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이 남성보다 결코 작지 않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다 표현할 적절한 서사와 언어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중략)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역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역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은 기록해야 한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비아토르), 12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한국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하게 자기 삶을 성찰하고 기록한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를 쓴 양혜원 작가가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길이 다른 이유>를 출간했다. 그는 2012년 말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를 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클레어몬트대학원(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여성학(Women's Studies in Religion)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9월부터 지금까지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은 양혜원 작가가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이후 '종교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길이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수업' 콘셉트로 풀어낸 책이다. <복음과상황>에서 "교회 언니, '종교와 여성'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서 썼다. 여성학과 기독교 사이에서 자기 위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전작前作의 고민을 이어받는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출간과 함께,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도 '2판 서문'을 추가하고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비아토르 출판사에서 다시 냈다.

양혜원 작가는 12월 셋째 주부터 <뉴스앤조이>에서 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격주 간격으로 6차례 글을 통해 '비서구 전통의 종교 페미니즘'을 살핀다. 책 두 권을 출간하고 한국에 들어온 양혜원 작가를 11월 27일 서울 필동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수용하는 교회의 경우, 기독교와 페미니즘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지를 놓고 논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서구 전통의 종교 페미니즘'을 연재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들었다. 양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양혜원 작가를 서울 필동에서 만났다. 양혜원 작가는 기독교 서적 전문 번역가이면서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개정판과 함께 신간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이 출간됐다.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초판이 나왔던 때가 벌써 6년 전이다. 지금의 한국은 그때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페미니즘에 대한 작가님의 견해도 달라진 듯하다.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초판이 나올 당시 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교회 안에서 피해자 의식이 강했다. 내가 배운 여성학과 페미니즘이 교회 내 여성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충분히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여성학과를 다니며 공부하고 있었고, 보수 복음주의 교회에 있었다. 서문에 "나는 여성학이 진정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고 썼는데, 이 선언 자체도 파격적이었다.(웃음) 지금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한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고 이야기하지 않나. 정직한 연구로 인류에 통찰과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것은 나름 용기를 내 결단한 결과였다. 지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부끄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페미니즘이 많이 확산됐다. 나 혼자 교회 안에서 낑낑대며 했던 시기에는 조용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형성돼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쉬워진 것 같기도 하다.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를 출간한 후 내가 진지하게 공부한 분야는 '종교 페미니즘'이다. 종교 신념과 페미니즘이라는 신념을 결합하고자 하는 학문이기에 더 첨예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을 조금 공부한 것으로, 교회를 바꿔야 한다고 문제 제기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더 공부하니까 어느 지점에 와서는 페미니즘과 교회가 결국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은 이런 입장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수업' 콘셉트로 풀어낸 것이다. 제목 그대로 내가 받은 수업이자, 사람들이 접하게 될 하나의 수업인 셈이다. 어떤 경험과 계기를 통해 생각의 변화가 왔는가 하는 것들을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주류 종교 페미니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공부했다. 그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나는 비판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방향으로 계속 수업을 듣고 공부하면서 도전을 받다가 논문을 쓰면서, 결정적으로 '한국 상황에서는 이 논의로 계속 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페미니즘이 발원한 곳은 서구다. 서구에서 발원한 방식과 지금 한국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2판 서문에서, 변화된 독자층과 이번에 출간한 신간을 고려할 때 이 책이 "페미니즘의 여러 지형 중 하나, 혹은 페미니즘과는 다른 방향에서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12쪽)고 밝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한국에 소개된 페미니즘은 굉장히 일부다. 요즘에는 진리(truth)를 이야기할 때 '대문자 T'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은 진리들, '소문자 t'를 이야기한다. 페미니즘도 소문자 f로, feminisms가 됐다. 여러 페미니즘이 공존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 논의 방식을 보면, 하나의 페미니즘, 대문자 F만 존재하는 것처럼 논의를 진행한다. 내가 서구에서 접한 페미니즘은 훨씬 더 결이 다양했다.

내가 쓰는 방법론도 페미니스트 방법론이다. 논문도 이 방법론으로 썼다. 페미니즘의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읽힐 여지가 충분히 있는데, 특히 자기 전통 안에서 하는 페미니즘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유교 안에서 하는 유교 페미니즘, 이슬람 안에서 하는 이슬람 페미니즘처럼, 나는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어떻게 여성 이슈를 이야기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페미니즘 여러 지형 중 하나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페미니즘 논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지금 페미니즘이 가는 방향, 도달한 지점, 돌아가는 방식, 미국에서 내가 경험한 페미니즘이 한국으로 수입되는 양상을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이 논의에 편승하고 나면, 여성 경험을 이야기하는 한 가지 방법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탈피해 여성 경험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간다면, 페미니즘과 조금 거리가 있는 작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은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의 에필로그를 '오늘도 열심히 새로운 계획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라는 말로 마쳤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앞선 책과의 연결성을 강조한 듯하다.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는 계기와 변화들이 있다. 의도적으로 연결을 지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도 열심히 새로운 계획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새로운 것이 유학이었다. 유학 생활 동안 작업한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연결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학자나 작가를 포함해 누구든 연구해 보면 그 사람의 핵심 사상이 하나씩 있다. 그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책을 쓴다는 얘기도 있다.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는 내 과거사니까, 그때부터 갖고 있던 고민이 두 번째 책으로 연장되는 것은 맞다.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풀고자 했던 물음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전보다 통찰이 조금 더 정교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 양혜원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244쪽 / 1만 2000원,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 양혜원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226쪽 / 1만 2000원.

-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부제는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길이 다른 이유'다. 현재 교회 내 페미니즘 논의를 보면 '페미니즘과 기독교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가'를 강조한다. 결이 다르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에 와서 보니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지금 페미니즘 논의에서 가장 업데이트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해방 의지 중심 페미니즘 논의는 이제 지나간 것이 되었다. 서구식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작업이 이루어진 지도 제법 되었다. 특히 종교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풀려는 문제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가 풀려는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가 항상 만나지는 않는다. 다만 교인 중 많은 수가 여성이기에, 교회 내 여성 문제를 이해하고 논의하는 방식에 페미니즘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풀고자 하는 문제와 교회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딱 합쳐지지 않는 상황에서,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자꾸 만나게 하려 하면, 자꾸 페미니즘 입장에서 기독교를 해석하게 된다. 이 논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기독교가 가치중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는데 가부장적으로 존재해 온 것처럼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느 시점으로 되돌리면 기독교가 가부장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나는 공부를 하고 나서, 그렇지 않다고 결론짓게 됐다. 만약 처음부터 가부장적이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기독교가 될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한다. 하나의 종파로 운동을 하다가 끝났다. 이렇게 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국, 가부장제 등을 업고 갔던 데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딜레마지만, 그렇다고 그게 기독교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종교로 존속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순수한 형태의 기독교가 있었는데, 가부장제가 망쳤고, 페미니즘으로 가부장적이지 않은 기독교를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자체가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결합하려 했을 때 발생하는 오류일 수 있다. 학자들도 지적하는 지점이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이를 놓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가부장적이지 않은 순수한 기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종교가 되는지, 페미니즘이 어떤 면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유토피아를 상상하는지 등을 다뤘다. 좋든 싫든 이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처럼, 남녀 차별도 교회 안에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다.

남녀 차별만 문제인가. 지금까지 교회의 행적들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교회는 교회로 존속하는 이유가 있다. 여러 잘못과 오류가 있지만, '초월'을 매개하는 제도로서 주는 메시지가 있다. 사람들이 이뤄 온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의미들이 있기에 존속한 것이다. 그런데 자꾸 페미니즘이 순수한 유토피아가 있었던 것처럼 종교에 관여하려 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나는 '예수가 페미니스트였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자체가 계몽주의 때 생긴 개념이다. 어떻게 이 개념을 2000년 전 예수님에게 가져다 댈 수 있는가. 이는 전유專有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해야 교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를 빌려 페미니즘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하나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성경의 권위를 굳이 빌려서 페미니즘을 정당화해야 한다면, 왜 페미니즘 자체를 절대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나. 한번 물어봐야 할 문제다.

-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이 현재 한국교회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한국 사회 특징인 것 같은데, 페미니즘이 뜨면 다 페미니즘으로 여성 이슈를 말해야 하는 것처럼, 다들 페미니즘을 공부하려고 달려든다. 페미니즘이 쉬운 학문은 아니다. 관점을 확 바꿔 놓기 때문이다.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생각했던 지점을 여성 관점에서 계속해서 분석하게 한다. 여성의 경험은 남성의 경험과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성 관점으로 계속 보다 보면 그런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

요즘은 보편화한 문제 제기겠지만, 내가 2005년경 '봉사의 성별성', '섬김의 성별성'을 지적한 적이 있다. 봉사는 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데, 왜 여자는 부엌일, 남자는 의자 치우는 일로 나뉘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비롯해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했던 일들이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눈을 뜨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어느 지점까지는 도움이 된다. 교회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과 오늘날 여성의 욕구가 다르다는 점을 환기하는 데 페미니즘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의 기본 의제는 단지 그러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관점으로 세상을 재편하는 것이다.

그렇게 재편한 세상을 표현하는 쉬운 말이 '남녀평등'이다. 교회에서는 주로 수치로 환원되는 평등보다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용어로 말하자면 여성의 번영(flourishing)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페미니즘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양혜원 작가는 12월 셋째 주부터 '종교 페미니즘'을 주제로 <뉴스앤조이>에서 글을 연재한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지금 같은 방식으로 교회가 계속해서 페미니즘에 기대기 시작하면, 궁극적으로 교회 내 여성 전체가 의미 있는 삶을 찾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고 본다. 지금 페미니즘의 방향에서는 오히려 교회 여성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여성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에서 "여성들은 기록해야 한다"고 썼다. 여성들의 경험이 아주 다양하고, 여성들이 복음주의권에서 나름대로 행위성과 주체성을 갖고 해 온 일들이 있다. 단지 복음주의권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전부 다 가부장제에 공모한 사람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이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 여기 편승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해 온 일이 있고, 그렇게 해 온 데는 이유가 있다. 교회를 생각해서 했든지, 하나님나라를 생각해서 했든지,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활용해야 한다. 단지 '가부장제가 문제야'라는 식으로 풀고 가는 페미니즘 논의를 따라가면서, 그 논의를 못 따라가서 교회가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타당한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뉴스앤조이>에서 '종교 페미니즘'을 주제로 6차례 연재를 진행하기로 했다. 어떤 내용을 다룰 생각인가.

이번 연재를 통해 비서구 전통에서 논의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모습인지를 다루고자 한다. 한국에는 지금 한쪽 페미니즘이 많이 소개됐다. 이제야 종교 페미니즘도 소개되는데, 다 리버럴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이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에서도 유교 페미니즘, 이슬람 페미니즘을 잠깐 언급했는데, (각 종교가) 자기 전통 안에서 페미니즘을 활용하는 이러한 방법들은 리버럴페미니즘의 대항으로, 비서구 전통 계보의 페미니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과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기독교가 미국과 친해서인지, 우리는 서구 논의를 거의 다 그대로 가져온다. 그렇기에 우리 전통에서 논의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기독교의 페미니즘을 그대로 가져와 페미니즘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듯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라고 본다. 우리는 북유럽이나 미국을 주목하는데, 지표는 항상 이슬람권 국가들에 더 가깝다. 우리 현실을 반영한 지표는 이슬람권에 더 가까운데, 북유럽이나 미국 쪽으로 더 갈 수 있는 것처럼 부추기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는 현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 현실과 더 가까운 사람들 논의를 살피자는 것이다. 서구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유교권 국가, 이슬람권 국가를 참고해야 한다. 문화 성질이 그쪽과 훨씬 가깝다. 유교권 국가, 이슬람권 국가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참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내용을 풀어 가고자 한다.

그냥 페미니즘이 아니라 '종교 페미니즘'을 다루겠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은 종교와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페미니즘은 그대로 종교와 상관하지 않는 것이 맞다. 페미니즘 전통 안에서 하는 작업이니까. 그런데 페미니즘을 종교로 가져오는 일은 다른 문제다. 페미니즘 전통을 종교 전통으로 이식하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교와 이슬람 외에 복음주의 안에서 하는 페미니즘 작업도 다룰 예정이다. 불교를 다루지 않는 것은,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불교는 일상적 젠더 규범에 딱히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경전에 대한 전통 때문에라도, 복음주의처럼 '문서 편집'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의 기독교 문화가 참고할 지점이 있다.

이쪽의 페미니즘을 한국에서 일반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이 연재가 서구 논의에 치우친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더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종교 페미니즘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이를 계기로 우리 현실에 맞는 페미니즘, 여성 논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 달라.

책을 하나 쓰기로 했다. '페미니즘 논의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판단해 줄 근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으로 교회를 해석하는 쪽으로 가지 않고, 교회가 페미니즘을 활용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내용으로 책을 쓰고자 한다. '페미니즘 사용 설명서' 콘셉트로.

우리가 여성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교회 내 여성들이 하는 많은 고민을 풀어 줄 수 있는 장이 페미니즘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 페미니즘 논의를 끌어오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끌어와서 어떻게 여성 문제를 논의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번역도 하고 책도 내겠지만,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 있든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연구한 것을 계속 글로 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연구하면 보이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지 않나. 내가 공부한 것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세상이 새롭게 읽히는 것도 재밌고, 내가 더 이해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게 보인다는 사실도 재밌다. 자료들을 읽다가 '이렇게 풀어 가야겠다', '이거였구나' 하는 순간이 너무 좋다.(웃음) 연구가 내 천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길이 내가 뒤늦게 찾은 소명이라면 소명이다.

이번에 출간한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을 들고 있는 양혜원 작가. 뉴스앤조이 장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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