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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지난 20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분별 -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혼자 결정해야하는 당신에게, 회중이 사라진 교회를 위한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대장간)에는 20년간 내가 읽고 감동받은 모든 책이 거의 다 망라돼 있다. 마치 영성 대사전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실감 나는 책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이 책은 핏속에 용해돼 내 일부분이 돼 버린 소중한 배움과 경험을 상기해 준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그래서 고맙고 반갑다. 199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영성'에 반응했던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감동을 경험할 것이다.

탁월하고 실증적인 책이다. 자연스럽게 독자를 공감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섬세하고 날카롭게 독자를 현실로 인도한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 같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난 감동마저 느껴진다. 너무도 큰 기쁨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을 읽어 보면, 내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분별 -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당신에게, 회중이 사라진 교회를 위한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 / 박준형 지음 / 대장간 펴냄 / 464쪽 / 2만 원
<분별 -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당신에게, 회중이 사라진 교회를 위한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 / 박준형 지음 / 대장간 펴냄 / 464쪽 / 2만 원

하나님과의 동행은 분별이다. 분별은 바로 영성의 총화다. 저자가 영성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을 망라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영성은 모호하기도 하다. 오래전 어떤 분이 나에게 <무지의 구름>을 개신교 버전으로 번역해 보라고 권유했다. 영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무지의 구름>은 심오하다. 그런데 영성과 관련해서 거의 모든 서적과 이론이 등장하는 이 책 <분별>에는 <무지의 구름>이 없다. 이 점이 나에게는 더 없이 인상적이다. 이 책이 모호하지 않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영적 성숙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분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자를 인도한다. 말뿐이고 경박한 개신교에 이런 책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다.

하나님의 학교

나는 오래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이 책에 나오는 '분별의 시간'을 경험했다. 성령의 이끄심이었다. 나는 내 안에 있던 경쟁하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 성공을 향한 욕망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가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책 '성령과 분별' 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입학허가서를 받아든 나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유학과 학위를 포기했다. 그 후 나는 계속해서 몰락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실패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내가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별> 저자도 나와 같은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학교는 커지는 곳이 아니라 작아지는 곳이다. 성공하고 출세하는 길이 아니라 실패하고 낮아지는 길을 가게 하는 곳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일꾼을 당신의 학교에 입학시켜 가르치시고 훈련하신다. 그 학교에서 푸코가 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곳에 계시기에 자신이 더 내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불러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신다.

그 길은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다. 그러므로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분,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기를 원하는 분만 이 책을 읽고 하나님과 동행(분별)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걸으시길 바란다. 재미있고 유익하지만 무서운 책이다.

최태선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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