 소개해 주시곤 한다. 단지 도움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출판사로서도 그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마케팅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 출판을 하며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

내가 배운 학문과 현실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사실 공부만 하면 현장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 출판이라는 도구를 통해 현장과 잇닿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실제적인 결과물(책)이 나오고 주변에서 반응도 오니까, '내가 공부한 것을 이렇게 써먹을 수 있구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신학 공부 자체에도 동기 부여가 많이 된다.

출간 도서에 대한 피드백을 하나하나 다 찾아보는 편인데, <로마서에 가면> 같은 경우 '로마서가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책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로마서를 읽고 싶어졌다' 같은 반응이 많아서 정말 보람 있었다. 또 '가벤타가 여성학자인 줄 몰랐는데 알고 나니 더 좋았다'는 반응도 많았다. 내 기획이 통한 것 같아 기뻤다.

1인 출판사 하고 싶은 너,
내 동료가 되라

- 곧 미국으로 떠나는 걸로 알고 있다. 유학 가서도 계속 출판을 진행할 예정인가.

8월 후반쯤 출국하지 않을까 싶다.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를 마무리하고 떠날 것 같다. 미국에 가서도 틈틈이 출판사 일을 할 생각이다. 사실 출국을 못했을 뿐, 이미 작년 9월 입학해서 온라인으로 1년 공부하며 출판을 병행했다. 물리적인 시간만 따지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모드 전환'이 상당히 어려웠다. 머리 문제인지 마음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공부에 매진하다가 끊고 출판사 일을 하거나, 반대로 출판사 일을 한참 하다가 끊고 공부를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뭐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어쩌겠나.(웃음)

이학영 대표는 곧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출판 일은 어떻게든 계속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학영 대표는 곧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출판 일은 어떻게든 계속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나머지 출간 예정 목록이 있다면 더 얘기해 달라. 나중에 엿장수 맘대로 바꾸더라도.

기본적으로 폴라 구더의 책들을 꾸준히 낼 생각이다. 내년 여름에는 파울라 프레드릭센의 벽돌책 <이교도의 사도, 바울>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아직 잘 소개되지 않은 소위 '바울에 관한 급진적 새 관점'에 속하는 저자다. 흔히 말하는 '새 관점'마저도 '행위의 의'에서 '민족(중심)주의의 의'로 초점을 바꿨을 뿐, 유대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견해다. 프레드릭센은 이쪽 진영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 중 하나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는 '~에 가면' 시리즈 책을 낼 계획이다. 제프리 와이마가 쓴 <Sermons to the Seven Churches of Revelation·요한계시록에 가면>과 함께, 제이미 클락 솔즈가 쓴 <요한복음에 가면>도 낼 생각이다. 나중에 욕먹을까 봐 미리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출간 순서가 엿장수 맘대로 바뀔 수 있음에 유의하셔야 한다.(웃음)

- 주변에서 1인 출판사 시작한다고 하면 권할 텐가.

권하고 싶다. 1인 출판사의 장점은 기성 출판사보다 기획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1인 출판사라고 해도 독자 수요나 판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훨씬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성 출판사에서는 나올 수 없을 책이 1인 출판사를 통해서는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출판사가 하나라도 더 생기면 소개되지 않았을 책이 하나라도 더 소개되는 거니까, 기독교 출판 전체 생태계가 더 풍성하고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 사람의 신학도로서도 응원하고 싶다.

실제로 간혹 1인 출판사 론칭과 관련해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김지호 대표(도서출판 100)나 이영욱 대표(감은사)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되도록 자세히 알려 드리고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학영 독자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신학 서적을 통해 성경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더 현실적이라는 점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우리네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자리 잡은 풍토 때문인지, 신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이미 자리 잡은 왜곡된 통념·선입견이 굳어져 정작 성경 본연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통념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성경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일조하는 출판사가 되고 싶다. '도서출판 학영'이 앞으로 그런 책을 많이 소개하도록 하겠다. 지켜봐 달라.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100', '감은사', '도서출판 학영' 차세대 삼대장을 '특별히' 더 사랑해 주시고 항시 주목해 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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