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북미나 유럽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아시아인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굳이 국제 뉴스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곳에 거주하는 지인들 소셜미디어를 보면 그들도 한 번씩은 혐오를 경험했거나 그런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노하고, 근거 없는 혐오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근거 없이 혐오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같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중동 사람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기도 한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한국인 대다수가 보인 강한 거부반응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민낯이었다. 온갖 허위 정보에 휩쓸려 예멘인들을 혐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구에서의 아시아인 혐오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자국의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나라. 한국은 2019년 기준 체류 외국인이 250만 명에 육박해 이미 '다문화 국가'에 진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주민 통역 NGO 호모인테르 박재윤 공동대표는 "학계에서는 이주민이 5%가 넘으면 다문화 국가라고 말한다. 한국에 있는 이주민은 4.9%다"라며 "2005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은, 이민자들을 향한 누적된 차별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다. 우리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 저널 <플랜P>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기사연)가 5월 13일, '아시안 혐오 우리+그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미국에서 ReconciliAsian이라는 평화 단체를 설립한 수 박허(Sue Park-Hur) 목사와 재일 한인으로 마이너리티선교센터를 운영하는 김신야 목사가 포럼에 참여해,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일어나는 아시아인 차별을 이야기했다. 한국 현황은 이주 여성들을 위한 NGO 에코팜므 박진숙 전 대표와 호모인테르 박재윤 공동대표가 이야기했다. 포럼은 줌(ZOOM)과 유튜브 라이브로 3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 박허 목사, 김신야 목사, 박재윤 대표, 박진숙 전 대표.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 박허 목사, 김신야 목사, 박재윤 대표, 박진숙 전 대표.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더 심해졌다. 특히 트럼프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표현하면서, 중국인과 생김새가 유사한 모든 아시아인이 피해를 입게 됐다. 수 박허 목사는 "'Stop AAPI(Asian American and Pacific Islander) Hate'라는 단체 보고에 따르면, 작년 3월부터 1년간 총 6603건의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3월 16일 일어난 '애틀란타 스파 총격 사건'은 충격적인 혐오 범죄였다. 이 사건으로 총 8명이 사망했고 그중 6명이 아시아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언론들은 가해자가 '성 중독자'였다는 경찰 보고서 내용만을 부각해 보도했다. 박허 목사는 "언론에서는 그렇게 얘기해도 모두가 그것이 인종 혐오 범죄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시아인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타깃이 됐다는 사실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재일 한인에 대한 혐오는 익히 알려져 있다. 김신야 목사는 일본 극우 집단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영상을 일부 보여 줬다. 그는 "이런 혐오 집회가 심각해지자 일본에서는 '혐오발언해소법'을 만들어 규제했다. 하지만 이 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어떤 도시에서는 조례를 통해 혐오 집회를 금지했다. 그러자 이들은 '일본제일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헤이트 스피치를 계속했다. 정당 선전을 구실로 조례를 피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가와사키시에 있는 재일 한인을 위한 평생교육 시설 '후레아이관(ふれあい舘)'은 2019년부터 폭파 협박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바퀴벌레, 돼지 같은 조선인들", "코로나 먹고 죽어라"와 같은 각종 혐오 발언이 가득했고, 특히 "죽어라"라는 말이 14번이나 쓰여 있었다. 김 목사는 이 편지를 보여 주며 "이걸 보낸 사람이 가와사키시 공무원이라는 것이 밝혀져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게다가 후레아이관 관장은 5년간 100만 건에 달하는 혐오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일본에서처럼 심각한 범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분명 존재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주민은 참여할 수 없었던 공적 마스크 구입 5부제, 경기도의 외국인 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전수 검사 행정명령 등은 대표적인 차별 사례다. 박진숙 전 대표는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상승하면 화살이 쉽게 소수자에게 향한다. 코로나19와 아무 관련 없는 이주민들도 이상하게 불안감이 커졌다. 기본적으로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치료해 줄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예멘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뿐인데 전국이 난리가 났다. 난민이 되면 나라에서 얼마씩 준다느니, 예멘인들이 무슬림이라 조혼 풍습이 있어 어린 한국 여성들을 덮칠 것이라느니 별의별 허위 정보가 돌았다. 나는 이렇게 근거가 약한 혐오도 급속도로 퍼질 수 있구나 싶었다"며 "결국 난민 신청을 한 519명 중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단 3명"이라고 덧붙였다. 

예멘인들이 내전을 피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온갖 허위 정보가 돌았다. 소문들은 사실이 아니었고 예멘인들은 대부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멘인들이 내전을 피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온갖 허위 정보가 돌았다. 소문들은 사실이 아니었고 예멘인들은 대부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런 '근거가 약한 혐오'는 왜 일어나는 걸까. 나라마다 이유는 다르다. 수 박허 목사는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은 궁극적으로 '백인우월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백인들은 아시아인을 처음에는 '노동력을 빼앗아 가는 위험한 대상'으로 여기다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 시기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우수한 이주민'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이는 정말 아시아인을 인정해서라기보다는, 흑인과 아시아인을 분리해 정복하려는 백인들의 전략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흑인들의 아시아인 혐오 범죄도 일어나고 있다며, 복잡한 상황이지만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백인우월주의라고 했다. 

김신야 목사는 일본인들도 '아시아의 백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근대 이후 미국을 쫓아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자신들 이외 아시아인들은 열등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더불어 사회구조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글로벌리즘 속에서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사회적·경제적 불안과 보수 언론의 꾸준한 '혐오 장사'가 국적·민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까. 박진숙 전 대표는 '단일민족주의'라는 허상, 천민자본주의와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주입된 피해자 의식, 자극적인 콘텐츠로 도배된 소셜미디어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미디어가 이주민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판단 유보'를 이야기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모른다면 판단하고 혐오하기 전에 일단 멈추자는 것이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윤 대표도 "우리에게는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빨리 정답만 골라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라며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정서와 생각과 행동은 모두 연결돼 있다. 어떤 감정이 들었을 때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는 게 그 감정이 혐오로 연결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모두 '지속적으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주민에 대한 허위 정보를 걸러 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그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 박재윤 대표는 "인도계 독일인 철학자 람 말(Mall, Ram Adhar)은 '오버래핑(overlapping)', 즉 '겹침'을 이야기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났을 때 분명 겹치는 부분이 있다. 차이에 시선을 두기보다 공통부분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숙 전 대표는 "희망은 있다고 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한국은 아직 미국처럼 인종차별이 구조화·내재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인종차별 정책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차별이 구조화하기 전에 지금 뭔가 장치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며 "이주민과 만날 기회가 너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럼은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이상 진행됐다. 더 자세한 내용은 6월에 발행되는 <플랜P> 4호에 실린다. 발행 일정은 <플랜P>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