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하청 업체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평택항에서 동식물 검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 이선호 씨(23)는 지난 4월 22일 오후 4시경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이 씨는 이날 컨테이너 업무에 처음 투입됐다. 당시 현장에는 안전 관리자도, 수신호 담당자도, 안전 장비도 없었다. 검문소에 있던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망한 아들을 뒤늦게 확인했다.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에 이은 또 한 명의 청년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원청의 '안전 관리 소홀'로 벌어진 일이다.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들을 보낼 수 없다"면서 장례를 미룬 채 원청과의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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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 씨를 추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5월 19일 평택 안중백병원에 모여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이날 기도회에는 그리스도인 8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고 이선호 씨를 추모하고 연대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80여 명이 5월 19일 평택 안중백병원 빈소를 찾았다. 이날 추모 기도회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재훈 씨는 연신 고개를 떨구고 순서지를 들여다봤다. 참석자들은 다함께 시편 28편 1~5절을 낭독했다.

"반석이신 나의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귀를 막고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입을 다무시면, 내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같이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주님의 지성소를 바라보며, 두 손을 치켜들고 주님께 울부짖을 때에, 나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중략)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손수 하신 일들을 하찮게 여기는 그들. 그들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멸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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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기도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이 기도문을 읽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여환옥 목사(예수평화교회)는 '탐욕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여 목사는 "탐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사회구조는 취약 계층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 삶의 현장이 위협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몰아간다"고 말했다.

탐욕이 생명을 빼앗아 가는 사회에서는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 이선호의 억울함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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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환옥 목사(예수평화교회)는 무고한 죽음을 만드는 탐욕의 세상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사람을 학대하고 유린하는 무기가 농사를 짓는 도구가 되는 사회였다. 가진 것의 크기가 가치가 되지 않는 삶, 소유가 존재보다 앞서지 않는 삶, 힘의 크기가 억압을 정당화하지 않고 힘없는 이가 자책을 내면화하지 않는 삶, 학살과 유린이 당연시되지 않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이루고자 하는 모습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탐욕의 종말을 선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나.

이날 기도회에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도 참석했다. 류 의원은 "우리는 아직 그를 떠나보내지 못했지만,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위로가 고 이선호 님의 곁에 놓이길 희망한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한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다. 정치라는 무기를 가지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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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울타리가 되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지난 겨울, 우리는 죽어도 되는 목숨은 없다는 생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죽고, 자본의 논리는 남은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오늘도 면목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여기 모인 여러분과 제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일하는 시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오늘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모인 우리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그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참석자들은 '완전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도회에 임했다. 중보 기도문을 함께 읽으며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원청 '동방'의 진심어린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시행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이한별 전도사(촛불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앞으로도 고 이선호 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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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이 장례식장 복도를 가득 메웠다. 자리가 모자라 계단에 앉거나 서서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배가 끝난 후 아버지 이재훈 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뒤돌아 흐느꼈다. 이 씨는 "언론을 통해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다. 오직 이익만을 창출하려는 기업이 돈 10만 원 아끼려다가 내 아이는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이 세상을 하직했다. 다시는 이 땅에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기 사리사욕만 챙기겠다는 악덕 기업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끝까지 싸우고 외칠 것이다. 죽을 각오로, 길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고이선호군산재사망사고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은 5월 20일 정의당 의원단 면담을 시작으로 정치권과의 면담을 이어 나간다. 21일에는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을 찾아 산재 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중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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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이재훈 씨(사진 위). 기도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이선호 씨의 빈소에서 조문 행렬을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이재훈 씨(사진 위). 기도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이선호 씨의 빈소에서 조문 행렬을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고 이선호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 진상 규명 국민 청원 바로 가기: https://bit.ly/3hFyd7C https://bit.ly/2RxszJ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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