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경북 구미에서 나고 자란 스물다섯 청년 김용균 씨는 일자리를 찾아 충남 태안까지 올라왔다. '정규직' 꿈을 가진 그가 입사한 곳은 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 운용·정비 업무를 맡는 하도급 업체였다. 1년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으로 채용됐다. 그는 '힘들지만 배우는 중이니 이겨 내야 한다'며 꿋꿋이 버텼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김 씨를 두고 "솔선수범하는 동료였다"고 말했다.

김용균 씨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도 안 돼 기계에 끼어 숨졌다. 그는 규정상 '2인 1조'를 원칙으로 하는 컨베이어 벨트 운용·정비 업무에 홀로 투입됐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제시하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하도급 업체는 2인 1조 규정을 지킬 수 없었다. 고되고 위험한 일은 외주 업체에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김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12월 20일 충남 태안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열린 기도회에는 교인·시민 9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김 씨의 비극적 죽음 이후 "비정규직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는 내용으로 성명을 발표했던 교회협 비정규직대책한국교회연대(남재영 대표)와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이상호 회장)가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12월 20일 충남 태안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열린 기도회에는 교인·시민 9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 모여 앉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진행한 기도회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목정평 이상호 목사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김 씨의 죽음이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미 사건을 예견하고 작업 현장 개선을 요구했다. 사측은 환경 개선에 돈이 많이 든다며 외면했다. 예견된 사고는 김 씨를 앗아 갔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다. 기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정상적 운행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부품이 된 현실이었다."

김용균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차별 뒤에 있는 '돈에 대한 탐욕'이라고 했다. 이상호 목사는 "적은 돈을 들여서 더 많은 돈을 벌려는 탐욕이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을 강화하고 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인간은 삶의 수단에 불과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존엄한 존재가 몇 푼 돈 때문에 죽음의 위협에 방치되는 현실에 해방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목사는 "지금은 주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형상으로 낮고 천한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이다. 낮은 곳, 고통당하는 곳, 억울한 죽음이 있는 곳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늘 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오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상호 목사는 김용균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차별 뒤에 있는 '돈에 대한 탐욕'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연대사를 발표한 비정규직한국교회대책연대 대표 남재영 목사는 지난 2016년 일어난 구의역 김 군의 참사와 김용균 씨의 죽음이 닮아 있다고 했다. 남 목사는 "두 김 군의 죽음을 판박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모두 꽃다운 20대 청년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혼자 작업하다 참변을 당했다. 회사는 '규정을 위반해서 일어난 사고'라며 변명했다. 장시간 고된 노동환경에 내몰렸다는 현장 상황도 너무 닮았다"고 말했다.

남재영 목사는 컨베이어 벨트가 아니라, 발전사가 직접 운영해야 할 업무를 하도급 업체에 넘긴 외주화가 김용균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남 목사는 "올해 노동계가 선정한 '살인 기업'들에서 지난해 산재로 죽은 37명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한국 전체로 봤을 때는 매달 평균 비정규직 노동자 26명이 죽어 가고 있다. 거의 매일 비정규직이 죽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남재영 목사는 지난 2016년 일어난 구의역 김 군의 참사와 김용균 씨의 죽음이 닮아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제2의, 제3의 김용균을 막기 위해 산재 사고 책임은 원청이 지도록 제도화하고, 안전시설 미비로 일어나는 사고에 기업을 처벌할 수 있게 '살인 기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남재영 목사는 "노동 현장이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날마다 소리 없이 죽어 가는 노동자들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한국 기독교와 목회자들, 비정규직한국교회대책연대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도회를 마무리하며 공동 기도문을 함께 읽었다. 교인과 교인 아닌 사람들 모두 입을 모으고, 이 같은 희생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 돌아보니 부끄럽게도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무관심과 비겁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김용균들의 외침에 귀를 닫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모멸감과 치욕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의 무관심과 비겁함을 용서해 주소서. 다시는 이 땅에서 사람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서 억울하고 원통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기도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살아 있는 신앙인들이 되게 하소서."

태안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용균 씨의 빈소. 뉴스앤조이 장명성

기도회에 참석한 비정규직교회대책연대와 목정평 소속 목회자들은 기도회 직전 태안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용균 씨 빈소를 찾았다.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와 달리 빈소는 한적했다.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 김해기 씨는 경황이 없어 보였다.

그는 목회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던 아들의 꿈을 이뤄 주고 싶다고 했다. 김해기 씨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내 아이 같다. 그들이 또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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