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요 18:36)."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마 26:39-41)!"

1.

아픔, 그것도 부당하고 억울한 아픔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픔은 근원적 치료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그곳에서 치유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도 이와 같은 온전한 치유를 위한 운동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저 높은 산 위에서나 구름 위에서 찾으려는 것은 헛된 짓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십니다. 그 고통의 신음 소리를 직접 들으시면 바로 고통의 역사 현장으로 달려가시지요(출애굽기 3:7-8). 그래서 부당한 고통이 있는 역사 현장은 항상 신학과 신앙을 요청합니다. 부당한 고통의 현장에는 반드시 신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올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이 억울하게 겪은 민족적 고난과 민중의 고통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삼 깨달았다는 것은, 제가 평생 살아오면서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초등학교 시절, 종전(태평양전쟁) 뒤 초·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6·25 전쟁 후 폐허된 조국 땅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 3·1 운동이 주는 공공적 감동과 그 변혁적 울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가르쳐 주는 분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제가 3·1 운동 100주년 기념을 기리는 공적 일을 맡게 되면서 비로소 1919년 3월 1일에 터져 나온 3·1 운동이 엄청난 감동적, 변혁적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리로만 아니라 가슴으로, 창자로,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공공적 울림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거의 10년 가까이 우리의 주권을 강탈했고 우리의 강토를 강점했던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폭력적 통치에 맞서 우리 민족과 민중은 치열하게 저항했습니다. 치열한 적극적 저항은 잔인한 일제의 탄압과 착취와 차별에 대해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일제는 무지막지한 헌병을 앞세우고 교활한 경찰을 활용하여 잔인하게 3·1 운동을 제압하려 했습니다. 이런 폭력 탄압에 의연히 맞서되 비폭력, 평화로 당당히 대응했기에, 그 울림이 크게 일어났고 널리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잔혹한 총칼의 통제 앞에, 조국 독립 만세를 평화적으로 외치며 비폭력으로 맞섰다는 사실은 얼핏 보기엔 허약하고 어리석은 대응 같지만, 그 대응이 바로 그 거룩한 어리석음이기에 3·1 운동의 울림은 더욱 커지게 된 것입니다.

3·1 운동이 터져 나온 100년 전 우리 민족은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 둔갑한 일본의 총체적 강점과 탄압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총체적으로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적 형편도 몹시 비극적이었습니다. 약소국들이 선진 구미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약탈과 식민지 침략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선진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유색 약소국가들을 무자비하게 침공하여 식민지로 약탈했습니다. 이른바 서세 동점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시아 유색인종의 고통은 심화되었지요. 마침내 1차 세계대전이 터졌는데, 이것도 백색 선진국들이 약소국을 먼저 약탈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된 전쟁이었습니다. 선진국의 과학기술과 접목된 신무기 개발로 그들의 약탈 경쟁은 참혹한 전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3800만 명의 인간들이 억울하게 죽거나 상처를 받았습니다. 세계는 경악했지요. 승자도 패자도 그 살상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전승국은 패전국의 식민지를 나눠 먹는 일로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렸습니다.

바로 이때 미국 윌슨 대통령은 미국이 영국이 누렸던 세계 패권국 자리를 이어받고 싶어 했습니다. 영국이 지배했던 대서양 시대를 미국이 지배하는 태평양 시대로 이어 가고 싶어 했기에, 그는 세계 지배 전략의 차원에서 민족자결주의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때 일제의 탄압에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민족 지도자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큰 기대를 걸고 폭력적 일제에 대해 비폭력적 거사를 일으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지도자들은 윌슨 정책이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터져 나오고, 그 지도자인 레닌이 피압박민족의 해방을 돕겠다고 선언하게 되니, 미국 정부는 자기들의 세계 지배 전략이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피압박 약소국들의 독립운동을 민족자결주의를 내걸고 지원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이때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도 한편으로는 윌슨의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 혁명정부에도 기대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선각자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세계정세를 예리하게 분석했던 분들 중에서 그러한 기대가 컸습니다. 우사 김규식 선생, 몽양 여운형 선생, 현순 목사, 손정도 목사 등은 모두 초기에는 그런 기대에 부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파리강화회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기대가 헛된 꿈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욱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자주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심한 듯합니다. 그들도 전 민중이 거족적으로 일제 탄압에 항거하면서 비폭력적으로 끈질기게 투쟁하는 민중의 모습을 보고 비폭력 운동의 그 변혁적 울림, 그 공공적 울림에 놀랐습니다. 바로 이 울림으로 우리 민족은 계급과 종교와 성별과 지역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비폭력 저항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울림은 해외로도 뻗어 나갔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지 두 달 남짓 지났을 때 북경대 학생들은 우리 민족과 민중의 비폭력 저항을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중국을 위시한 동양의 평화를 일제가 진정 원한다면, 한반도 강점과 식민지화를 거둬들이라고 요구했던 우리 민족의 운동은 중국 대학생들, 지식인들, 민중들을 고무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우리의 선언서를 읽고 부끄럽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뉘우치고 새롭게 결단하는 뜻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고행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했던 인도인들, 이를테면 간디, 네루, 타고르 등도 3·1 운동의 비폭력적 적극 저항운동을 독립과 평화의 운동으로 칭송했습니다. 네루는 감옥에서 자기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 딸만 한 어린 학생들도 용기 있게 비폭력 저항운동을 했음을 격려했지요. 그때 네루 딸의 나이가 유관순의 나이와 비슷했습니다.

하기야 당시 유관순 열사 또래의 독립운동자들은 수백, 수천 명에 이르기도 합니다만, 특히 유관순 열사는 결연한 신념을 갖고 실천했습니다. 일본은 어린 소녀의 몸을 잔인하게 고문했습니다. 비참하게 죽으면서도 유관순은 조국을 위해 바칠 자기 몸이 하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안타까운 고백이 바로 유관순 열사의 살신성인의 결의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짧은 이화학당의 배움에서 유관순 열사는 예수의 비움의 삶(kenosis의 감동적 실천)을 배운 것 같습니다. 3·1 운동의 그 울림은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고자 한 월남의 청년 호치민 또한 격동시킨 듯합니다. 여기에는 파리강화회의에 민족 대표로 갔던 김규식 선생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3·1 운동의 감동은 일제강점기 36년간 철저히 억제되었습니다. 우리의 언어도, 가족이름도 모두 빼앗기고, 신앙마저 강탈당했던 강점기에는 그 울림이 더 번지기 어려웠습니다. 식민지 교육이 철저하게 이 민족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탄압했습니다. 이 기간,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는 더욱 내면화되었습니다. 트라우마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지요. 태평양전쟁이 전범국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는데도, 이 아픔이 치유되었던가요. 이 질문은 오늘 우리를 더욱 당혹케 하고 우리의 아픔을 더욱 아리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본의 36년간 강점 정책이 민족 해방과 광복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강점의 고통은 종전 후 강대국의 세계 지배 전략의 결과 민족 분단의 고통으로 바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국토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는 달리 강대국들끼리 38선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민족 지도자들은 격분했습니다만, 특히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을 분노케 한 것은 분단된 조국 땅 위에 남과 북에서 각기 단독정부를 세우려 하는 정치 세력의 국가 분단 움직임이라 하겠습니다.

단독정부가 남북에 각기 들어서면서 남북이 배후 패권국의 이념과 이익을 대변하게 되면서 민족상잔이라는 대리전쟁에 우리 민족은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남한의 지배 세력은 친일적 극우 반공 이념으로 나라와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남북 관계는 적대적 공생 관계로 변질되면서, 북의 극좌와 남의 친일 극우 세력 간에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고, 양쪽의 극단 세력은 공식적으로는 상대방을 악마화하면서도 상대방 극단 세력의 기득권을 결과적으로 강화해 주는, 참으로 요상한 관계, 곧 적대적 공생 관계를 오늘까지 유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민족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과연 한국교회는 어떠한 선교적 입장을 취했을까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주류는 친일 냉전 근본주의자들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분단 고통에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짐짓 분단을 고착시키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이바지한 셈입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갈릴리 예수도, 부활의 그리스도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문민권위주의와 박정희 군사권위주의 아래서 살찌게 된 한국교회는 100년 전 3·1 운동에 앞장섰던 신앙의 선배들의 그 감동적 평화운동과 독립운동의 울림을 모두 망각해 버린 듯합니다.

그뿐 아니라, 억울한 고통의 현장에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공의와 샬롬의 하나님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억울한 고통의 치유, 특히 부당한 구조적 제약으로 지극히 작은 자로 짜부러 든 약자들(the least)과 꼴찌들(the lsat)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매우 소홀히 했습니다. 오히려 문민 독재 체제를 비호하는 일에 앞장섰고, 군사독재자들의 성장 일변도 정치에 영합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물량적 성장은 두드러지게 빨랐습니다. 세계 교회들이 놀랄 만큼 겉모양은 거대화되었지요. 거대한 모습은 2000여 년 전 예루살렘 성전처럼 웅장해졌을지 모르나, 갈릴리 예수의 교회, 부활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님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 없고, 예수도 없고, 부활의 그리스도도 없는 교회가 이미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제 한국교회는 100년 전 3·1 운동의 그 비폭력 평화운동의 감동을 기억하면서 폭력의 유혹이 얼마나 반그리스도적인지를 오늘 우리의 현실에 새삼 주목하면서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2.

예수께서 폭력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 내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살핌에서 한국적 평화 신학과 평화 신앙의 모멘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폭력 행사가 왜 그렇게 매력적이고 마력적인지부터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의 쾌락은 그의 '무릎 꿇어'라는 명령에 모두가 당장 무릎을 꿇고 사탄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일 것입니다. 폭력을 거침없이 활용하도록 허용하는 권력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매력적이고 마력적입니다. 예수를 광야에서 유혹했던 사탄도 바로 이 마력으로 예수를 유혹했습니다. 그 흔한 돌을 소중한 떡으로 대번에 바꿀 수 있는 마력은 많은 사람을, 특히 굶주리는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할 것입니다. 천하의 그 영광스러운 로마제국의 괴력을 한눈에 보여 주면서 예수에게 절하기를 강요했던 사탄은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에게 '무릎 꿇어'라는 폭력적 명령을 내린 셈입니다. 모든 조폭 두목들은 예외 없이 반대 세력을 무참하게 무릎 꿇게 합니다.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의 폭력은 한마디로 '무릎 꿇기' 폭력의 횡포를 잘 보여 줍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안전하게 받아 줄 터이니 뛰어내리라고 명령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마력으로 신자들을 무릎 꿇리는 짓이라 하겠습니다. 온갖 값싼 축복으로 신도들을 매혹해, 종교적 큐나 사인만 보내도 모두가 파블로프(Pavlov)의 개처럼 조건반사하도록 훈련시키면서 교회의 양적 성장을 꾀하고 유지하는 것도 일종의 종교적 무릎 꿇기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역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 예수가 그렇게 하셨던가요.

예수님은 이런 폭력의 마력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요. 한마디로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요술 방망이, 폭력적 명령 방망이를 아예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복음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전 세력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폭력적으로 예수를 체포하려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몹시 긴장하신 듯합니다. 괴롭고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데리고 그 괴로움과 번민을 아바(Abba) 하나님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한심한 제자들 중에도 비교적 괜찮다고 생각되는 셋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함께 깨어 기도하면서 아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격려를 받고 싶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땀과 피를 흘리면서 간절하고 절박한 당신의 아픔과 괴로움을 아바 하나님에게 기도로 직소했습니다. 그 유명한 겟세마네 기도를 드리면서도 세 제자들이 과연 스승이 당부한 대로 깨어 기도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자 셋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한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마 26:40-41)고 다시 단단히 당부하셨습니다. 특히, 곧 세 번씩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거짓 주장한 으뜸 따르미 베드로에게 당부하셨습니다.

3.

여기서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시험과 유혹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전혀 몰랐기에 오늘 우리 예수 따르미들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유혹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는 예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탄을 따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으뜸 따르미 베드로를 겨냥해서 이 말씀을 하셨다면, 그는 베드로가 옷 속 깊은 곳에 이미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음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매우 충동적인 사나이여서 스승을 남달리 제대로 따르고 싶어 하는 그의 충정의 마음을 아시기에, 예수는 오늘 저녁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자기를 체포하려는 폭력배들과 마주칠 때, 그 칼을 빼서 스승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행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염려한 듯합니다.

왜 그런 염려를 예수께서 하셨을까요. 스승을 위한 충성심으로, 이타적 동기를 가지고 그 칼을 쓰는 것이 왜 그렇게 예수님을 염려하게 했을까요. 그의 으뜸 따르미가 혹시나 칼을 휘둘러 예루살렘성전의 지배자들의 하수인을 벤다면, 그런 폭력적 방어 행위는 지난 3년간 예수께서 열과 성을 다해 제자들을 깨우쳐 그들과 함께 세우려 했던 하나님나라, 곧 평화와 공의의 새 질서를 세우려는 계획이 그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억장이 무너지는 허무한 아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 권력의 논리로 본다면, 이미 달아난 제자들에 견주어 베드로는 으뜸 제자답게 용기 있게 행동했다고 칭찬해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곧 예수 체포조가 들이닥쳤습니다. 낮에 성전에서 예수께서 대중을 가르칠 때는 성전세력의 똘마니들은 조용했는데, 이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는 무섭게 쳐들어왔습니다. 성전 세력의 하수인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스승이 제일 염려했던 사고가 드디어 터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스승의 경호실장이라도 된 듯이, 스승을 체포하려고 압박해 오는 성전 세력의 하수인 한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 그의 귀를 잘라 버렸지요. 예수의 으뜸 제자가 폭력 행사에 이토록 용기 있게 먼저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스승은 허탈감과 자괴감과 분노를 한꺼번에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준엄하게 꾸짖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터져 나왔고 그것은 베드로를 꾸짖는 소리였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 26:52)."

이 말씀 속에는 베드로에게 또 이렇게 꾸짖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야, 바로 네가 쓴 그 칼로 너도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준엄하게 경고한 것입니다.

4.

그렇다면 그렇게 꾸짖으신 스승의 대안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3년간 말로 제자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이때 예수께서는 다시 절박하게, 다시 아프게, 다시 부끄럽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칼의 대안을 행동으로 절박하게 예수님은 깨우쳤습니다. 예수님은 칼 폭력의 어리석은 역효과를 함께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즉, 비움의 실천, 비움의 그 감동적 울림으로 스스로 예수답게 죽기로, 스스로 하나님답게 그 힘을 모두 내려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온 존재를 불살라 제자들에게 하나님 지배의 감동적 울림을 드러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 같은 비움의 실천을 통해 로마 권력이 허망함을, 성전 세력의 위선을, 모든 폭력의 매력을 예수답게 해체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억울한 십자가 고통이 절정에 이르게 될 때 선제적 원수 사랑의 위력을 보여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골고다 처형 마당에서 예수는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위력으로 우리를 감동시켜 준다면 믿겠다는 식의 조롱은 참으로 아팠을 것입니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조롱은 때론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어렵고 아픕니다. 바로 이렇게 견디기 힘든 순간 그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상태에서 놀라운 기도를 아바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바 하나님,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예수는 참으로 억울한 피해자인데도 온갖 잔인한 행동과 말과 몸짓으로 예수를 희롱하고 비난했던 가해자들, 그리고 직접 법을 집행하면서 못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했던 군인들의 그 폭행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길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범상치 않은 일입니다. 신이 갖고 있는 모든 폭력적 카리스마 위력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예수님의 하나님다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노하는 심판 주와는 너무나 다른 신, 곧 신을 모독하고 핍박하고 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행을 용서해 그 악을 해체하는 놀라운 신의 새로운 모습을 사형수 예수는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선제적 원수 사랑 실천을 친히 보여 주신 예수의 기도를 21세기에 사는 오늘의 예수 따르미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하면서 이 기도를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이 기도가 폭력 애용자들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뜻은 아님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의 논리에 따른다면, 폭력 애용자는 바로 그 폭력으로 스스로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폭행자를 값싸게 용서한다면, 악의 구조를 오히려 유지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악행자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둘째로, 폭행자가 그들의 행위가 악행인줄 전혀 모르는 가운데 관례와 전통에 따라 '자연스럽게' 때로는 '신나게' 악행을 저지른다면, 관행의 하수인들에게만 폭행의 궁극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폭력 행사는 신성한 전통이나 정당한 관례에 따른 행동으로 인식하도록 훈련되었다면, 그 폭행은 때론 선행으로, 때론 정의로운 행동으로, 또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미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 미화된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고 배울 수도 있었겠지요.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의 작동을 2000년 전 예수께서는 이미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전통, 관례, 지배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폭행은 따지고 보면 그 폭행으로 기득권을 보호, 강화하는 사특한 핵심적 지배 집단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 같은 권력 주체들의 음흉하게 숨겨진 지배욕을 예수는 이미 꿰뚫어 보시고, 그들의 숨겨진 폭력을 밝게 드러내 무력화해야 함을 역설하신 것입니다. 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을 해체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그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하수인들의 폭행은 부차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성시된 나치 이데올로기의 악행 선동의 주체를 제거하라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셋째로, 칼 쓰는 세력은 그 칼의 힘으로는 본질적 악을 극복해 낼 수 없음을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칼 애용가들 간의 다툼에서 평화를 만들어낼 수는 결코 없습니다. 큰 칼 앞에 약한 칼은 잠시 숨죽이고 항복하듯이 무릎을 꿇지만, 언젠가는 더 큰 칼로 그 원수의 큰 칼을 꺾으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발악의 경쟁은 공멸일 뿐입니다. 칼은 칼로 망하기에 공멸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참다운 대안은 무엇인지 이제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칼에 의해 죽는 것을 두려움 없이 선택하면서 그의 죽음이 큰 칼 사용자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큰 칼 사용자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는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선택입니다. 악행자가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하는 선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이렇게 깨우쳤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롬 12:20-21)."

이렇게 권면했던 바울은 발악을 더 큰 발악으로 갚는다면 공멸밖에 없으니, 발악자를 발선發善으로 중단시켜 함께 살길을 열어 가라고 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발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이지요. 손양원 목사께서 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 청년을 양자로 삼았던 결단이 바로 발선의 결단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악을 이기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은 바로 발선으로 샬롬을 이룩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한다면, 발선이란 바로 선제적 사랑으로 원수를 친구로 자매 형제로 전환시키는 평화 결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그 막강한 위력을 십자가에서 비워 내심으로 원수를 자매 형제로 전환시켰으니, 우리도 그 길로 따라가야 합니다. 평화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초월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이 땅에 평화를 세우시기 위함이지요. 그러기에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천군 천사는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평화를 이룩할 구세주가 탄생했다고 알렸습니다. 땅의 평화 없이 하늘의 영광은 없습니다. 이렇게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너무나 억울하게 죽으신 것은 개개인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보다 죄악의 구조를 근원적으로 해체하면서, 그 감동이 개개인의 죄의 용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고백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개인의 죄는 용서받고 속량받을 수 있으나, 구조 악과 악의 구조는 해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개인의 죄 속량에만 십자가 신학을 모두 사용한 나머지 구조 악의 해체라는 문제점은 그저 넘어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악은 항상 함께 다뤄야 할 문제이고, 함께 해결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십자가 고통의 절정에서 예수님은 선제적 원수 사랑 실천으로 간절한 기도를 아바에게 드렸는데, 과연 그 기도의 울림의 결과는 있었던가요. 이 질문이 오늘 말씀 증거의 마지막 문제가 되겠습니다. 그 기도가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2000년 전 그 골고다 언덕에서 사형집행관이 예수 죽음의 순간순간을 감독하면서, 예수가 운명한 직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고백, 곧 '예수는 무죄다'라는 선언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한 무죄 선언이 아니라, 예수는 의로운 분이라는 칭송,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반체제적 칭송'의 깊은 의미를 반추해 내야 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예수 칭송만이 아니라, 예수의 사형집행관이 이제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음을 뜻하는 변화의 선언입니다. 이 로마장교 백부장이 예수가 협박해서 변화된 것입니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그 어떤 초자연적 실력 발휘에 감동되어 변화된 것입니까. 마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니까 하나님의 천사들의 와서 예수의 발이 땅에 이르기 전에 모셔 올라가는 모습을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그 같은 질적 변화를 고백한 것일까요. 결단코 아닙니다.

사형집행관의 본질적 변화는 개인의 죄가 속량되었다고 하는 기쁨의 자각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로마 권력의 악, 특히 황제의 폭력적 구조 악의 힘을 예수의 매우 이례적인 죽음, 용서하고 평화를 만들어 내는 죽음, 발악을 이기고 발선의 샬롬을 세우는 죽음을 직접 보고서 로마 장교인 것이 부끄러워서 그렇게 고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황제가 참 신이 아니라, 우리의 황제의 체제를 거부한 갈릴리 청년 예수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신이다!' 라는 고백일 것입니다. 황제에게 신명을 바치기로 한 황제의 충복인 로마 장교가 예수 죽음의 순간순간 모습을 직접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그 같은 놀라운 변화의 고백, 근원적 변혁의 고백을 토해 낸 것입니다. 그의 본질적 변화인 고백은 구조 악의 위력을 해체하는 평화 만드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한다면, 로마의 평화는 황제의 깃발 아래서나, 팍스로마나의 펄럭이는 깃발 아래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감동적으로 비워 내고 하나님의 자기 비움(성육신 사건)을 거쳐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억울한 처형을 당하면서 자기를 비워 낸 예수의 죽음 선택을 통해 비로소 그 평화를 이룩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지요.

100년 전 유관순 소녀는 제국주의 폭행으로 자기 몸을 잔인하게 죽인 일본 제국주의 폭력에 끈질긴 비폭력 평화 저항을 통해 결과적으로 부끄럽게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폭력 세력은 지금 100년이 지났으나 부끄러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때 우리 한국의 예수 따르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일본의 외교관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평생 일본을 증오해 왔음을 고백했지요. 저는 그에게 너무 오랫동안 일본을 미워하다 보니, 제 스스로가 증오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제 저의 나이가 여든 중턱에 이르렀으니, 그에게 제발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제가 스스로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그 감옥의 열쇠는 가해자인 일본만이 갖고 있지, 피해자인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지요. 가해자 일본 정부만이 열 수 있고 또 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독일의 전 총리 브란트가 나치 만행의 희생자 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했듯이, 일본의 진짜 실권자들이, 칼 애용자들이 그렇게 용서를 빈다면 저는 기쁨으로 용서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간청할 경우 한일 간의 평화는 저절로 꽃피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같은 뜻으로 5‧18의 핵심 가해자들도 이제 진정한 용서를 구해 주길 바랍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기쁘게 그들을 껴안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증오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완상 새길교회 신학위원.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 글은 새길교회 한완상 신학위원의 2019년 5월 26일 주일예배 설교('칼과 귀, 치유와 평화: 평화 신학와 신앙을 위하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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