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X IVP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서 우수 서평으로 뽑힌 나연수 님의 글입니다. - 편집자 주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전 세계에 배가 고파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겪는 고통을 구체적 숫자와 사례로 접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 세계 70억 인구가 다 먹고도 남을 양식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몇몇 기업·독재자·나라의 존재를 모두가 알지만, 그런 상황을 바꿀 수 없는 현실도 괴로웠다.

일레인 스토키의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IVP)을 읽으면서 장 지글러 책이 떠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여성이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폭력과 차별의 종류만 해도 적지 않았다. 폭력이 지속되는 이유가 가부장제에 근거한 권력관계에 있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그러나 빈곤과 기아처럼 이유를 알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 일레인 스토키 지음 / 양혜원 옮김 / IVP 펴냄 / 440쪽 / 2만 1000원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 인류의 상처, 여성 폭력> / 일레인 스토키 지음 / 양혜원 옮김 / IVP 펴냄 / 440쪽 / 2만 1000원

저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끔찍한 폭력을 나열했다. 성 감별 낙태, 여성 성기 훼손, 아동 강제 결혼, 수치에 대한 보복 살인, 가정 폭력, 인신매매와 성매매, 강간, 그리고 전쟁과 성폭력…. 전혀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각각의 폭력을 나열해 놓은 목차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에는 이 말고도 고통스러운 일이 넘쳐 나는데, 거기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에 나열된 끔찍한 폭력을 더한 채 살아야 하니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폭력들은 이미 세계적 유행병이다. 코로나19로 사람이 죽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 끔찍한 유행병에 목숨을 잃어 왔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다. 코로나19는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이 유행병은 유독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토록 끔찍하고 차별적인 폭력 앞에 자유로운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자세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많은 통계와 권위적인 자료를 폭넓게 인용했다. 각각의 폭력을 과장하지 않고 서술한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성기 훼손과 아동 결혼,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성매매와 강간에 대한 글 일부를 인용해 본다.

"전 세계적으로 최대 1억 4000만 명의 여성이 여성 성기 훼손, 절단을 경험했다. (중략) 가위가 내 살을 네 번 자르는 그 희미한 소리, 네 번의 꿰맴, 소변을 보거나 참을 때의 그 불쾌한 통증, 그에 수반되는 합병증, 자르고 꿰매고 자르는 그 악순환의 악몽들과 이 세습된 고통의 유산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59쪽)

"세계 어딘가에서 3초마다 18세 이하의 여자아이가 결혼을 한다.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날마다 3만 9000명의 여자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 (91쪽)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을 당하는 아이는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여자아이로서의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중략) 여성과 여아에 대한 폭력이며 학대, 강간, 착취다. 강제 결혼은 유괴다." (95쪽)

"성매매는 여성이 자유 시장경제에서 돈을 버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포주, 사창가 주인, 포르노 제작자, 여행사, 클럽 주인, 정부가 여성의 몸으로 돈을 버는 문제다." (186쪽)

"지구상 그 어떤 사회도 강간이 없는 사회는 없다.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에도 있고, 가난과 문맹으로 고생하는 문화에도 있고,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도 있고, 밝은 태양의 해변에서도 있다. 수도와 시골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가정, 학교, 직장, 스포츠센터, 종교 기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197쪽)

인용과 통계가 많으면 글이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확실한 팩트의 나열은 어떤 소설보다도 내 눈길을 잡아 두었다. 가슴을 짓누르고 한숨과 고민을 유발했다.

이토록 잔인한 폭력을 그동안 어떻게 변명해 왔는가.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과학적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설명인데, 어느 하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진화론적 가설을 두고 연구해 적지 않은 결과물을 발표했다. 대개 '남자는 본능적으로 그렇다'는 식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와 결과가 도덕성의 의미를 생존과 재생산으로 축소시켰다고 평가하고, 그러한 연구들에는 자아가 없다고 단언한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말이다.

사실 위와 같은 변명은 굳이 과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교회를 포함한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변명하는 사람들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라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폭력을 가하겠다는 말로 들려 섬뜩하다.

종교인들도 여성 폭력에 대해 변명을 내놓았다. 저자는 대다수 종교가 평화를 추구하고 가르치면서도 여성 폭력을 적극 금하거나 예방하는 조처를 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명예와 신의 이름이라는 명분 아래 살해당하는 아내와 딸의 숫자는 매해 수만 명에 달한다. 대다수 가해자는 합당한 심판을 받기는커녕 용감한 행동을 했다며 추앙까지 받는다. 사회뿐 아니라 집안에서조차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공적 가르침을 들어 본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저자는 여성 폭력에 대해 많은 통계와 생생한 인터뷰, 권위 있는 자료를 인용하면서 독자가 이 지독한 현실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만들지만, 깜짝 놀란 만큼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인류가 불운한 상태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죄가 최종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학대와 폭력의 패배적인 소용돌이 안에 영원히 갇혀 있지 않다.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신학은 죄를 넘어서 구원의 신학으로 나아간다." (364쪽)

아멘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그동안 남성들이 본능과 종교를 변명 삼아 저질러 온 끔찍한 만행을 철저하게 '죄'로 보았기 때문이다. 죄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덮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허무한 외침만 난무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화평과 자유는 진정 누릴 수 없게 된다. 죄는 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저지르는 사람도 가둬 버리니까.

여성에 대한 폭력은 너무 가까워서 알아보지 못하고 흔해서 그냥 지나쳤던 죄의 문제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더는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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