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은퇴하며 교회에서 선교비 12억 원을 받은 목사에게 국세청이 9700만 원을 과세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월 25일 서울 ㅅ교회 김 아무개 목사가 관악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과세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김 목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세무서의 과세가 정당하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김 목사는 1981년 서울 관악구 ㅅ교회를 개척해 32년간 담임목사로 재직한 후 2013년 은퇴했다. 은퇴에 앞서 김 목사는 2012년 안식년을 갖겠다고 했다. 실질적으로 2011년을 끝으로 은퇴한다는 의사를 밝히자, ㅅ교회는 2011년 12월 당회를 열어 김 목사의 퇴직금 규모를 논의했다.

장로들은 퇴직금 40억 원, 15억 원을 받은 다른 교회 목사들 예를 들어, 김 목사에게 12억 원을 지급하자고 했다. 과거 김 목사가 사비로 구입해 교회 명의로 이전한 땅이 있었는데,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보상금 12억 원을 주고 토지를 수용했다. 이 돈을 김 목사 '은퇴 선교비'로 지급하자고 한 것이다.

ㅅ교회는 당회 다음 날 은퇴 선교비 중 일부인 5억 6000만 원을 먼저 지급했고, 2012년에 나머지 6억 4000만 원을 지급했다. 김 목사는 2013년 정식 은퇴했다.

목회자가 은퇴할 때 교회로부터 받는 금원은 과세 대상이다. 많은 목사가 '관행'을 이유로 이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 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목회자가 은퇴할 때 교회로부터 받는 금원은 과세 대상이다. 많은 목사가 '관행'을 이유로 이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 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관악세무서는 교회가 김 목사에게 지급한 12억 원이 과세 대상이라고 판단하고, 2018년 김 목사에게 종합소득세 1억 1146만 원을 부과했다. 김 목사는 세금을 낼 수 없다면서 심사를 청구했다. 국세청은 김 목사가 낸 헌금 1억 3000만 원을 기부금 공제하는 등 세금을 다시 계산해 9769만 원을 부과했다.

그러자 김 목사는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자신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퇴직금에 세금을 물리는 건 부당하다고 맞섰다. 그간 종교인의 퇴직금과 관련해 '비과세 관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행에 맞서 자신에게만 과세한 것은 조세 평등주의 원칙 위반이라고도 했다. 일반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지급받으면 낮은 세율의 '퇴직소득세'를 부과하는데, 자신에게만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기타소득세'로 적용한 것도 비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김 목사의 손을 들어 줬다. 법원은 "종교인에게 과세한 것이 부당하다"는 김 목사 주장이 정당한 게 아니라, 국세청의 과세 판단 근거가 잘못됐다는 판결이었다. 세무서는 ㅅ교회가 김 목사에게 지급한 12억 원은 '인적 용역을 일시적으로 제공하고 받은 대가(인적 용역 소득)'라고 보고 과세 대상이라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교회 유지·발전에 공헌한 데 대한 포괄적 보상의 의미로 지급됐고, 12억 원에 달하는 거액은 일시적 특정 용역에 대한 대가로 보기도 어렵다"면서 '인적 용역 소득'이 아니라 '사례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악세무서는 항소심에서 "김 목사가 교회로부터 받은 12억 원은 '사례금'에 해당해 과세 대상이다"고 주장을 변경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원심을 깨고 김 목사에게 과세한 9700만 원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사례금은 '기타소득'에 해당하며, 받을 때 원천징수하지 않았다면 그다음 해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

세무서가 소송 도중 주장(처분 사유)을 바꿨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이유가 있었다. 김 목사가 원래 내야 할 세금(결정 세액)이 3억 1761만 원에 이르는데 실제 9700만 원만 과세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정당 세액 범위를 넘지 않은 이상 계산 방식 등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위법하다고 취소할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김 목사가 은퇴하면서 받은 돈이므로 '퇴직금'으로 볼 여지도 있었지만, 법원은 퇴직금이 아니라 '사례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김 목사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매월 300~500만 원 상당의 성직비를 받은 것은 맞지만 △교단 헌법에는 근로관계에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급여나 승진, 근무시간 등에 대해 아무 정함이 없고 △교회에서도 별도의 규범으로 정하고 있지 않고 △원고(김 목사)는 별도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고, 교회가 김 목사 재직 기간 성직비를 지급했지만, 근로에 대해 지급한 것이라기보다는 목회 활동으로 인해 다른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사례 내지는 생활 보조 측면이고 △김 목사가 개척한 교회로서 목회 활동 수행 과정에서 교단이나 교회에서 어떠한 지휘·감독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고 △교회로부터 받은 성직비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고 고용 보험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 등에도 가입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종교인에게는 비과세 관행이 존재했다"는 김 목사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종교인의 퇴직 사례금에 관해 비과세 관행이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월 25일 "고등법원 판결은 사례금과 퇴직금의 법적 성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보수 교계 "퇴직금 세금도 깎아 달라"
요구했다가 여론 뭇매
"세금 내지 않고 돈에 집착하는 모습 보일 건가"

"종교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것은 김 목사뿐만이 아니다. 김 목사처럼 목회자가 은퇴하며 교회로부터 받는 돈은 '면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13년 퇴직금 25억 원을 받았다가 10억 원을 소득세로 추징당한 충현교회 김성관 목사가 대표적이다. 김 목사 측은 조세심판원에 불복 심사를 청구하고 "종교인의 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관행이 성립돼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1월 1일로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 이전에 퇴직금을 정산받으면 면세 처리가 되는 줄 알고 2017년 말 서둘러 퇴직금을 중간 정산한 목사도 있었다.

세금을 매기는 규정은 단순하다. 퇴직비, 성직비, 선교비, 전별금 등 명칭과 상관없이 돈이 오갔다면 모두 과세 대상이다. 특히 2018년부터는 종교인 과세가 시행돼, 소득세법 시행령 42조의2 퇴직소득 규정에 '종교 관련 종사자가 현실적인 퇴직을 원인으로 종교 단체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이 포함됐다.

과거 보수 교계는 대형 교회 목회자의 퇴직금 세 부담까지 대폭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사회적으로 거센 지탄을 받기도 했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가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만큼, 종교인들의 퇴직금도 2018년 1월 1일분부터 과세하자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대로라면 1989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재직한 근로자와 목회자는 소득세는 29배나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의 퇴직금이 10억 원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근로자는 30년분 1억 4700여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목회자는 2018년 1년 치만 세금을 내면 돼 506만 원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2019년 2월 정성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낸 이 법안은 여당 일부 의원도 반대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65.8%가 이 법안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고, 주요 일간지는 사설로 보수 개신교 행태를 정면 비판했다. 결국 법안은 본회의로 넘어가지 못하고,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최호윤 회계사(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는 어떤 명목이든 교회로부터 금원을 지급받았다면 모두 과세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3월 3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종교인에 대한 비과세 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목회자들이 원래 내야 했던 세금인 만큼 성실하고 자발적으로 납부하려는 자세를 보여 달라"고 했다.

최 회계사는 "만일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비성경적이고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는 문제라면 목숨 걸고 싸워야겠지만,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안다. 강단에서는 공의와 사랑을 외치면서, 사회에서는 세금 내지 않으려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상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깊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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