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이 포럼의 제목이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세대의 경험으로서 공통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은 이것이 맥락 없이 일어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논의를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위해 이 논의를 시도하는가를 알아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부의 코스를 처음부터 밟아 간 학자가 아니라, 제 삶의 아포리아를 풀기 위해서 공부의 길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제 삶의 아포리아는 제가 가지고 자란 담론 안에서 더 이상 제 경험을 풀어 갈 수 없을 때 발생했습니다. 이 발표에서는 먼저 그 담론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삶의 아포리아는 어떻게 경험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제시한 후, 그 해법으로 찾아간 페미니즘은 왜 그 아포리아를 풀 수 없었는지를 살펴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처음 출발했던 담론이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6월 5일 진행한 한국교회탐구센터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양혜원 연구원(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뉴스앤조이 최승현

2. 제자 담론

제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대학생 시절에 저는 제자라는 담론을 처음 접했습니다. 이 담론은 우리 세대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신앙생활 방식을 구분지어 주는 담론으로서,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하던 큐티 운동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큐티 운동은 신앙생활을 교회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으로 옮겨 놓을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매개였습니다. 목회자의 특권이던 말씀 해석을 평신도에게로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자리로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큐티를 중심으로 한 제자 담론은 담론에 멈추지 않고, 다양한 패러처치 기관의 형성으로 이어져 어느 정도 물리적인 하부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 과정과 안수라는 절차 없이 남녀 모두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캠퍼스 선교, 문서 선교, 심지어 이랜드라는 기업까지 모두 이러한 사역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로의 부름은 처음부터 성별화하여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신은 독신으로 부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한국 사회의 남자와 여자의 결혼 패턴과 그에 따른 성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자가 주요 생계 담당자이고 가정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여자는 생계 보조자와 가사 담당자, 혹은 전업주부로서 가정의 실질적 내용을 꾸리는 역할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지요. 다만 제자 담론은 여성의 이러한 역할도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제자의 사역으로 의미화해 줌으로써 그 당시에 한국 사회에서 일던 페미니즘의 영향을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서 제가 사역했던 라브리는 아예 가정을 사역의 현장으로 삼음으로써, 라브리의 주요 사역이었던 세계관 운동이라는 지적 작업을 밥상으로 가져와, 성 역할의 구분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소수의 예외적인 아내 간사를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그대로 답습이 되었지요. 라브리의 한계에 대해서는 제 글에서 좀 더 자세히 풀었습니다[<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IVP)에 수록].

한편, 한국교회는 목사와 사모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선교 단체들보다 더 경직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제자 담론으로 정체성을 구성했던 저는, 남편이 신학교를 가고 그로 인해 전도사의 사모가 되면서 삶의 아포리아를 경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 역할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제자 담론에 심각한 결함을 발견한 셈이지요.

3.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정치의 한계

저보다 먼저 교회 안의 여성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이화여대 여성학과에 진학한 선배의 소개로 저도 이 아포리아를 여성학이라는 학문으로 풀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처음으로, 그리고 뒤늦게 여성학을 접했습니다. (이미 대학 동기들 두 명이 여성학과에 진학하고도 한참 후에 저는 그곳에 입학했는데, 그 친구들이 제가 여성학과에 왔다는 말을 듣고 믿기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석사과정으로 시작된 여성학 공부는 그로부터 12년 뒤에 종교여성학으로 박사 공부를 하면서 심화가 되었는데, 종교와 페미니즘의 접목을 시도하는 이 학문을 연구하면 할수록 종교와 페미니즘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보였고, 궁극적으로 그 둘은 끝까지 같은 배를 타기는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모든 억압의 종식입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을 제거할 방법들을 찾는 동시에, 여성 억압이 없는 사회의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또한 그러한 변화를 가져올 정치적 실천을 병행하는 학문입니다. 그러한 과정 가운데 성차에 근거한 억압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억압들을 규명해 간 것이지요.

그런데 그 억압의 주범으로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지목되었고, 그 가부장제를 지속하게 한 주요 제도로서 서구 기독교가 지목되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주로 진행되었던 이러한 페미니스트 의제를 처음 기독교 안으로 가져왔을 때 중요한 작업은 당연히 성경을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양가적인 입장에도 그의 평등사상에 더 무게를 실어 주었지요.

바울의 양가적 입장이란, 그가, 남녀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주변 사회와의 관계에서 기독교가 존속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규범들도 제시했다는 말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중에서 당연히 평등의 입장에 비중을 둡니다.

한편 비서구권의 경우, 남녀평등 관점의 해석만이 아니라 서구 중심으로 구성된 기독교 영성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탈식민 관점에서 토착 신앙의 요소들을 긍정하고 나아가서 혼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를 샤먼으로 해석한 정현경 교수의 아시아 여성 신학 작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모든 억압의 종식을 의제로 하는 이러한 리버럴리즘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모든 개인이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차별이나 불편을 겪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러한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를 구현한 집단이 바로 서구 중산층 백인 남성입니다. 여기에서 중산층은 수입 수준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구체제 사회의 상속된 신분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루어 낸 신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신분이 다른 집단을 타자화하면서 형성되었다는 것 때문에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서구 백인 중산층 남성이 누리는 것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제로 회귀해 버린 형국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추구해 온 의제들을 보면 자신의 경쟁 상대인 백인 남성이 누렸던 권력과 권위, 이동성과 자율성 등을 자신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의 움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이루어졌음에도, 페미니스트 정치는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적 행위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모던적인 분절된 자아(fragmented self)로는 당위도 형성되기 힘들고, 변화의 주체도 상정하기가 힘들지요. 페미니즘이 왜 성소수자와 연대하는지 중층적 억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 글에서 설명을 해 두었습니다.

이에 반해 비서구 여성은 내심 서구 백인 여성이 누리는 것과 같은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 싶다 해도, 자신의 인종 때문에 경험하는 한계를 떠안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인종이 성별보다 더 비중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종을 구성한 전통과 늘 긴장 관계에 있게 되지요. 특히 자기 전통을 정치적 의제로 삼는 남성 민족주의자들 때문에 그 긴장이 심화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자유주의 서구 기독교가 아닌, 보수 기독교나 이슬람, 유교 등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모델을 유지하는 그룹에 속한 여성들은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긴장 관계를 느끼게 됩니다.

지금 한국 복음주의권 여성들이 서 있는 자리는 아마도 이 후자의 지점 어딘가일 것입니다. 기독교 내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의 원인은 유교 문화라고 상정하기도 하지만, 문화와 종교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기독교를 경험하는 방식은 한국이라고 하는 지역성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언어를 기독교의 평등 정신과 적절하게 타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남녀평등의 사상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 시도가 전혀 열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근대적인 평등의 개념이 존재하기 이전에 기록된 것이고, 따라서 평등이 그 핵심 내용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말할 수 있는 평등은 영혼의 평등 밖에 없고,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사는 한은 어느 정도 질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성경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 여성사 연구들도 수용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제는 역사가 이만큼 흘렀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발전시켜 온 평등사상을 더 폭넓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그것을 더 온전히 실천하는 방향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계속 평등의 의제를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종교가 평등사상이 전부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종교는 평등하지 않은 채로 끝날 확률이 높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좀 더 복잡한 인간의 삶을 다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축소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평등으로 축소된 종교는 결국 페미니즘이냐 종교냐를 선택하는 순간에 서게 만듭니다. 페미니즘의 의제를 온전히 수용하지 않는 종교는 거부하고, 페미니즘의 의제를 중심으로 종교를 재구성하게 되는데, 그럴 때, 그러한 페미니즘의 의제에 동조하지 않는 대다수의 여성은, 억압적인 종교 제도를 존속하게 하는 공모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동안 교회의 존속과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세뇌되어 활동해 온 것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여성들의 경험을 아무리 존중하려 해도 그 프랙티스가 가부장제의 종식을 지향하지 않으면 결국 다 한계에 갇힌 삶으로 평가가 됩니다. 이 말은 결국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 개인도, 이미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국가 제도 안에서 이성애자로 사는 이상, 가부장제의 종식이라는 의제에 따라 일관되게 살 수 없음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개인의 삶도 다 대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신을 해방해 줄 것 같았던 지식이 오히려 자신을 억압하는 경험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이념이 그렇듯, 자기 검열의 칼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 안의 젠더 질서를 옹호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여성의 경험, 특히 종교적 경험은 페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다 설명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페미니즘의 잣대를 들이대면 오히려 해방이 아닌 억압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을 하다 보면 그 의제를 위해서 실제 여성의 경험을 오히려 간과하는 경우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언급했듯, 왜 여성들 스스로가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들이 그 예입니다. 그 선택이 여성들이 하는 선택으로서 의미 있고 유효한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같이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4. 제자 담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제자 담론은 이러한 페미니스트 의제에 반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제자 담론의 강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자의 영성과 연결되면서 율법주의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검열로 작동할 수 있었던 기독교를 유진 피터슨과 같은 저자는 삶과 인격의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우리가 경직된 기독교에 갇히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강점은, "개인"의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개인이 받는 부름입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대신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 담론을 공유한 공동체 안에서는 제자의 부름을 받아서 가는 개인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사모라는 역할에 갇혀서 힘들어할 때,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제자로서의 삶은 어디로 갔는가 였습니다. 결국 저는 그 담론에 힘입어 사모라는 자리를 떨치고 혼자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지지해준 공동체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이 쉬웠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책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제 인생을 가능케 해 준, 막달에 죽은 채 태어난 제 아이에게 저는 큰 빚을 졌습니다. 그 경험의 서사를 풀어내면서 저는 저를 키워 준 제자라는 담론을 통해 전통적인 목회자 가정의 사모 서사에서도 벗어나고, 나중에는 페미니즘의 서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의 서사에서 배운 게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서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동행하다가 길을 달리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이 모든 여성의 모든 경험을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들의,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작업을 통해 제자 담론을 다시 조명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연구한 박완서와 공지영 작가는 페미니즘 소설을 쓰고 1980~199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흐름에 동참했음에도, 자신의 종교에서는 페미니스트 의제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을 존속하게 한다고 공격하는, 남녀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했고, 하나님의 생각과 이 세상의 방식은 다르다는 이원주의적 사고를 견지했습니다. 이들이 종교에서 찾은 것은 페미니즘에서 찾은 것과 달랐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금 전에 언급한 제자 담론의 강점을 생각해 볼 때, 그 담론이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개개인의 삶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었는지, 우리가 충분히 듣기도 전에 성급하게 정치적 의제에 휩쓸린 것 같다는 인상을 저는 받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자라는 담론으로 형성된 우리 세대의 여성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서 사랑과 성과 일과 사역을 경험하면서 자기를 구성해 갔는지에 대한 기록과 분석입니다. 그러한 작업들을 바탕으로 그들이 교회에 기여한 바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 제자 담론이 계속해서 한국의 기독교인 여성 개인에게 유의미한 담론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만큼만 이루어 내도 상당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양혜원 /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위 글은 6월 5일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진행한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포럼에서 양혜원 연구원이 'Pathmaker 세대, 여성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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