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가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및 특별 지도 처분을 내린 한동대학교(장순흥 총장)에 징계 취소와 재발 방지책 수립을 권고했다. 성소수자 영화 상영을 위한 장소 대관을 불허한 숭실대학교(황준성 총장)에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시설 대관을 불허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1월 7일 공개한 결정문에서, 헌법상 종교의자유와 운영의 자유를 보장받는 '종교 사학'도 공공성을 전제하는 교육기관이므로, 헌법 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교육이 개인·사회·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립학교도 국공립학교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라, 사립학교를 공공성이 전제된 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자율적 건학 이념'에 따라 강연 개최를 불허하고 주최자들을 징계한 한동대, 장소 대관을 불허했다는 숭실대 측 주장에 상반되는 결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동대와 숭실대에 각각 '징계 취소', '향후 장소 불허 금지'를 권고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페미니즘 강연 주최 학생 징계한 한동대에 
"징계 등 제재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
학생들 징계로 입은 피해 치유 어려워"

학교 측 불허에도 페미니즘 강연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에 오른 한동대 학생 5명은 지난해 1월, △인권침해 △표현의자유 및 사상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두 달 뒤인 3월, 한동대를 방문해 강연 제한과 징계 과정 중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는지 조사했다.

한동대는 인권위 조사에서 동성애·성매매에 관한 강연은 기독교 신앙에 어긋나며, 대학이 가진 종교의자유·학문의자유 및 자율성을 이유로 개최를 불허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강연 내용이 공중도덕과 사회윤리에 반하며, 헌법상 표현의자유 보호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한동대가 내세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건학 이념'은 강요나 강제·제재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건학 이념 구현은 구성원들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대화를 통한 설득, 학문적 연구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학교가 다양한 방법을 통하지 않고 강연 개최를 강제로 불허한다거나, 무기정학 징계 또는 특별 지도라는 제재를 선택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침해"라고 했다.

인권위는 한동대가 건학 이념 수호를 이유로 징계받은 학생들에게 심한 피해를 줬다고 했다. 학생들의 피해가 지속적이고 치유되기 어려울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들의 법익이 두텁게 보호될 필요가 있다며 징계 취소를 권고했다.

한동대는 징계 과정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A에게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를 표방하는 것이 한동대 설립 정신과 교육 철학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취지의 진술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한동대의 이러한 요구가 사생활과 양심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한동대는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징계와 특별 지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숭실대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
'건학 이념' 반하기 때문에 불허"
인권위 "시설 사용 불허는
성적 지향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

숭실대는 2015년, 총여학생회가 학내 인권 영화제에서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장소 대관을 신청하자, 이를 불허했다. 이에 총여학생회장과 학내 성소수자 모임 회원들은 학교 측의 대관 불허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숭실대 측은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이 '건학 이념'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장소 대관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영화 상영 행사를 허가하면 반대 단체 집회 등으로 학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며, 장소 대관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인권위는 학교 측의 시설 사용 불허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대학의 자율성 및 종교의자유를 이유로 학내 구성원의 표현의자유·집회의자유를 제한하고, 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며, 교육 시설 이용을 배제하고 나아가 행사 자체를 금지한 행위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라고 했다.

인권위는 숭실대가 건학 이념으로 내세운 '기독교 정신'은 기독교인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했다. 다수의 기독교인이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기독교인이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미국성공회·미국장로교회(PCUSA)를 예로 들기도 했다.

인권위가 한동대와 숭실대에 내린 권고 조치에는 강제력이 없다. 말 그대로 '권고'이기 때문에 각 대학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없다.

<국민일보>는 1월 6일, 인권위가 한동대에 내린 권고 내용을 보도했다. 다음날 지면에 올라간 제목은 '다자 성애, 매춘 강연'에서 '동성애 강연'으로 바꿨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국민일보>, 결정문에 없는
'다자 성애', '매춘' 끼워 넣어
동반교연, 인권위 비판 성명
"윤리·도덕 인정 않는 패역한 기관"

인권위가 한동대 권고 조치 결과를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인 1월 6일, <국민일보>는 '국가인권위 "다자 성애 매춘 강연 제한은 인권침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본문에는 "다자 성애, 매춘 등 '성적 자기 결정권' 합법화가 '종교교육의 자유'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한 초유의 사건이다. 인권위는 그것을 헌법상 보호해 줘야 할 절대 권리인 양 치켜세우고 있다"는 한동대 관계자의 말도 있다.

제목과 내용을 보면, 인권위가 '다자 성애'나 '매춘'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문에는 이런 단어 자체가 없다. 인권위가 내린 결정은 '다자 성애'나 '매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강연 불허와 징계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바로잡으라는 취지다.

기사에는 교계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동하는 지영준 변호사(법무법인 저스티스) 인터뷰도 나온다. 그는 인권위의 결정을 놓고 "종립 학교의 설립 이념과 자율권, 즉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자유를 국가가 짓밟으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지 변호사는 A가 한동대 법인·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대리인으로 한동대 측을 변호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용은 기사에 없다.

동성애동성혼합법화반대전국교수연합(동반교연)은 인권위 조사 결과가 발표된 1월 7일 성명을 내고 인권위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인권위가 지난 3월 한동대 조사에 착수하자 이를 규탄하며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윤리‧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 바 있다. 동반교연은 이번 성명에서도 "(인권위가)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법률을 위배하는 성적 욕망까지 보호해야 할 인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자유와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했다"고 했다.

인권위를 향한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동반교연은 인권위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조차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인권에 의해 건강한 윤리와 도덕조차 인정하지 않는 패역한 기관"이라고 했다. 이들은 인권위가 종교의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정을 취소할 것, 한동대와 한국교회가 인권위의 결정에 단호한 입장으로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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