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2018년 8월 9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예정돼 있던 날, 사회를 보기로 한 김 소장은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에게 에워싸여 하루종일 옴짝달싹 못하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는 반동성애를 외치는 이들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각종 폭력을 행사한 장이 돼 버렸다. 이들은 축제가 '불법'이라며 직접 심판자가 되어 행동에 나섰다. 참가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주최 측 차량을 훼손하는 등 불법행위가 난무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인이었다.

트라우마가 있는데도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는 물러서지 않고 올해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를 8월 31일 열기로 했다. 경찰과도 지난해 같은 일이 발생하기 않도록 사전 조율 중이다. 극렬한 반대에도 축제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학 소장을 8월 21일 인천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만났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 소장 역시 모태신앙 개신교인이다. 미국에서 인권을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했다. 신앙의 언어로 인권을 설명하고 싶어 <인권 옹호자 예수>(생각비행)라는 책도 썼다. 개신교인이면서 성소수자 지지 운동에 적극 앞장서는 앨라이(Ally, 지지자)인 그는, 한국 개신교가 고민 없이 쉬운 답만 추구하다 보니 성소수자를 악마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를 떠올리면 걱정도 많이 될 것 같다.

작년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지난해 동구청은 온갖 이유를 만들어 주최 측의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이는 반대 진영에게 '불법 집회'라고 주장할 빌미를 줬고, 경찰이 각종 폭력 상황을 묵인하게 만들었다.

시에서도 올해는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안전하게 열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도 지난해에는 너무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올해는 잘하겠다고 하더라. 경찰도 그렇게 두 번 연속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 아무리 준비를 잘한다고 해도 작년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트럭 위에서 봤던 사람들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행진 트럭을 무대 삼아 발언이라도 하려고 올라갔다가 반대 진영에 포위당했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와 함께 있었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손을 뻗고 손가락질했다. 눈빛에서 광기와 살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정말 이게 예수의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눈빛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습일 수 있을까. 사명감과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고민하게 됐다.

-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이 공공장소에 나오지 말고 숨어 있으면 아무 말 안 하겠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광장이든 어디든 사회 구성원과 섞이지 말고 당신들끼리 숨어 있으라는 말 자체가 억압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가정, 학교, 직장, 심지어 광장에서도 나답게 있을 수 없다는 건 억압이다. 다른 소수자에게 적용해도 똑같다. 장애인들이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그들을 돌아다니기 힘들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금 당장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가 불편하지 않게 될 수는 없다.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소수자나 다 마찬가지다. 여성·장애인·이주민·난민·어린이·노인 등을 향해 "불편하니까 저리 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해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빠르게 가고, 내 공간 확보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보기에 더럽고 시끄럽고 불편하고 느려지게 만드는 모든 소수자를 치운다면 이 사회에 과연 누가 살 수 있을까. 여성도 치우고, 성소수자도 치우고, 노인·아동·장애인 다 치우면 진짜 그야말로 비장애인·비성소수자·남성·한국인만 사는 사회가 될 건가.

그런 사회는 자기 자신조차도 언제든 배제당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의 생애 주기 어느 때나 항상 내가 포함돼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양성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정체성만 가지고 살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소수자 정체성이 있을 수 있고, 또 앞으로 소수자가 될지 모른다. 왜 저 소수자를 위해 내 세금을 쓰느냐는 인식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것이라고 관점을 바꿔야 한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를 무산시킨 지역 교인들은 10월 3일 열린 규탄 행진을 막기 위해 거리에 드러누웠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 가시화가 중요한 것인가.

'가시화'는 우리 곁에도 성소수자가 살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일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너무 배타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앨라이들이 먼저 공개적으로 '앨라이 선언'을 하자는 '지지자 가시화 운동'을 한다.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 '여기는 당신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성소수자 옹호 글 올렸다고
다니던 교회에서 쫓겨나
"배타성이 개신교 본질 훼손"

- 개신교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

유학 가기 전에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도 많았다.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이성과 마음껏 교제하다, 이제는 동성에게까지 눈을 돌려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식으로 교회 사람들에게 얘기한 것까지 떠오르더라. 그 정도로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능동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소극적 저항만 했다. 군대 다녀와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청소년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싶더라. 처음에는 심리학과에 들어갔고 처음으로 나랑 성별·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각종 차별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고 싶어 인권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성소수자 친구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친구가 되고 보니까 그들도 정말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사람과 소중한 삶을 보내고 싶은지가 이성애자와 다를 뿐이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편견과 오해가 사라졌다. 좋은 경험은 지식과 신념도 바꿀 수 있더라.

- 한국교회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말만 해도 지탄 대상이 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인 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 나에게 청년부 리더와 유치부 교사로 섬겨 달라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 사역에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회 장로님이 찾아오더니, 내가 소셜미디어에 성소수자 옹호 글을 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다 같이 회의를 했는데, (내가 쓴 글이) 교회 원칙과 맞지 않으니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런 글을 올렸는지 묻지도 않았다. 교회 홈페이지도 아니고 내 개인 공간에 올린 글을 보고 교회 생각과 맞지 않으니 나오지 말라니.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커밍아웃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인권을 지지한다고만 했는데도 그 정도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은 개체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겪을까. 충격이었다. 그 후 모든 인종, 성소수자가 함께 예배하는 미국 교회 찾아서 행복하게 신앙생활했다.

지난해 10월 3일, 인천 남구 구월로에서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무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김지학 소장은 지역의 성소수자 가시화를 위해 각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면, 진리가 흔들리고 교회가 무너진다고 말하는 목사가 많다.

그런 배타성이 '사랑의 종교'라는 개신교의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신념을 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 기제라고 생각한다. 개신교가 유일신을 말하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은 하나라고 주장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예수의 정신과 맞지 않다.

교회가 너무 쉬운 해결책을 원하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값싼 복음을 전파한 대가를 계속 치르고 있는데, 성소수자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잘 모르면서 쉽게 답을 내려는 건 반지성주의다. 성소수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쉬운 해결책은 경계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를 반대한다고 하는데, 지난해 인천에서 마주한 수많은 개신교인의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받는 사람도 사랑이라고 느껴야 사랑인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상대방이 폭력·혐오라고 느끼고 있다면, 자신들이 과연 예수의 정신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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