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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장애인 사역①] 장애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투쟁으로 얻어 낸 인권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7.08.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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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역을 오갈 때마다 장애인 인권 단체 농성장과 마주칩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 이들이 5년째 외치는 구호입니다.

문득 한국교회의 장애인 사역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집단 못지않게 장애인 사역에 열심인 곳이 교계입니다. 주요 교단은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 산하에 있는 각종 수용 시설, 보호시설, 종합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서가 있는 교회도 많습니다. 봉사하는 교인들 모습을 보면 '헌신'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교회가 하는 장애인 사역과 장애인 인권 단체가 내는 목소리는 뭔가 어긋나 보입니다. 장애인 수용 시설 같은 영역에서 교회와 인권 단체의 입장은 서로 다른 듯합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뉴스앤조이>는 교회가 하고 있는 장애인 사역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첫 기사는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내는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투쟁의 역사를 짚어 봅니다. 이들이 투쟁으로 얻어 낸 것을 살펴보는 일은 장애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서울 올림픽을 6개월 앞둔 1988년 3월 28일. 장애인 거주 시설 '보람의 집' 장애인 12명이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소예배실을 점거해 단식 농성을 벌였다.

당시 한국교회는 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에 지원금을 기부하려 했다. 장애인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지원금을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장애인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장애인 올림픽 예산은 200~300억 원이었던 반면, 장애인 복지 한 해 예산은 50억 원 수준이었다.

점거 농성은 한 달 만에 끝이 났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한국에서의 장애인 '최초' 대중 집회가 1988년 4월 16일 명동에서 열렸다. '장애인 권익 촉진 범국민 결의 대회'였다. 집회를 연 서울·경기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 복지 정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장애인 올림픽을 개최하는 건 장애인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4월 17일 장애인 올림픽 연습장 중 하나인 삼육재활원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7월 20일 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 본부를 점거했다. 장애인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인 10월 9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서는 '기만적인 장애인 올림픽 거부 및 장애인 생존권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차별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되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국제 행사를 앞두고 장애인 단체들이 연달아 시위를 벌인 것은 한국 사회의 장애인 복지 부재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맞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했다. 정부가 최초로 장애인 복지를 담은 법이었지만, 실상은 일본 법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었다. 추상적인 법조문도 문제였다. 대다수 법조문이 "~을 위해 노력한다"고 되어 있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 법에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한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아울러 장애인이 사회에서 생산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고용촉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장애인 올림픽 문제가 수면 아래 깔려 있던 장애인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올림픽 이후에도 장애인 권익 증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전국 31개 장애인 단체는 1989년 11월 1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위한 400만 장애인 결의 대회'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고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됐다.

이 일은 기존 장애인 운동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애 운동은 거의 전무했다. 장애 유형에 따른 장애인 단체가 일부 있었지만 이익집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한국 장애 운동의 어제와 오늘>(진보평론)]. 1980년대 후반에야 장애 당사자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장애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사회구조 문제로 인식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한국 장애 운동의 성과와 과제>(사회복지정책)].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장애 운동
중증 장애인 중심 이동권·생존권 주장

장애인 인권 운동은 1990년대 후반 들어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 주체가 경증 장애인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이동했다. 노동·교육 문제에서 이동권, 참정권, 자립 생활 등 생활 전반과 관련한 사안으로 운동이 확대됐다.

이동권 문제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9년 혜화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 추락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도 추락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70대 장애인 여성이 사망하고 남편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동권연대)가 출범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던 장애인들이 사고를 겪는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2002년 발산역에서 리프트 추락 사고가 발생했고, 2003년 송내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2004년 중증 장애인이 서울역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해 두개골 일부가 파열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동권연대는 각종 시위와 투쟁으로 이동권 문제를 사회 전역에 알렸다. 휠체어를 탄 채 버스 탑승을 시도하고, 장애인 50여 명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 위로 뛰어내려 시위했다. 이동권 확보를 위한 100만 인 서명운동과 서울역 천막 농성도 벌였다.

결국 2002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시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 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 운동으로 이어졌고, 2005년 1월 이동편의법이 제정됐다.

장애인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후 이동권연대는 전국 장애인 단체와 함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박경석 상임공동대표)를 조직해 '자립 생활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립 생활 운동'은 중증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이 장애인 주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 자립 생활에 필요한 활동 보조 서비스 제도를 정부에 요구했다. 활동 보조 서비스는 국가나 지자체가 임금을 주고 장애인들의 이동과 생활을 보조하는 인력을 파견하는 제도다. 활동 보조가 보장되면, 장애인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전장연은 정부의 계속되는 외면에 2006년 43일간 노숙 농성을 하고 삭발 투쟁을 벌였다.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맨몸으로 기어가며 활동 보조 서비스 도입을 주장했다. 그 결과, 2007년 5월 중증장애인을 위한 활동 보조 서비스가 전국 시범 사업으로 시행되고, 장애인복지법이 전면 개정됐다.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 자립 생활 지원' 항목이 새로 추가됐다.

이외 장애인 인권 단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참정권·학습권·생존권 확보 운동 △여성 장애인 인권 확보 운동 △장애인연금법 제정 운동 등을 펼쳤다.

국가인권위원회 김원영 조사관은 이 시기 장애인 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소수자 운동의 측면에서 2000년대는 장애인 운동의 시대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다소 과격해 보이는 다양한 전술을 동원해 줄기차게 운동을 전개했다." [<공익과 인권> 8권, '특집Ⅱ: 장애인 인권 운동 10년의 회고와 과제', 209쪽]

5년째 광화문역 농성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 요구

현재 장애인 인권 단체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3대 적폐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 시설을 꼽는다. 이들은 3대 적폐 폐지를 주장하며 광화문 역사 안에서 무기한 농성 중이다. 올해로 5년째다.

'장애등급제'는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1등급부터 6등급까지 나누는 제도다. 장애인 인권 단체는 장애 당사자의 필요가 아닌 의학적 손실을 기준으로 등급을 적용하는 현행 제도가 오히려 장애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송국현 씨가 2014년 4월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혼자서 몸을 가눌 수 없는데도 3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1·2급 장애인만 활동 보조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 기자 주). 그는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그에게 3급을 부여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송국현 씨는 탈출하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사망했다. 침대에서 출입문까지 거리는 불과 5m였다.

'부양의무제'는 말 그대로 부모나 자식 등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지게 하는 제도다. 생계가 어렵고 고정 수입이 없는 이는 기초 생활 보장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이 있다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인이 된 중증 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늙은 부모가 가난에 지쳐 자식을 살해하거나, 장애인 자녀가 수급비를 받을 수 있도록 부모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녀들과 연락이 끊겨 혼자 사는데도 호적에 남아 있는 자녀 때문에 장애인 연금을 못 받는 이들도 있다.

장애인 인권 단체는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을 사회와 떨어뜨려 시설에 수용하는 건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한다. 형제복지원, 인간원, 대구시립희망원 사태처럼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사태도 문제다. 장애인 단체는 장애인들이 삶의 결정권을 갖고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수용 시설 폐지와 활동 보조 서비스 및 평생 교육 확충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는 현재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당사자들 바람은
독립된 주체로
사람답게 사는 것

1980년대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부터 2000년 장애인 편의 시설 확충과 활동 보조 서비스 제정, 오늘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 예고까지, 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요구해 온 결과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진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을 시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30여 년간 줄기차게 정부와 사회에 요구해 왔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독립된 주체로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살고 싶다고.

한국교회는 과거 지역사회 안에 있는 고아와 장애인, 부랑자 등을 돌보아 왔다. 시설을 만들고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이것이 현재 대형 사회복지법인으로 발전했다. 수십·수백 개 기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건 시혜나 구호가 아니다. 복지시설이 더 늘어난다고 장애인들이 차별받는 삶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닌 독립된 주체로 살기를 원한다. 교회는 이러한 목소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까. 다음 기사에서는 한국교회 장애인 사역 현황과 문제점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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