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넽 선교사는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살폈다. 김선자 씨(사진)는 황 선교사가 세운 수풀원에서 자랐다. 김 씨는 정 목사 부부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황자넽 선교사는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살폈다. 김선자 씨(사진)는 황 선교사가 세운 수풀원에서 자랐다. 김 씨는 정 목사 부부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 출신 미국인 고 황자넽 선교사는 6·25 전쟁 후 오갈 곳 없는 고아를 보살피는 사역을 했다.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한국복음선교회'를 설립하고, 학교와 시설 등을 세워 고아를 챙겼다. 1960년경에는 경기도 광명시에 수풀원이라는 보육 시설을 세우고 여아 24명을 돌봤다.

아이들은 방 7개가 있는 단독주택에서 지냈다. 평일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쉬거나 시설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미국 후원자들에게 받는 지원과 관심 덕분에 그나마 나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후원자들이 직접 선물을 사 들고 방문하기도 했다.

황 선교사는 연로한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보살필 사람을 구했다. 1973년경, 부부 관계인 정 아무개 목사와 송 아무개 씨가 관리인으로 채용됐다. 당시 목사 부부는 20대였다. 정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는 전도사 신분이었다.

37년이 지난 현재, 당시 수풀원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정 목사 부부에게 갖은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도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취재에 응한 수풀원 출신들의 증언은 구체적이었다. 이들은 정 목사 부부가 수풀원에 온 후로 평범했던 삶이 지옥으로 바뀌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시설 관리인으로 온 정 목사 부부
"상습적으로 아이들 때리고 수치심 줘
배고파서 목사 부부 버린 음식 먹기도"
수풀원에서 지낸 이들은 정 목사에게 학대뿐만 아니라 성폭력도 당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수풀원에서 지낸 이들은 정 목사에게 학대뿐만 아니라 성폭력도 당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김선자 씨(가명)는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황 선교사는 김 씨가 신생아일 때부터 키웠다. 김 씨는 정 목사 부부가 온 뒤로 매질에 시달렸다고 했다. 목사 내외가 기분이 안 좋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단순히 쥐어박거나 꼬집는 수준이 아니었다.

"매를 맞는데 피비린내가 날 정도였어요." 김 씨는 40년이 흘렀지만 매 맞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시절 꿈도 자주 꾼다면서 괴롭다고 했다. 또 하나, 김 씨가 그 시절을 회상하면 잊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배고픔'이다. 미국에서 후원자들이 보낸 물품과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는데, 정작 아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쌤(정 목사)하고 에바(정 목사 아내)는 따로 살았는데, 아이들을 파출부처럼 부려 먹었어요. 우리는 저들이 먹고 버린 사과 껍질과 생선 가시를 가져가다 몰래 먹었어요. 그러다가 들키면 종일 맞았어요. 심지어 강아지 주는 음식이 우리가 먹는 것보다 좋았어요. 우리는 늘 배가 고팠어요."

수풀원에서 함께 자란 김진숙 씨(가명)도 마찬가지였다. 정 목사 부부가 온 뒤로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가는 게 가장 행복했고, 하교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눈 오는 밤이었어요. 쌤이 마당에 전원 모이게 한 후 주먹을 쥐고 엎드리게 했어요. 그리고 각목으로 사정없이 내리쳤어요. 그날 생리 중이었는데, 너무 아파서 쓰러졌어요. 쌤은 넘어졌다고 더 때렸어요. 에바도 다르지 않았어요. 말대꾸했다고 뺨 때리고 학대하고 그랬어요. 에바도 우리처럼 고아 출신인데도 막 괴롭혔어요."

김진숙 씨가 생각하는 정 목사 내외는 두 얼굴의 존재였다. 황 선교사가 있을 때는 절대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황 선교사가 미국에 가거나 자리를 비울 때면 어김없이 매질과 폭행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고,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생각조차 못 했다.

정 목사 부부는 일요일마다 시설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했다. 김진숙 씨는 그때마다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 사람은 우리를 때리고 기도가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예배 마치고 돌아가면 우리를 때리고, 두들겨 팰 텐데… 또 무슨 이유로 맞을까 싶었어요."

황순영 씨도 정 목사에게 당한 폭행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겨울에 연탄 화로가 고장 났을 때, 정 목사가 이를 빌미 삼아 자신과 또 다른 아이를 상대로 몽둥이질했다고 말했다.

"쌤이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100번을 세라고 한 다음 때렸어요. 용서해 달라고 해도 계속 때렸어요. 매를 너무 많이 맞으니까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그리고 창고에 하루 이틀 가둬 놨어요. 그때가 초 4~5학년 때인데 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를 이렇게 독하게 대할 수 있는지…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요."

이들은 정 목사가 10대였던 자신들을 추행했다고도 증언했다. 누군가가 잘못을 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옷을 강제로 벗겨 수치심을 주었다고 했다. 황 씨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황 씨는 수풀원에서 퇴소한 직후, 자신이 겪은 일을 일기장에 써 놓았다. 30여 년 전 일기장에는 당시 황 씨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써 있었다.

"아빠(미국 양아버지 – 기자 주), 난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아주아주 죽고 싶어요. 벗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 윽박지르는 거예요. 참, 전도사로서 그런 짓을 할 짓이나 돼요? 하는 수 없이 팬티만 입은 채로 보일러실에 갇혀 버렸어요. 그리고 이틀 후 나와서는 모든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단단히 주었어요. (중략) 정말 죽고 싶었어요. 이 세상 아니 그보다 수풀원이 정말 지옥같이 느껴졌어요. 왜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했는지요. 너무너무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해요."

황 씨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정 목사에게 성추행도 당했다고 말했다. "자매들은 한 명씩 밤마다 불려 가서 쌤 마사지를 했어요. 내가 마사지를 할 때였는데, 그 사람이 내 몸을 만졌어요. 아주 불편했어요. 갑자기 쌤이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길래 겁이 나서 나왔어요." 김선자 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사지할 때 강제로 쌤 성기 주변을 만지게 했어요. 저항했다가는 큰일 나니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다.

성폭력은 개별적으로 가해졌고, 당시 아이들은 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그제야 하나둘 피해 사실을 언급했다.

정 목사가 오랫동안 강간을 저질렀다는 폭로도 있었다. SBS '궁금한이야기Y'는 10월 9일 자 방송에서 수풀원 실태를 다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수풀원 피해자와의 인터뷰도 함께 내보냈다. 피해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4년간 정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에서 "나 스스로 창녀라고 생각했다"면서 "하나님만 아신다. 말을 웬만하면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는 피해자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언론에 더 노출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정 목사에게 4년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SBS '궁금한이야기Y' 영상 갈무리
정 목사에게 4년간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SBS '궁금한이야기Y' 영상 갈무리
피해자에겐 사과, 언론엔 '전면 부인'
피해자 측 "공개 사과하고, 목사 관둬야"
교단 "이미 퇴임, 법적으로 조치 못 해"

수풀원 출신 피해자들은 정 목사 부부의 만행이 10년간 지속됐다고 했다. 수풀원은 황자넽 선교사가 1982년 숨을 거두면서 폐쇄 수순을 밟았다. 정 목사 부부는 수풀원이 폐쇄되기 전에 시설을 먼저 떠났다. 피해자들은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당시 정 목사 부부의 추문이 한국복음선교회로 흘러간 것 같다고 말했다.

수풀원 피해자들은 정 목사가 현재 수풀원이 있던 경기 광명시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 목사가 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한기채 총회장)에 8월 13일 진정서를 보내 조사와 처벌을 요청했다. 8월 18일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정 목사 부부를 처벌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정 목사는 9월 1일 문제 제기에 앞장선 김선자 씨에게 직접 연락해 왔다. 김 씨가 "지금까지 사과도 안 하고 우리가 악몽 속에서 살고 있는 걸 아느냐"고 묻자, 정 목사는 "젊었을 때 했던 일이라서 미안하다", "내가 그때 그거 해서 잘못했으니까"라고 말했다. 왜 다른 자매를 성폭행했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우습게 생각하고 그런 거는 아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줬으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하자, 정 목사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의혹을 부인했다. 폭로가 계속되자 교회에서 정년 사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 목사는 의혹을 부인했다. 폭로가 계속되자 교회에서 정년 사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 목사는 과거 일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듯 했지만, <뉴스앤조이> 취재에는 정반대로 대응했다. 정 목사에게 연락을 취하자, 아내 송 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11월 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SBS 방송에 너무 못되게 나왔는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방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경찰에 고소했다. 목사님과 나는 심적으로 힘들어서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 주장과 관련해, 송 씨는 "그거 다 아니다. 나도 같은 고아다. 그걸 왜 들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또 "걔네가 돈을 요구했다. 너무 끔찍하다. 자기들끼리 (돈을) 나눠 갖겠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면 인터뷰를 요청하자, 송 씨는 정 목사와 의논한 다음 연락을 주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선자 씨는 "진실이 드러났으니 안 괴로울 수가 있겠나. 정 목사 부부는 두 달 정도 괴로웠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40년 넘게 고통을 겪어 왔다. '돈을 요구했다'는 허위 주장을 하는 거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두 사람은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정 목사는 목회직을 관둬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정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11월 8일 경기도 광명에 있는 ㄱ교회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교회 한 집사는 기자에게 "목사님은 지난주에 사임하셨다. 교회에 나오시지 않는다"며 "언론 보도 때문에 사임한 건 아니다. 교단법에 따라 70세 정년 퇴임한 거다. 그동안 후임자를 뽑지 못해 사임이 늦어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피해자들이 보낸 진정서를 받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측은 정 목사가 소속된 지방회에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지방회장 이 아무개 목사는 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총회가 알아보라고 해서 그분에게 직접 물어봤다.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 이미 정년 퇴임을 한 상황이고, 우리가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사임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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