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래명성교회 김하나 목사가 2013년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저희는 총회 (세습방지법) 결정에 당연히 따른다. 어떤 변칙 혹은 술수 이런 게 아니라 순수하게 역사적 부름,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따를 준비가 돼 있다. (중략) 총회 결의가 명성교회 세습 못 하게 하는 결의가 아니라, 바로 이 시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결의로 우리는 존중하고…."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김하나 목사(새노래명성교회)가 2013년 11월 12일, 청어람아카데미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학우회가 공동 개최한 종교개혁 기념 세미나에서 한 발언이다. 김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 '세습방지법'을 제정하자, 이것은 '역사적 부름', '하나님의 요구'라며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김 목사가 명성교회를 물려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입장이 바뀐 것일까. 김하나 목사는 아버지 김삼환 목사가 원로로 있는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을 앞두고 있다. 교회 합병 안건도 같이 처리될 예정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교계 단체는 세습 절차를 밟고 있는 명성교회에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물론 세습이 확정된 건 아니다.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김하나 목사가 청빙을 철회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안건이 부결될 수도 있다.

약 4년 전 김하나 목사와 대담을 나눈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는 "세습 절차를 밟고 있는 명성교회는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고 말했다. 양 대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하나 목사는 2013년 당시 세미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토론에 적극 임하고, 교회 세습과 같은 민감한 질문에도 피하지 않고 소신을 밝혔다. 양 대표는 "상당히 본인 의지가 강했다. (세습 문제를) 공론화해 본인 스스로가 구속받고 싶은 뜻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가능성은 열어 놓는 한편 교회 세습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양 대표는 "중세시대 성직 매매와 성직 세습으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다. 교회 직위를 친인척이 독식해 성직자 독신제가 등장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현대판 성직 세습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명성교회 세습은 개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교회 문제"라고 했다.

다음은 양희송 대표와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3월 14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양희송 대표는 아직 명성교회 세습이 확정된 게 아니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이미 한국교회는 세습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도 명성교회는 세습을 감행하려 한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제일 쉬운 선택이 세습이다. 새로운 리더십을 발굴하거나 교회가 변화를 경험하며 바뀌는 것보다, 현재 상황 이대로 큰 변화 없이 유지하는 게 교회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습이 쉬운 선택으로 등장한 배경이 있다. 큰 교회들이 후임 청빙에 실패하고 분규에 휩싸인 걸 보고, 손쉬운 선택으로 세습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래서 비판받을 걸 알면서도 세습을 선택한다고 본다.

- 실제로 세습한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보다 잘된다며 세습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잘된다"고 했을 때 그 지표를 뭘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양적 기준을 척도로 삼는다. 질적 평가에 대한 척도가 없다. 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일정 정도 숫자가 줄어들지 않거나 양적인 성장을 이룰 경우, 세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적 하락 등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교회가 기업처럼 매출이나 머릿수로 평가할 수 있는 조직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론이 없다. 우리에게는 '교회 성장론'밖에 없다. 고도성장을 이룬 목회자들 역시 자기 교회 교인이 수만 명이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본인도 감당 못할 수준으로 커진 게 바로 한국 대형 교회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도 겪고 취약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뒤를 잇는 다음 목회자는 앞 세대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걸 고치고 바꿔 나가야 하는데, 세습을 하게 될 경우 그러는 게 쉽지 않다. 수십 년간 이어 온 구조 문제나 결함 등을 바꿔 나가는 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

- 세습한 교회를 취재할 때마다 "우리가 원해서 뽑는데 밖에서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교인들이 민주적 절차를 밟아 뽑았기 때문에 세습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발언은 개교회주의가 극단화할 때 드러난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 그 말은 "우리 교회랑 다른 그리스도인이랑 아무 상관없으니까 관여 말라"는 의미다. 굉장히 극단적이다. 명성교회가 만일 이런 선택을 할 거라면, 교단을 탈퇴한다든가 철저히 개교회만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명성교회는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크고, 장로교 안에서 상징성을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건 일종의 이중 잣대다. 대외적 상징성이나 위상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필요할 때는 상징적 위상을 누리다가, 이런저런 문제에 아랑곳 않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 명성교회 한 장로에 따르면, 김삼환 목사는 출국 전 3월 7일 장로들에게 "아들을 청빙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김하나 목사도 교회 합병, 위임목사 청빙 문제에 함구하는 중이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장로들이 '알아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세습 사례를 보면 담임목사가 공개적으로 주도적으로 의지를 천명했다. 이와 달리 김삼환·김하나 목사는 소극적이다. 의도는 모르겠다. 다만, 과거 대형 교회 경우 세습을 위해 교단을 탈퇴하기도 했는데, 여기는 전혀 그런 게 없다. 심지어 소속 교단이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는데도 탈퇴하지 않았다.

명성교회는 3월 19일 공동의회를 열고, 위임목사 청빙과 새노래명성교회 합병 안건을 다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역사적 부름,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따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김하나 목사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의아하다.

김하나 목사는 2013년 세미나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다. 예장통합의 세습방지법은 시대적 요구라며 충분히 수용한다고 했다. 본인과 아버지도 동감한다고 했다. 나는 (김하나 목사의) 입장이 현재까지 유지된다고 본다. 다만 세습에 대해 아버지와 자식 세대 간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 같다.

-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김하나 목사는 어떤 입장일까.

당시 김 목사는 세 가지 사례를 들었다. △세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저항의 몸짓을 보이다 순응하거나 △아예 야심을 가지고 적극 세습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내가 볼 때 김 목사는 3가지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 답은 4번이다. 부모의 뜻은 인정하나 세습은 아니라는 입장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토론에 나와서 이야기를 꺼냈던 게 아닐까.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현재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본인 역시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그때 옳다고 생각한 걸 지금도 선택하면 좋겠다. 본인을 위해서도, 명성교회를 위해서도, 한국교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그게 옳은 길이다.

- 개혁연대 기자회견에서 "새노래명성교회와 김하나 목사가 반목하고 싸우거나, 부자 간의 연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한 시대가 마감한다. 세습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옳은 방법이 결코 될 수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명성교회가 세습하게 되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 보는가.

단언할 수 없는 문제다. 명성교회 때문에 한국교회가 더 주저앉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세습했는가. 거기에 하나 더 얹는다고 기울까? 다만 세습을 선택한 순간 명성교회의 상징적인 부분은 소멸될 거라고 본다. (명성교회는) 지나간 교회가 될 것이고, 한국교회에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큰일을 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자식 세대 몫이다. 그 세대가 그려 나갈 그림이 있고, 역할이 있다. 잘하려면 미래를 만들고 참여해야 하는데, 물러가는 과거에 미래에 쓸 자원을 태워서 보내 버린다? 아쉬운 노릇이다.

- 2015년 11월경 김하나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확인해 주기는 좀 그렇다. 당시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한 말을) 지키겠다거나 지키지 않겠다고 하기 어렵다. 최대한 좋은 길을 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 이 정도로밖에 말 못하는 점 이해해 달라"고 했다. 불과 2년 만에 의지가 꺾인 게 아닌가.

그때는 가능성의 차원이었고 지금은 실제 차원으로 전개되니까 고민의 정도는 달라질 것으로 본다. 다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됐다는 것일 뿐, 세습을 둘러싼 인식이 바뀔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발언의 취지를 지켜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방법은 의지를 명확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추론을 막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부담과 무게가 많이 실리겠으나, 그때 고민이 지금은 심화돼서 명확하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당시 했던 발언에 부합했으면 좋겠다.

- 김하나 목사의 경우, 2013년 11월 대표님과 대담을 나누면서 했던 대화가 뼈아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발언을 빌미로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굳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세미나에 참석한 건, 당사자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의외로 주도적으로 (생각을) 꺼내려는 의지가 있어 보였다. 토론도 하고 의견을 들었다. 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질문에 대해서 분명히 밝혔다. 김 목사가 의지를 공론화한 것은 스스로가 구속받고 싶은 뜻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라면 비난만 하는 게 아니라, (세습을) 하지 않도록 장치나 자리를 확보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 만약 세습이 통과되면 그간 명성교회가 해 온 사역은 어떻게 된다고 보나.

대형 교회는 여러 측면이 있다. 기여가 됐든 잘못이 됐든, 한쪽 측면만 보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설득이 안 되기도 한다. 명성교회가 사회적으로 봉사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용산참사 마무리 과정에 참여해 역할도 했다. 용산참사 가족들이 1년간 장례를 못 치렀을 때 도움을 줬다. 이러한 일들을 세습으로 덮어 버리고 싸잡아 버리지 않아야 한다.

2013년 11월 청어람아카데미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김하나 목사(사진 왼쪽)와 양희송 대표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대표님은 김하나 목사가 세습하지 않을 가능성을 계속 열어 두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그래도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개인의 결단과 교회적으로 공동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려하고 고민을 해 줬으면 한다. 그가 결정을 내리는 것에 따라 객관적인 평가가 이어질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교회 신뢰도가 굉장히 떨어져 있는데, 정작 교회 안에서 자기 교회 만족도는 높다. 인지 부조화가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호감적이지만, 사회가 교회나 목회자를 보는 시선은 상당히 싸늘하다. 사회적 평판과 신뢰를 올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세습은 이를 전형적으로 까먹는 일이다.

종교개혁 시대 가장 큰 문제는 성직 세습과 성직 매매 등 부패였다. 지금 한국교회도 다르지 않다. 한기총 금권 선거를 봐라. 교단 총회장 선거는 어떤가. 일종의 성직 매매에 가까운 양상이 비일비재하다.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성직 세습 역사로부터 배운다면, 교회는 심각한 위기 상황의 지표나 징후로 읽어야 한다. 이걸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해 나가면 건강해지거나 좋아질 수 있겠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교훈을 떠올려 보자. 가장 큰 병폐로 드러난 게 성직 세습과 성직 매매다. 이게 나타날 때는 말기적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비난하는데도 이런 현상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진행된다. 한국교회는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 세습으로 대미를 장식하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떤 논리로 비판에 대응할 수 있을까. 개신교가 500년 만에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명성교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

양희송 대표는 "김하나 목사가 그때 옳다고 생각한 걸 지금도 선택하면 좋겠다"며 용기 내어 세습을 거부하길 바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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