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학교 대토론회가 12월 7일 장신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정기원 교장, 김철경 교장, 제철웅 교수, 박상진 교수, 송인수 대표, 김진우 대표.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교육'은 곧 '입시'로 이해되는 한국에서 기독교 학교의 위치는 어디이고 역할은 무엇일까. 기독교 학교도 입시를 쫓아가는 꼴은 아닐까. 종교교육이 점차 제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독교 정신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기독교 정신'은 무엇일까.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와 한국기독교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가 '한국에서 기독교 학교가 존속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12월 7일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기독교 교육 문제로 현직 사립학교 교사들과 기독 교육 단체들이 토론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토론에는 김철경 교장(대광고)과 정기원 교장(밀알두레학교), 송인수 공동대표(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진우 공동대표(좋은교사운동), 교육법 전문가 제철웅 교수(한양대)가 나섰다.

기독교 학교 현실은?
"국가 주도하는 제도 바뀌어야"
"인성 교육으로 가치관 변화 모색해야"

사회를 맡은 박상진 교수(장신대)는 먼저 한국 기독교 학교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었다. 제철웅 교수는 '국가 주도의 교육'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제 교수는 "한국은 유감스럽게도 5·16과 12·12 쿠데타로 국가 주도의 교육이 고착됐다. 이때부터 교육을 국가가 독점했고, 국민도 문제가 생기면 국가에 해결을 바라게 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학이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진우 대표는 "기독교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 게 잘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교육 연구자들의 평가를 보면, 조선의 교육은 출세 교육이었는데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교육은 인간 교육이었다"고 했다. "교과과정 안에서 기독교 가치관에 기초한 교육을 하고, 학생들이 기독교에 매력을 느껴 감화하는 데까지 이르는 게 기독교 학교의 비전이어야 한다"고 했다.

현직 기독교 학교 교장들은 건학 이념에 기초한 교육을 하고 싶어도 제도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철경 교장은 "결론적으로 현재 기독교 교육을 제대로 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다. 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많은 학교의 건학 이념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섬기는 인재를 길러 내는 게 '애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교가 교육의 주체가 되기 힘들다. 대광고도 자사고지만 자율성이 없다. 교육청에서 토씨 하나까지 간섭하는데 어떻게 자율 학교가 되겠나. 타령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기독교 대안 학교 밀알두레학교 정기원 교장은 제도에 얽매이는 사립학교에서 뛰쳐나온 게 대안 학교라고 했다. "대안 학교에서는 사립 미션 스쿨이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다.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학교가 교육과정을 절대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오히려 통제가 불가능해서 위험하다 싶을 정도"라고 했다.

대안 학교는 오히려 제도권에서 벗어난 게 걱정거리였다. 정 교장은 "대안 교육은 미인가와 인가가 있는데, 대부분이 미인가다. 정부에서는 비인가라고 하고, 실감 나게 말하면 무허가 학교다. 마음대로 구조를 변경할 수 있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무허가 주택 같은 불안이 대안 학교에 있다"고 말했다.

송인수 대표는 대학 진학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고등학교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입시 탈피 강조
"사학, 결정적 순간에는 입시 선택"
"결과 따라 학교 평가하는 문화 바꿔야"

현재 한국에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 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 등 다양한 고등학교가 있다. 특목고는 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국제고 등으로 나뉜다. 이름은 다르지만, '입시에 유리한 학교' 내지는 '귀족학교'로까지 인식된다.

송인수 대표는 사립학교의 존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사학이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곳으로 전락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많은 교육 현장은, 평상시에는 어떨지 모르나 결정적 상황에서는 공부를 선택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 기독교 교육을 강조해도 결정적 순간에는 '결국 입시 포기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순간 기독교 교육은 액세서리가 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자사고 20여 개 현황을 조사했다는 송 대표는, "학생들의 하교 시간이 밤 11~12시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부가 공립학교는 고교 국영수 교과 편성 비율을 50% 이하로 억제했지만, 자사고는 권장 사항이다. 국영수 비율 50%를 넘기는 자사고가 다반사다.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입시 경쟁을 이기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이 너무 실망스럽다. 여기에는 기독교 학교도 상당수 포함된다. 이 속에서 아이들이 신앙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철경 교장은 반론을 제기했다. 현실적으로 자사고라고 해도 교육 당국의 통제를 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교장은 "서울형 자사고에서 학생 선발과 성적은 무관하다. 20%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 계층에서 뽑고, 소득이 낮으면 교육 급여라고 하는 바우처를 부모에게 주고 있는 상황이다. 진짜 사교육을 조장하는 건 특목고 중에서도 과학고"라고 했다.

사회적 인식도 자사고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한다고 했다. 김철경 교장은 "대광고는 국영수 비율을 48%로 맞췄고, 재량 활동도 자유롭게 한다. 우리로서는 입시와 인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보니 학부모로부터 상당히 지탄받고 있다. '입시는 어쩌고 이상한 프로그램만 운영하느냐'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 교장은 "입시 결과가 좋게 나오면 입시 따라가는 학교라고 비아냥대고, 좋지 않으면 자사고인데 왜 딴짓하느냐고 비아냥댄다. 기본적으로 대학이라는 입시 체제를 완전히 내팽개치고 진짜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프레임을 만들어 줬는가. 대입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 최선을 다해 수업하는 선생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철경 교장은 입시를 잘해도 비판받고 못해도 비판받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자율성을 갖도록 제도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사학에도 국가 재정 지원
"경제력 상관없는 균등 교육 가능"

패널들은 정부가 사립학교에도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립학교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해 수업료가 올라가고 양극화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김진우 대표는 "물론 사립학교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20% 뽑는 게 바람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을 억지로 조합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립학교가 자율성 확보를 위해 재정 지원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해야 했나 싶다. 계층 분리라는 오명을 자초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경제력과 상관없이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김철경 교장은, 이런 제도는 사립학교가 원한 게 아니라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제철웅 교수는 "유럽은 국가와 학교가 계약을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내리꽂지 않고, 국가와 학교, 학부모가 계약이라는 틀에서 합의한다. 교육 방향을 정부에 제시하고 재정 지원도 요구한다. 한국도 그 지점에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헌법이 추상적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므로, 잘사는 사람끼리 자녀를 귀족학교에 보내 공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부터 논의해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통합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다양한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것을 어릴 때부터 배울 수 있는 공립학교의 중요성이 크다. 공립학교가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주면서, 사학은 각자의 가치관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자율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 이런 모습이 헌법적 가치에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김진우 대표는, 기독교 학교들이 종교교육이라는 형식에 매달리지 말고 기독교 정신을 함양하도록 하는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학교 내 종교의자유 문제
"법 개정으로 수업권 보장"
"채플 강요보다는 가치관 교육을"

기독교 학교들은 종교교육과 채플을 필수처럼 해 왔다. 그러다가 2007년 종교의자유를 주장했던 강의석 군의 대광고 채플 사건 이후, 학교 내에서 종교 수업과 채플을 강요하지 못하게 됐다.

정기원 교장은 "2007년 대광고 사건 때 기독교 학교들이 잘못했다고 본다. 강의석이 학교를 상대로 종교의자유를 달라고 했을 때, 학교가 아닌 정부 상대로 이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가 뺑뺑이 돌려서 학생이 학교에 왔는데, 학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교육기본법에 보장된 대로 사학 건학 이념을 보장하고, 학생이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당면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인수 대표는 먼저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립 우촌초등학교 예를 들었다. "1년에 한 번씩 사립초 영어 몰입 교육의 실태를 분석하고 발표한다. 우촌초는 불법인 영어 몰입 교육을 1~2학년 때부터 가장 심하게 하고 학비도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이 입시 귀족 초등학교라고 보는 거다. 우촌초는 기독교 학교다. 국민들에게 기독교가 어떻게 비칠까. 결국 우리 사회에서 특권층에 들어가기 위해 관심 있는 그룹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송 대표는 "기독교 교육에 대한 견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놓고 종교교육을 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결국 못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를 막기 위해 싸울 때, 기독교 학교의 파트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래, 잘한다. 우리도 동조하겠다'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 학교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입시 경쟁이 학교 유형에 따라 가속화해 아이들이 죽는 상황에서, 기독교 교육을 할 테니 권한만 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국민을 설득하려면 슬기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기원 교장은 대안 학교가 사립학교가 지니지 못한 자율성이 가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불안도 적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패널들은 토론을 마치며 저마다 미처 하지 못한 얘기를 했다. 김철경 교장은 "사립학교에 대한 오해가 불식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에서 계속 '잘사는 집 애는 공부 잘해서 귀족학교로 모인다'는 공식을 만들어 시민을 호도하지 말아 달라. 대광고도 경쟁하지 않고 서로 잘 어울리며 윈윈하고 있다. 입시와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고민도 늘 하고 있다"고 했다.

김진우 대표는 "기독교 학교는 공공성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투명한 경영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공공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대광고의 진정성은 익히 알고 있다"며, 대광고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대광고 같은 학교가 있다 하더라도 자사고 입학생 대부분이 중학생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고, 소득과 성적은 결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자사고 문제는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광고 때문에 다른 학교가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기원 교장은 "학교는 '배울 학'(學) 자에 '학교 교'(校) 자다. 먼저 배움에 대한 즐거움과 지적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교'는 '나무 목' 자에 '사귈 교' 자가 붙은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과 친구, 선후배 간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포기한 지 오래다. 사귐만 추구하며 다니다가 선생에게 인정 못 받고 친구에게 따돌림 받아 대안 학교로 오는 경우가 많다. 정 교장은 "매미 잡고 개구리 잡으면 대안 학교 교육인 양 생각하지만, 대안 학교 역시 '학'(學)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송 대표는 "국민의 마음속에 북극성과 같은 학교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학교가 잘한다 못한다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서의 학교를 기독교 학교가 맡아서, 국민에게 여운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입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복음의 의미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증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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