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8년 9월 8일, 인천광역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기로 예정된 이곳은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개신교인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축제 무대 설치를 막고, 현장을 방문한 성소수자와 앨라이(Ally, 지지자)들에게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가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축제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현장을 방문한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은 개신교인들의 폭력 행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축제 참가자 305명을 대상으로 폭력 피해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98%가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에게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었고, 70%는 그들에게 밀침이나 위협을 당했다. 실제로 폭행을 당한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및 우울 증세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선 개신교인들이 물리력으로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막은 사례로 기록됐다. 북광장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일부는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인천 지역에서 목회하는 ㅌ 목사 역시 경찰에 붙잡혔는데, 그는 이 일로 반동성애 진영에서 나름 유명인이 됐다.

ㅌ 목사는 경찰에 연행되면서 수갑이 채워졌다는 이유로 "동성애 반대하다 수갑 찬 목사"가 됐다.
ㅌ 목사는 경찰에 연행되면서 수갑이 채워졌다는 이유로 "동성애 반대하다 수갑 찬 목사"가 됐다.

ㅌ 목사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를 폭력적으로 막고, 경찰 지시를 따르지 않아 연행됐다. 그런데도 반동성애 진영은 "동성애 반대하다가 수갑 찼다"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수갑을 찬 채 호송 버스에 탄 그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떠돌았다. "동성애 반대할 수 있는 자유가 박탈 된, 동성애 독재국가가 됐다"는 설명과 함께.

딩시 한국교회 연합 기구들도 사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경찰을 규탄하는 성명을 앞다퉈 발표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국기독교연합·한국교회언론회 등은 "공권력을 가장한 부당한 인권침해이며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자유를 억압한 행위"라며 ㅌ 목사를 옹호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는 같은 해 10월 9일 "동성애 합법화되기도 전에 수갑부터 찼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ㅌ 목사는 동성애를 반대하다가 수갑을 찬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를 정당한 이유 없이 방해해 경찰에 연행됐다. 1심 법원도 이를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ㅌ 목사는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인천지방법원은 4월 29일 이를 기각했다.

ㅌ 목사는 1심과 항소심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은 집회를 방해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집회가 11시부터 시작하기로 돼 있었는데, 자신은 오전 7시 30분경 집회 무대 설치를 막은 것이기 때문에 집회를 방해한 게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또한 자신이 행사한 물리력은 "사회적 상당성을 갖춘 정당행위"라고 했다. 양쪽의 충돌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사 물품을 든 사람을 밀쳤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당시 북광장에 펼쳐진 위험한 상황은 합법적 집회를 부당하게 방해한 사람들이 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방해하지 않았다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ㅌ 목사는 자신은 집회를 방해하러 간 게 아니라 평소 돌보던 노숙인들이 걱정돼 현장을 방문한 것이라고 했으나, 법원은 경찰이 제출한 영상으로는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전 결과가 나온 항소심 판결 취지도 1심과 비슷하다. ㅌ 목사는 자신의 행위가 집회 무산으로 이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현장은 집회 주최 측과 반대파가 대치 중이었고, 반대파 사람들의 활동으로 무대 설치가 지연됐으며 따라서 ㅌ 목사의 행위 역시 집회 방해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인천 퀴어 문화 축제의 비윤리성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동기였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책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중략) 피고인이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넘어 폭력적인 방해 행위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없어 재범의 위험성을 간과하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법원은 ㅌ 목사가 폭력적인 집회 방해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없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법원은 ㅌ 목사가 폭력적인 집회 방해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없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ㅌ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를 반대하다가 수갑을 찬 게 아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를 물리적으로 방해해 1·2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번 ㅌ 목사 사건은 동성애 찬반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라도 현행법을 위반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반동성애 진영은 ㅌ 목사의 대법원 상고를 위해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ㅌ 목사는 신앙적 양심을 갖고 동성애가 죄라고 외쳤지, 물리적 방해를 하지 않았다"며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마저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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