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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네 명의 경찰관이 조지 플로이드 씨를 무력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8분 46초. 이 짧은 시간,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거리에서,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경찰이 소중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당시 주변에 있던 증인들이 이 장면을 녹화했고, 미국 전역에,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왜, 어째서 경찰은 저항하지 않고 "숨을 쉴 수 없다"며 살려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던 플로이드 씨 목소리를 영원히 침묵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플로이드 씨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그는 이토록 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었을까. 이 사건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조직적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는 폭력의 역사가 밝혀진 사건이다.1) 유색인종에게, 특히 흑인에게 미국은 백인우월주의에 따라 침략당하고, 억압되고, 폭력으로 얼룩진 곳이기 때문이다.

조직적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항해 2013년 시작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현재 플로이드 씨를 추모하고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등 범국가적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점은 플로이드 씨의 죽음 이전에도 흑인들을 향한 불의한 범죄행위가 반복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트레이본 마틴 사건이다. 자율방범대원이 그가 후드 티셔츠를 입고 동네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해 무참히 총살했던 사건이다. 올해는 조지아주에서 달리기를 하던 아마드 알버리가 그를 범죄자로 오인한 전직 경찰관에 의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1950~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은 1964년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 제정을 이루었다. 그 결과 인종, 출신 국가, 여성, 종교에 따른 차별을 불법화하는 법적 장치를 만드는 쾌거를 이룩했다. 흑인과 라티노, 아시안, 미국 원주민, 혼혈아는 백인이 식사하는 식당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됐고, 버스 좌석에 함께 앉거나 같은 학교에 등교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는 뿌리 깊은 반감 및 백인우월주의를 없애지 못했다. 유색인종은 매일 노골적인 또는 내포된 인종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은 18세기부터 (더 정확하게는 유럽 정복자가 미국 원주민의 땅을 침략했던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고질적 문제 인종차별이 지닌 폭력성에 대항하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한 남성이 'Black Lives Matt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플리커
사진 출처 플리커

일주일 넘게 전국에서, 그리고 이제는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는 비폭력을 지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비폭력 시위 가운데 방화나 약탈 또한 포착되며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 시위를 지지하고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행태의 잘못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다시는 1992년 LA 폭동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위 중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을 막을 평화적 방안을 대비하고 있다.

동시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수많은 형태로 표출되는 인종차별 또한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이 폭력을 경험했던 미국 원주민을 비롯해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형성할 때 노예로 살았던 흑인, 무임금노동자로 지낸 동양인 등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질러진 끔찍한 폭력은 매일 유색인종의 몸과 마음, 정신에 잠식하며 숨 쉬는 것마저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폭력과 비폭력의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폭력이다.

6월 1일 워싱턴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했던 통행금지령 시간 이전에 시위대를 향해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이와 동시에 그는 시위를 무력으로 막지 않는 주지사들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연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자주 예배했던 세인트존스성공회교회를 방문해, 그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공연을 펼쳤다. 이 교회를 관리하고 있는 메리안 버디 성공회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에 격분을 표했다. 아픈 자들과 함께하길 바라셨던 예수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행위가 D.C.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사랑의 언어인 성경과 믿음의 장소가 기만당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고(창 1:27) 우는 자와 함께 우셨다(롬 12:15). 그렇기에 인종을 뛰어넘어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이다. 미국 역사에서 인종차별은 많은 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줬다. 무고한 흑인이 여전히 목숨을 잃고 있는 2020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가 전하고자 하는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고 울며 지지를 보내자. 우리 다음 세대는 인종차별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 더 희망 찬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주영 / 미시간대학교

1) 조직적 인종차별(systemic racism)은 사회 및 정치적 기관에 의한 인종차별 형태로 흑인, 라티노, 미국 원주민과 같은 유색인종이 교육, 임금, 보건, 주택 공급, 형사 사법 체계 등에서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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