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서울판 '도가니'로 논란이 된 장애인 거주 시설 송전원이 지난해 12월 폐쇄됐다. 성폭력을 비롯해 구타, 강제 노동 등 인권침해가 수차례 자행됐다. 이곳에서 거주했던 장애인 47명 중 16명은 시설에서 나와 서울시가 제공한 주택에서 지낸다. 다른 시설로 이동한 거주인도 자립을 준비 중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발바닥행동)은 2014년부터 송전원 내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해 왔다. 감독 기관인 서울시와 도봉구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송전원을 폐쇄할 수 있게 도왔다. 서울시가 거주인에게 자립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공헌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 다른 장애인 인권 단체와 함께 서울시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2005년 설립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정부와 지자체에 탈시설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 제공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탈시설 위해 설립
제도·법령 '미흡'

발바닥행동은 거주 시설 장애인의 '탈시설'을 목적으로 2005년 설립했다. 이 단체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편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 탈시설 정책을 제안하고, 장애인복지법·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 법안 제·개정도 요구했다. 송전원 사건 때처럼 장애인 주거 시설 안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실을 조사하고 알리는 역할도 했다.

'탈시설'은 2000년대 들어 국내에 들어온 개념이지만, 아직까지 일반인에게 낯설다. 관련 제도나 법령도 미흡한 실정이다. 서울시가 2013년 시행한 '탈시설 5개년 계획'이 탈시설 관련 최초 공공 정책이다. 지금은 대구, 광주 등 일부 지자체도 이 모델을 참고해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관련 법안도 뒤늦게 발의됐다. 양승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1월 26일 '장애인 권리 보장 및 복지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자립적인 삶을 책임져야 한다.

발바닥행동 조아라 상임활동가는 "시설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자발적으로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애초 '시설'밖에 없었다. 미국, 일본 등은 시설을 줄이고 탈시설 정책을 확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시설 정책에 머물러 있다. 다양한 자립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주거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2013년 인강원, 2014년 인천해바라기장애인거주시설·송전원, 2015년 마리스타의집, 2016년 평화의집·대구시립희망원 등 매년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 사례도 비슷하다. 성폭력, 구타, 감금, 강제 노역, 보조금 횡령 등이 일어난다.

장애인 주거 시설은 근본적으로 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조아라 상임활동가는 "거주인이 시설에서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규율을 만들어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규칙을 어기면 벌칙을 강제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폭력, 강제 노역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전원은 폐쇄됐지만, 인권침해 사실이 적발돼도 마리스타의집처럼 이름만 변경하고 운영하는 곳도 있다. 거주인이 모두 자립하거나 이를 준비하는 경우도 송전원 사건이 처음이다. 조 상임활동가는 "범죄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법적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폐쇄를 강제할 수 없다. 지자체가 폐쇄를 명령해도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 인권침해 유형도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2월 3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폭넓은 정책 필요
취업, 문화생활도
지원해야

서구 국가는 1960년대부터 탈시설 정책을 펼쳐 왔다. 미국도 대형 주거 시설을 줄이고 장애인들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탈시설 전환국을 두어 개별적으로 주거, 취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문화,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와 달리 일찍부터 탈시설 정책을 펼친 서울시는 주거 지원만 제공하고 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서울시 장애인전환서비스센터에 자립 의사를 밝히면, 센터는 심사 후 지원할지 결정한다. 자립 생활 주택에서 7년간 살게 해 준다.

발바닥행동은 현재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에 폭넓은 탈시설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했지만 다시 시설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발바닥행동은 활동 보조 서비스 시간을 늘리고, 미국처럼 직업교육과 취업 연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립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문화,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요구하고 있다.

조아라 상임활동가는 "탈시설은 결국 철학의 문제다. 장애는 장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립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이 한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기 결정권을 갖고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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