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최근 로이 무어(Roy Moore)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는 30여 년 전 10대 소녀 여러 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을 지냈고 공화당 내에서도 가장 극우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근본주의 성향이 짙은 복음주의 개신교인을 자처하며 동성 결혼과 무슬림 이민에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무어 의원의 성 추문에도 그의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근본주의 개신교의 본산 '바이블벨트'(Bible Belt)에 속한 앨라배마주가 그의 주 무대이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30여 년 전 성 추문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미국 종교 전문 매체 <릴리전뉴스서비스>(RNS)는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은 윤리보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무어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11월 20일 보도했다.

"개신교 가르침 거스르는 정당정치"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지도자와 그를 지지하는 개신교인들. 미국의 신학자·목회자 300명이 이런 현상을 개탄하는 '보스턴 선언'(The Boston Decalaration)을 11월 20일(현지 시각) 발표했다(전문 바로 가기). "신학자들은 미국 개신교의 부패에 도전한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목회자, 신학자 다수가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신학자·목회자들이 근본주의 개신교의 부패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어깨 위에 굵은 베를 두르고 얼굴에는 재를 뒤집어썼다. Michael Granzen 페이스북 갈무리

프린스턴신학교·유니언신학교·시카고신학교·듀크대학교·클레어몬트신학교·보스턴대학교 등에 소속된 신학자들과, 쉐인 클레어본(Shane Claiborne), 브라이언 맥클라렌(Brian Mclaren),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Jonathan Wilson-Hartgrove) 등 유명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최희안 교수(보스턴대학교) 등 한국인 신학자들도 함께했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이 선언을 발표하면서 퍼포먼스도 곁들였다. 선언서를 발표하는 날 아침, 대표자들은 보스턴 올드사우스교회(Old South Church)에 모였다. 이들은 굵은베를 어깨 위에 두르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썼다. 성경에서 회개를 표하는 이 두 상징을 직접 시연하는 것으로 인종 증오와 성적 학대에 무관심한 근본주의 개신교인을 향한 슬픔을 표현했다.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파멜라 라잇지(Pamela R. Lightsey) 교수는 "오늘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기본 가르침을 외면한 채 정당정치를 펼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으로 인종 증오와 성적 학대를 변명한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민주당원보다 소아성애자에 투표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것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기본적인 '동족 의식'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의 사랑·자비와 반대되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뉴욕신학대학원의 피터 굿윈 헬트젤(Peter Goodwin Heltzel) 교수는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은 배제, 착취, 증오의 정치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가장 작은 자'(마태복음 25장)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소명에 응답하면서, 기도를 혁명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회심했다는 자들의 회심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보스턴 선언'은 백인우월주의 위주로 변질된 미국 보수주의 개신교를 고발한다. △인종차별과 개신교 권력자의 성범죄에 침묵 △여성 차별 당연시 △LGBT(성소수자) 인권 부인 △이슬람교인 이민자를 거부하는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한 명이 억압받을 때마다, 거룩하고 생명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그들의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미국에서 죽음과 악이 최고로 창궐하는 순간이다. (중략) 예수의 길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의 삶은 세상을 억압하는 죽음의 능력을 따르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에 대항하고, 비난하고, 저항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위법 및 그들을 배제하는 가부장적이고 여성 혐오 세대의 유산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권력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성적 학대와 괴롭힘에 강하게 대항한다."

선언문을 작성한 신학자들은 '보스턴 선언'이 1934년 독일에서 발표한 '바르멘 선언'을 따 온 것이라고 했다. '바르멘 선언'은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마틴 니묄러 등이 주축이 돼 작성한 것으로, 나치 승인을 받은 제국 교회가 이교적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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