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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그리스도인] "제주도민에게 사과할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인터뷰] 제주 4·3 사과 서명운동 제안한 정국진 씨
  • 유영 (young2@newsnjoy.or.kr)
  • 승인 2018.03.23 15:50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올 한 해 이 비극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특별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4·3 사건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이가 제주 4·3 사건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건과 깊이 연루돼 있는데도 그동안 4·3의 진실을 규명하거나 아픔을 어루만지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외면해 온 역사를 직면하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 신앙을 어떻게 재정비할지 함께 성찰하고자 '4·3과 그리스도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 4·3특별취재팀

"제주도의 기독교인 비율은 육지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그 이유를 섬이어서 무속 신앙이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여러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은 전국에서 가장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 무속신앙이 팽배한 한 섬은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높고, 다른 섬은 하위권이다. 한국교회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국진 씨는 그 무언가가 제주 4·3 사건과 한국교회의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제주 4·3 70주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라는 성명문을 작성하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3월 20일부터 기독교인들이 제주 4·3 사건에서 저지른 잘못과 그동안 외면했던 역사를 사죄하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며 서명을 받고 있다. 하루 만에 15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3월 21일 정국진 씨를 경기도 김포시에서 만났다.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이유와 과정, 기대하는 바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정 씨와 나눈 일문일답.

- 젊은 세대에게 제주 4·3은 낯선 사건이다. 제주 4·3에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됐나.

제주 4·3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기독교인이 제주 4·3에 어떤 형태로 가담했는지는 최근 다녀온 기행을 통해 알았다. 2017년 12월,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제주 4·3 기행을 다녀왔다. 제주4·3연구소 김은희 연구실장이 안내해 줬는데, 기독교인이 어떻게 연루됐는지 들었다. 올해 1월에는 '제주 다크 투어'에 참여했다. 제주 다크 투어는 제주 4·3과 관련한 기행이다. 참상이 남긴 고통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성명문 기초를 같이 작성한 이윤석 씨와 대화하면서 제주 4·3을 더 많이 알아 갈 수 있었다. 이윤석 씨는 제주에서 유가족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이윤석 씨가 만난 한 할머니는 "예수쟁이가 남편을 죽였다"고 말했다. 제사가 같은 날인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런 비극 앞에서 이윤석 씨는 개인적으로 사과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개인적 사과를 넘어서 역사를 마주하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싶었다.

기독교인들이 제주 4·3에 대해 함께 사과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제안한 정국진 씨. 뉴스앤조이 유영

- 한국교회가 제주 4·3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서명 참여자 중에 '교회에서 제주 4·3은 공산 폭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몇 분이 있었다.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주 4·3은 다양한 면이 있다. 토벌대가 남로당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한 사실도 역사다. 남로당도 학살을 자행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점이다. 이게 제주 4·3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북청년회가 양민 학살을 많이 했다. 서북청년회는 개신교와 연관이 깊다. 공산주의자를 토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 옳다고 해도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면, 억울함을 풀어 줘야 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대다수 한국교회는 이를 쉬쉬하려고 하는 것 같다.

- 기독교인들이 제주 4·3을 외면한 일을 사죄하는 행동이 현재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가.

우리 사회는 먼저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는 일에 서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인종차별 정책이 폐기된 후, 백인 가해자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청했고, 흑인 피해자들이 용서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를 통해 흑백 갈등이 완화됐다. 극심한 흑백갈등이 있었던 나라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화해의 중심에는 진실화해위원회와 데즈먼드 투투 주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 역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친일파도 사과한 적이 없다. 4·3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개신교도 다르지 않다. 흔히 개신교에서 우상숭배라고 인정한 신사참배와 친일 행적에 대해 제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이어져 성폭력, 세습 등 목회자의 욕망이 일으킨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분위기를 키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가담한 역사적 큰 죄를 제대로 회개했더라면, 성폭력·세습 등이 교회에서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2007년에 대규모 집회가 많이 열렸다. 하지만 이후 한국교회는 추락만 거듭했다. 한국교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평양 대부흥은 회개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2007년에는 한국교회가 역사적 과오에 대해 회개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평신도부터 사죄하고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변화하고 사회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교회가 반성하고 함께 보듬어야 하는 역사다. 과오를 인정하는 부분은 교회 개혁과도 연관이 깊다. 교회 개혁은 우리를 제대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교회 개혁을 위해서도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할 부분은 회개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그래야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 분위기가 변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 분포 지도. 역사적 비극에서 한국교회가 반성하고 보듬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서명을 몇 명까지 받을 생각인가.

처음에는 목표를 두지 않았다. 몇 명이 되더라도 일단, 마음을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서명을 받기 시작한 하루 만에 150여 명이 참여했다. 430명 정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4300명까지 참여하면 어떨까 기대하고 있다.

-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부활절을 맞아 제주에 뜻이 맞는 교회에서 발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주 4·3 70주년을 기리는 행사에서 발표해도 좋을 것 같다.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어떤 방법이든 제주도민에게 성명서와 4·3을 기억하는 기독교인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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