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회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선홍색과 푸르스름한 빛깔의 각종 생선 살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방에서 젓가락질을 했다. 그런데 김홍기 씨는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옆에 있던 이병기 씨가 물었다. "형은 왜 안 먹어?" 홍기 씨가 대답했다. "회를 처음 먹어 봐." 병기 씨가 회를 한 점 집어 홍기 씨 입에 넣었다. 카메라가 홍기 씨 얼굴을 확대했다. 홍기 씨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나온 이들의 일상을 다룬 영상 속 한 장면이다. 김홍기 씨와 이병기 씨는 모두 4년 전 시설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하고 있다. 둘은 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알게 된 사이다. 다른 탈시설 장애인과 함께 '벗바리'라는 자조 모임을 만들었다. 벗바리는 순우리말로,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보살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여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제3회 '탈시설 - 자립 생활 대회'가 8월 2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영등포장애인복지관·벗바리가 공동 주최했다. 장애인·비장애인 70여 명이 행사장을 메웠다.

주최 측은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고려해 책상과 의자를 모두 양쪽으로 걷어 냈다. 텅 빈 행사장 중앙을 전동 휠체어가 채웠다. 활동 보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사이사이 의자를 놓고 앉았다. 사회를 본 두 남녀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었다.

'제3회 탈시설-자립 생활 대회'에 참석한 김병기 씨(사진에서 맨 오른쪽)가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동 휠체어들이 행사장 중앙을 메웠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삶

추경진 씨는 이날 '나의 탈시설 이야기'를 주제로 자신의 경험을 발표했다. 젊었을 때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온 추경진 씨는 15년간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지내다 지난해 1월 시설에서 나왔다. 그가 있었던 수용 시설은 2년 전 교황이 방한할 때 방문했을 정도로 큰 시설이다. 부당한 일을 당한 건 아니다. 한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삶이 힘들었다. 어느 날, 한 자원봉사자가 "매일 이렇게 예쁜 자연경관을 볼 수 있어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경진 씨는 자기도 모르게 "어디 한번 10년 넘게 살아 보세요!"라고 성을 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며 시설에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을 때였다. 경진 씨는 자신보다 장애가 심한 동생들이 탈시설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가서 고생만 하고 금방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정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예상외로 동생들이 잘 정착해 즐겁게 살고 있었다. 시설에서 좋았던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었다. 평생 수용 시설에서 이렇게 살다 죽을 바에는 차라리 밖으로 나와 할 수 있는 만큼 살다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탈시설을 해서 좋은 건, 무엇이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거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가끔 잠자거나 먹을 때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내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좋은 추억을 쌓고 있어 지금 삶이 만족스럽다."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나와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하는 이들도 있다. 대회에서 두 커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김동림·김미경 씨 부부, 이상우·최은영 씨 커플이다. 이들은 서로 어떻게 만나 연인 관계가 됐는지 소개했다. 

넷 모두 장애가 있지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은영 씨는 의사소통 보조 기구(AAC)를 이용해 상우 씨와 소통한다. 둘은 집을 구하는 대로 결혼할 계획이다.

추경진 씨(사진 가운데)가 '나의 탈시설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유두선 씨(사진 왼쪽)는 장애등급제가 당사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장애인 자립 가로막는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이날 탈시설 장애인들은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가 갖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황인현 씨는 부양의무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소개했다. 정기 소득이 없는 인현 씨는 2010년부터 매년 기초 생활 수급을 신청했는데, 번번이 떨어진다고 했다. 시골에 있는 노모에게 작은 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자녀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어머니에게, 부양의무를 지게 하는 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많은 장애인이 부양의무제가 가진 한계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유두선 씨는 장애등급제가 당사자의 현실을 방연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등급을 분류할 때, 장애 당사자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고려하지 않고, 장애 유형과 증상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는 대다수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기 위해서는 활동 보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데, 해당 등급이 안 돼 서비스를 못 받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실제 필요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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