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금 한국교회에서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반동성애 진영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단', '반기독교', '교회 파괴 세력'으로 불리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단 신학교 교수들은 현 상황을 보며 침묵하거나 아예 반동성애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교수들의 성경 해석은 기독교인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신학적 근거로 사용된다.

박경미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성경 구절을 무기 삼아 사람의 존재를 지우는 모습을 보며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0월 5일, 청어람ARMC(오수경 대표)와 도서출판 한티재(오은지 대표)가 함께 연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한티재) 북 콘서트에서 책을 쓰게 된 계기와 책 내용 등을 나눴다. 동성 성행위 본문에 대한 주해와 해석을 담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대장간)를 펴낸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도 북 콘서트 패널로 나와 이야기를 보탰다.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북 콘서트가 10월 5일 열렸다. 청어람ARMC 박현철 연구원(맨 왼쪽)이 사회를 맡고, 박경미 교수와 김근주 교수가 나와 이야기 나눴다. 사진 제공 청어람 ARMC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북 콘서트가 10월 5일 열렸다. 청어람ARMC 박현철 연구원(맨 왼쪽)이 사회를 맡고, 박경미 교수와 김근주 교수가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제공 청어람 ARMC

사회를 맡은 청어람ARMC 박현철 연구원은 먼저 두 사람에게 어떻게 이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박경미 교수는 "성소수자 문제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성 문제가 인간에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보수 개신교의 극렬한 반동성애 운동을 보면서 '가만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됐다"고 말했다.

김근주 교수는 성소수자 기독교인들을 직접 만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성소수자 기독교인들을 초대해 그분들에게 온갖 질문을 한 적 있다. 그러면서 '아, 이분들은 존재구나. 사람으로서 여기에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다음부터는 동성애를 정죄한다는 성경 본문이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분들을 통해 성경을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에서는 보수 개신교가 동성애 정죄를 정당화할 때 쓰는 성경 본문 6개를 다루고 있다.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사사기에 나오는 레위인의 첩 이야기, 레위기의 성결 법전 등은 이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 구절들이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동성애'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신학계에도 널리 알려진 해석이다.

하지만 로마서 1장 26-27절을 놓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퀴어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할 때 바울이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박경미 교수의 견해는 달랐다. 바울이 동성 간 성적 행위, 성적 욕망을 느낀 것을 부정하게 봤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 본문이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를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동성애 반대 근거로 내세울 수 있는 본문이라는 것이다.

박경미 교수는 성소수자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많이 가진 우리는 바울보다 더 바울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박경미 교수는 성소수자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많이 가진 우리는 바울보다 더 바울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그럼에도 박경미 교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부분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했다. 바울 주변에는 이성애 커플처럼 서로에게 헌신하는 동성 커플이 없었겠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바울이 살아 있을 때, 사랑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인간으로서의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현대인이 바울보다 더 많은 객관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돕는 플러스 요인이라고 했다. 박 교수가 책 내용의 절반을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할애한 이유다.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여러 과학적 정보와 지식을 바울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가 누구에게나 미친다고 했다. 시대의 편견 때문에 그것이 성소수자에게까지 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유리한 위치 아닌가. 그렇기에 바울의 복음 선포를 바울보다 더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울보다 더 바울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근주 교수는 시대 문화의 변화에 따라 성서 해석이 바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다며, 바울이 여성의 머리에 관해 언급하는 성경 본문을 예로 들었다. 지금 여성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여성의 머리 길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성서 해석을 바꾸는 건 문화의 변화다. 외부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달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근주 교수는 문화의 변화에 따라 성서 해석도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김근주 교수는 문화의 변화에 따라 성서 해석도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이번 북 콘서트는 실시간으로 130명이 지켜봤다. 시청자들은 반동성애 강연 일색인 한국교회 상황에서 이런 행사가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 댓글로 궁금했던 점을 계속 질문하기도 했다. 신학적인 궁금증이 담긴 질문도 있었지만, 혐오 설교를 일삼는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는, 신앙생활과 직결된 고민도 있었다.

김근주 교수는 단호하게 "(그런 교회는) 더 다니지 말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만난 트랜스젠더 기독교인도, 다니는 교회와 목사는 다 좋은데 설교 시간에 동성애를 비판해 괴로워한다고 했다. 그는 "그분에게도 그 교회 다니지 말라고 했다. 못된 말은 자꾸 들으면 우리 안에 남는다. 건강할 때는 괜찮은데, 삶이 괴로우면 그때 들은 못된 말이 떠오르면서 '혹시 하나님이 나의 이런 모습 때문에 이러시나' 생각하게 된다. 존재를 부정하고 정죄하는 이야기는 속사람을 죽게 만든다. 계속 듣는다고 더 강해지지 않는다. 그런 교회 매여 있지 말라"고 권했다.

박경미 교수도 김 교수 의견에 동의했다. 박 교수는 "성소수자도 인생에 연습이 없다. 좋은 시절을 이렇게 괴롭게만 보내는 건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성소수자들에게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희망을 갖고 즐겁게 살길 바란다. 거리로 나와 친구를 찾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좋은 공동체를 일구면 좋겠다. 아픈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내가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혼자 예배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