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종교인소득 과세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다시 완화해 달라는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2018년 1월 1일 이후 퇴직하는 종교인에 대해, 2018년 1월 1일 이전의 퇴직소득분은 과세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4월 은퇴하는 A 목사가 2017년 12월 31일까지 적립한 퇴직금이 5억 원,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4월까지 적립한 퇴직금이 1000만 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1000만 원에 대해서만 과세하라는 것이다.

가톨릭이나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신교 목회자 수준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퇴직금 제도 자체가 없는 곳도 많다. 개신교에서도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퇴직금은커녕 사례비도 제대로 못 받는 이가 태반이다. 이 개정안은 결국 거액의 퇴직금을 받는 개신교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 그 가운데서도 곧 퇴직을 앞둔 노년층 목회자들이 수혜 대상이 되는 셈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11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연합·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보수 교계 단체들이 이 내용을 골자로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이 단체들은 종교인 과세 도입을 앞두고, 세무조사 금지, 근로장려세제(EITC) 혜택 적용 등을 주장하며 정부와 대치해 온 전력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종교인 과세 자체가 일반 근로소득자보다 세금이 적어 조세 형평성 논란이 있었는데, 이제는 퇴직금 세 부담까지 파격적으로 줄이겠다는 이 개정안이 발의되자 반대 의견이 빗발쳤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와 4월 2일 전국 성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65.8%로, 찬성한다는 20.9%의 세 배 이상을 기록했다.

시민단체들도 연달아 입장을 내놨다. 한국납세자연맹(김선택 회장)은 4월 3일 "세금의 공정성이란, 내가 10억 퇴직금에 대해 1억 5000만 원의 세금을 내면 다른 사람도 1억 50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에서, 세금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세금 도덕성도 무너진다"며 이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교계 단체들도 나섰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배종석·정병오·정현구)은 4월 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된다고 해도 실제로 혜택을 받을 종교인은 많지 않다. 종교인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많은 소득을 올리고 거액의 퇴직금을 받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이런 법안은 필요 없다"고 했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최호윤 실행위원장)은 4월 4일 성명에서 "세무 당국은 그동안의 종교인 퇴직소득 역시 비과세소득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종교인소득이 비과세소득이었음을 전제로 발의한 개정안은 입법 의의가 없다"고 했다. 또 "세법을 개정해 종교인들에게 또 다른 차별적인 특혜를 부여하게 되면, 공평 과세 원칙이 무너져 종교인들에 대한 위화감이 조성될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해 가지는 신뢰감을 다시 한 번 더 바닥으로 떨어뜨릴 것이 자명하다"며 법안 철회를 주장했다.

박주민 "도대체 이 법으로 누가 혜택받나"
채이배 "이미 종교인 과세 자체가 특혜"

박주민 의원(오른쪽)은 "조계종에서도 찬성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원하는 법이냐"고 되물었다. 홍남기 부총리(왼쪽)은 "여야 4당 의원이 공동 발의했기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국회방송 갈무리

4월 4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조세 형평성을 지적하는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 법이 조세 평등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소득이 있는 곳에는 항상 조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오랜 시간 공들여 종교인 과세를 시행한 건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종교인에게 특혜 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조계종에서는 '도대체 이 법으로 혜택받는 사람이 누구냐'는 입장이다. 본인들은 찬성하지도 않고 소수 종교인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도 형평성 문제가 일부 제기된다고 보지만, 여야 4당이 법 개정 의견을 모았기에 동의했다"고 대답했다.

박주민 의원은 "결국 소수 종교인만 혜택 보는 것인데 굉장히 중요한 의견임에도 국민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못했다. 서둘러 입법하기보다는 종교계와 일반 국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본회의 상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채이배 의원(왼쪽)은 종교인 과세가, 근로소득을 인정하지 않고 기타소득 방식으로 과세한다는 점에서 이미 특혜라고 했다. 또한 기타소득 과세자 중 유일하게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준다고 했다. 이번 입법으로 또 혜택을 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국회방송 갈무리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도 홍남기 부총리에게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회계사 출신인 채 의원은 종교인 과세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종교인 과세 법안이 없던 시절에도) 세무 당국에서 근로소득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과세할 수 있던 것인데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채 의원은 "기타소득 과세자 중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주는 경우가 있나. 유일하게 종교인만 받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근로소득으로 과세하지 않다가, 그나마 기타소득에 종교인소득 항목 신설해 아주 적은 액수를 신고하게 했다. 거기에 소득이 적은 사람은 근로장려세제 혜택까지 받도록 법을 만들었다. 종교인에게 굉장한 과세 특례를 준다. 정부가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채이배 의원은 홍남기 부총리가 "여야 4당 합의 내용이라 정부도 동의했다"는 말에도 반박했다. 그는 "법안 통과할 때 제일 어려운 게 기획재정부 반대다. 평소에는 예산 문제 때문에 반대하면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세입이 늘어나는데도 정치권 결정이라고 그냥 국회 의견을 다 받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법사위에 불참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도, 박주민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조세 형평성과 조세평등주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알려 왔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관례상 2명 이상이 소위원회 회부를 요청하면 그렇게 해 왔다. 이 법안은 소위에서 더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의 적극 반대 의견으로, 일단 소득세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은 연기됐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 최호윤 회계사는 4월 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일단 본회의 상정은 지연됐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 법안에 관해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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