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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모든 질문에 '정답' 알고 있는 듯 말하지만…"
[인터뷰] <세계관 수업>(복있는사람) 출간한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
  • 강동석 기자 (kads2009@newsnjoy.or.kr)
  • 승인 2019.01.05 13:59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1980년대 중반,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한국교회에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신앙생활 열심히 하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참된 신앙으로 여겼던 많은 교인의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교회 생활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기독교 관점에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이며 세상에서 어떻게 신앙할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기독교 세계관은 당시 기독교인, 특히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후 운동은 시들었지만, 양 대표는 꾸준히 기독교 세계관을 강의해 왔다. 그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한동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세계관 수업의 골자를 엮어, 2018년 말 <세계관 수업>(복있는사람)을 출간했다.

<세계관 수업>은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의 지도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 지도는 세상 속에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다른 대상들과의 거리를 가늠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은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신앙인으로 살아갈지 자리매김하는 데 필요한 작업인 셈이다. 양희송 대표는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신앙으로 세상을 대하는 중요한 태도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동성애·동거·병역거부 등 구체적 사회 이슈를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 위치를 설정하는 데 기독교 세계관이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청어람ARMC가 낙원상가 5층으로 이전하기 며칠 전인 12월 21일, 신촌 사무실에서 양 대표를 만났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교회와 양 대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비롯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1980년대 중반에 '뼈 때리는 질문'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
기세 꺾인 '기독교 세계관' 꺼내든 이유
"자기 성찰하고 주변 돌아보게 해"

- 기독교 세계관을 언제 처음 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나는 1987학번이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기독교 세계관 서적을 읽었다. 1985년 어간부터 세계관 책이 많이 나왔다. 기독교 신앙을 교회당 내부 사안으로 여기지 않고, '세상 속에서의 신앙'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 신선했다.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신앙의 주요 요소가 아니라는 인식은 큰 전환점이었다. 신앙생활을 교회 생활과 동일시하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어떻게 기독교인으로 사느냐를 중요하게 봤다.

그때 읽은 책들이 전한 메시지는 선명하고 강했다. 송인규 교수가 1984년, 소책자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IVP)를 냈다. 당시 우리는 '사영리'나 '전도 폭발'을 통해 전도를 많이 했다. '전도 폭발' 첫 질문은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이다. '천국은 곧 죽어서 간다'는 전제로 전도해 온 것이다. 이때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는 기독교 신앙의 본령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리는 '뼈 때리는 질문'이었다.

책을 안 읽어도, 저 질문을 보면 뭐하자는 건지 감이 온다. 당시 분위기로는 여기에 설득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과감하게 질문을 던졌기에 기독교 세계관을 처음 접한 이들도 생각의 전환을 경험하게 됐다. 이후로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했다. 기독교 세계관의 실익은 '자기 성찰'이다. 대학교 다닐 때, 스스로에게 세상 속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일반 대학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 교양 등 다른 영역을 섭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다. 이후 나에게 신앙을 대하는 중요한 태도를 만들어 준 듯하다. 그 세대 기독교 세계관을 접했던 많은 사람이 비슷한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

- 2000년대 들어서는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많이 줄어든 듯하다. 지금 세계관에 대한 책을 낸 이유가 있다면.

다른 일들로 바빠 출간 시기가 늦어졌다. 책을 쓰려고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녹취로 푼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한동대학교에서 기독교 세계관 과목을 맡아 강의하느라 책으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고, 2010년부터 2018년까지는 청어람ARMC의 여러 일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한국 기독교 개혁 운동을 보면서 확인하고 다듬은 내용이 반영돼 있기는 하지만, 책 내용은 한동대 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상황이다. 책을 내기에 적절한 타이밍 같기도 하다. 정체돼 있던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서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스미스 같은 학자가 '세계관'과 관련해서 비중 있게 책을 내는 중이다.

국내에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등장했던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는 한다. 그중 하나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학생운동이 주력해서 나갈 때, 이에 대응할 만한 기독교 담론이 결핍돼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젊은 층의 결핍감을 기독교 세계관이 채워 줬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관 논의가 등장하고 사라진 이유를 전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기독교 신앙은 삶의 여러 국면을 해석하고 행동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은 기독교적 상상력이 메말랐고, 교회 신앙에 대한 평판이 떨어진 시기다. 일신할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적 자원이 기독교 세계관 논의 안에 있다고 본다.

지금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내가 한국 저자로서 이 책을 냈다. 학술 서적으로는 데이비드 노글의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CUP)가 얼마 전 번역 출간됐다. 이론적으로 탄탄해진 셈이다. 제임스 스미스도 계속 저술을 뽑아내고 있다. 대중이 얼마나 기독교 세계관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참여하느냐가 관건이다.

- 과거 한국에서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한창 진행됐다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차적으로 한국 개신교 신앙 운동 트렌드와 관련 있다. 한국 개신교 신앙 운동 양상을 보면, 흐름을 탔을 때 실제보다 더 크게 진행되다가 거품이 꺼지면 싹 가라앉는다. 한국은 과잉됐다가 가라앉는 사이클이 빠른 듯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가 세계관 논의가 유효하게 작동했다. 1990년대를 넘어가면 대중문화가 활성화하고 사회 민주화도 많이 진전되기에 관심이 가라앉는다.

교계에서는 내적 치유, 해외 선교, 경배와 찬양 등 훨씬 활동적인 신앙 운동들이 등장했다. 세계관 운동은 책 읽고 토론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지식인 중심의 신앙 운동이었다. 공부하고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국한한 인상이 강했다. 그보다 활동적으로 선교 여행을 떠나고 집회를 여는 흐름이 커지면서 가라앉은 측면이 있다.

2002년 <복음과상황> 지면에서 기독교 세계관 논쟁이 있었다. 한국의 젊은 저자들이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향후 운동이 어떤 면에서 차별성을 보여야 하는지 공론화했다.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풀어야 할 당시 이슈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계기가 됐지만, 대중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기독교 세계관 훈련도 15년 정도 지속하면서 쓸 수 있는 자원을 한 번 다 쓴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논의가 나오지도 않았고, 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읽는 작업이 한국 사람들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번역서에 의존해 운동을 진행했기에 관심이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의 기독교 세계관 논의는 이 공백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관 수업> / 양희송 지음 / 복있는사람 펴냄 / 276쪽 / 1만 5000원. 사진 출처 복있는사람

패배주의와 승리주의 넘어선
'균형 잡힌 신앙' 지향하려면

- <세계관 수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기독교 세계관 입문서로 보면 좋겠다. 이 책은 교과서적 텍스트로, 전체 흐름을 보는 데 용이하게 썼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군데군데 기존 논의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과감하게 넣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직관적으로 쉽게 내용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다만, 내용을 과하게 단순화하거나 뭉텅이로 잘라 낸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 부분은 빼놓더라도, 이 책 전체에 흘러가는 큰 이야기가 무엇인지 챙기면 좋겠다. 핵심 서사와 뼈대, 줄기, 전체 논의를 어떤 식으로 풀어 가느냐에 주목해서 읽어 달라. 흥미를 느끼는 주제는 더 공부할 수 있다. 책에 달린 주를 참고하면 좋겠다.

창세기 1장과 역사적 예수 연구를 기독교 세계관 측면에서 살핀 내용이 책에 비중 있게 등장한다. 두 가지를 다룬 것은, 기독교 세계관과 성서학을 접목하면 성경을 새로운 차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창세기 1장은 창조과학 논쟁의 가장 격심한 전쟁터다. 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창세기 논의를 고대 근동 세계의 세계관 투쟁이라는 관점으로 다르게 읽어 보는 것은 어떤가. 나는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훨씬 창세기를 읽는 데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예수를 다루면서 톰 라이트를 중요하게 소개했다. 톰 라이트가 이미 국내에 널리 읽히는 저자이기 때문이고, 그의 저작을 세계관 맥락에서 새롭게 읽고 싶어서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면, 창조과학 논의나 역사적 예수, 바울신학 등을 신선하게 볼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제임스 스미스는 푸코, 데리다 등 현대철학자를 인용하면서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이어 간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시작해 욕망, 교육, 예배 등의 문제를 다룬다. 지금은 세계관으로 논점을 자유자재로 확장하면서 의미를 풀어 갈 수 있는 시대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이 기독교 세계관 논의와 연결돼 있다.

한국교회가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영역을 두려움 없이 탐구하고,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세계관 수업>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교회는 전형적으로 답을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지 말고, 발생하는 질문을 더 끄집어내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게 메시지를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작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교회 공동체는 대체로 새로운 사상, 문화 흐름을 많이 경계한다. 하지만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참신하고 새롭게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무뎌진다. 처음에 대단히 경계했던 것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다. 기존 신앙의 틀에서 소화·흡수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새로운 사조와 만날 때 불필요하게 두려워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았으면 싶다. 자신감을 갖고 여유 있게 차근차근 탐구하고 소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서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늘 방어해야 하고 피해 입을까 봐 두려워하기보다, 기독교 세계관 등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세상을 읽고 다르게 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이 책이 그렇게 하는 데 자극을 줬으면 좋겠다.

-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패배주의'와 '승리주의'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패배주의는 교회가 궁지에 몰려 있고 세상보다 뒤처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감수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해진다. 과도한 피해의식을 갖고 울컥하면서 대상을 향해 분노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 그와 반대로 승리주의는 우리가 기독교 신앙으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고 제압·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만만하게 세상을 대하는 것이다.

패배주의와 승리주의는 기독교 세계관을 논의하다 보면 언제나 나타난다. 특히 승리주의자는 자기 권력에 대한 알리바이, 정당화 논리로 기독교 세계관을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류의 신학 논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 무기 아니면 공격 무기로 오용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양극단 또는 편향을 우려하고 경계하면서 동적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하면서 동적 균형을 논의하지 않고, 동적 균형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면 어느 한쪽에 쏠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 지점을 계속 일깨워 줘야 한다. 나는 다른 책 <세속성자>(북인더갭)에서 '과잉 실천', '과소 실천'이라는 말로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경계심을 갖고 진행되는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

- 동적 균형이라는 표현은,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동적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균형을 잡는 것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재밌는 사실은 가만히 서 있으면 균형을 잡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때로는 왼편, 때로는 오른편으로 약간씩 몸을 기울이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몸에 배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왼쪽으로 조금만 가도 좌편향하고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도 우편향하면서 넘어지게 된다.

때때로 몸을 이쪽저쪽으로 기울이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언제나 정중앙으로만 갈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동적 균형이란, 그 결과로 넘어지느냐, 다시 복원해서 계속 길을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아니겠는가.

사람이든 집단이든 동적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계적 균형은 균형을 잡은 듯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한쪽으로 쓰러질 수 있다. '언제나 이렇게 해야 해'라는 태도는 기계적 방식이다. 오히려 무지한 발상일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당신은 균형을 지키지만 상황이 바뀌어 있을 수 있다.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균형점을 새롭게 설정하는 감각을 지녀야 한다. 자신을 향해서는 자기 성찰, 세상을 향해서는 주변 상황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양희송 대표는 교회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하지만 교회는 대체로 맞는 소리, 바른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자기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적 균형'이 어려운 개념이 아닌데도 교회에서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 교회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든 측면이 있다. 바깥세상을 향해 '우리는 세상과 달라', '우리는 세상보다 우월해'라는 입장에 있다가, 우리가 잘못할 수 있으니 알아보고 배워야겠다고 나아가기 어렵다.

교회 안에 이 같은 딜레마가 있어서 동적 균형을 이루는 것에 애로 사항이 생긴다. 이런 딜레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하면 수월하지 않을까. 비판을 받든 격려를 받든 한국 개신교인, 교회 공동체 등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문제들을 풀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교회 안에 어느 정도 선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목회를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교인들도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선의를 조금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선의로 행동하지 않는다. 선의가 늘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전달된 것이 선한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불가피한 부분이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면, 좋은 자원이나 도움이 없다는 게 문제 아니겠는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필요하면 강의도 하고 책도 쓰는 것이다.

"한국교회, 정답 말하려는 강박 벗고
질문의 자리 허락해야…
나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영원한 물음'"

-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회 이슈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슈가 던지는 질문을 접하게 되는 듯하다. 질문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 게 신앙인으로서 건강한 태도일까.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답을 말해 줘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센 것 같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이미 질문에 경청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정답을 찾는 교본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질문이 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너무 많다. 즉각 답하지는 못해도, 질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어도 소통이 일어난다.

질문에 답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질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것, 질문의 자리를 기독교 신앙 안에 허락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이 모든 문제에 시시콜콜하게 다 답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답을 못 준다고 기독교 신앙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거나 기독교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질문이 제기되는 때가 있고, 그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시간을 통과해야 나올 수 있는 답이 있다. 아무 때나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용이다.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신앙적으로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강박 의식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약간은 여유 있게 삶의 여러 질문을 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시간을 두고 질문을 다루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 양희송 대표에게 기독교 세계관이란?

나에게 기독교 세계관이란 '영원한 물음'이다. 끝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영원한 물음이라기보다, 깊고 넓어지기 위해 계속 물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흥미가 소진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영원한 물음이다.

철학자 중에는 세계관 개념 자체를 근대적이고 한계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도 꽤 수긍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있어 세계관 개념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신앙적 질문을 던지는 데 기독교 세계관이 아주 유용하다고 본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청어람에 있어서 2019년이 중요하다. 오프라인 플랫폼과 온라인 플랫폼을 새롭게 내놓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낙원상가 5층으로 들어가게 된다. 150석 정도의 강연장을 위탁 운영한다. 이곳을 거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고 만날 수 있는 장을 상시적으로 열었으면 한다.

온라인에서는 교회 찾기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름하여 '교회 가는 길', Finding Church. 수도권을 중심으로, 추천할 만한 교회 200~300곳을 찾을 수 있도록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리뷰나 댓글 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들이 채워 넣는 정보를 통해 어떤 교회가 존재하는지 보여 주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집단 지성, 빅 데이터에 따라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툭툭 불거져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양 대표는 2019년이 청어람ARMC가 새로운 오프라인 플랫폼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는 중요한 해라고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018년 후반기에 책 2권(<세속 성자>, <세계관 수업>)을 냈다. 2019년에도 2권 정도 내려고 한다.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와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2014) 개정 작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터도 바뀌었고 그 사이 한국교회 흐름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는 새로운 주제들을 찾아 글을 쓸 생각이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빨리 은퇴하고 싶다.(웃음) 할 일 다 했으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지 않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가시권 안에 들어온 듯하다. 몇 년 내로 은퇴하고 싶다. 은퇴하고 나서 노후 계획을 짜든지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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