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잠수사님이 얘기해 주신 건데요. 이 밑에 있는 아이가 7반 정인이에요. 얘는 1반 수진이고요. 둘이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잠수사님이 먼저 정인이를 찾았대요. 이 아이를 이제 위로 올려 줘야 하잖아요. 근데 정인이가 움직이지 않더래요. 팔을 봤더니 끈이 있는 거예요. 끈을 죽 따라갔더니 여자아이가 나오는 거예요. 서로 팔에 끈을 묶은 거죠.

잠수사님이 끈을 풀고 정인이를 올려 주려고 하는데 정인이가 안 움직였대요. 그래서 정인이를 두고 수진이를 먼저 올려 보내니 그제야 정인이가 움직이더래요. 아이들이 그 힘든 상황에서도 같이 살아서 만나자고 끈을 묶은 거예요. 약속의 끈, 희망의 끈, 진실의 끈이죠."

▲ 416기억전시관에서는 지금 홍성담 화백 작품 전시와 '금요일엔 함께하렴' 기억시 낭송식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기적 같은 이야기. 홍성담 화백은 잠수사 회고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물속에 있는 두 아이 팔이 끈으로 연결돼 있다. 이외에도 홍 화백의 세월호 관련 그림이 9월 23일부터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416기억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림을 설명해 준 사람은 단원고 명예 2학년 3반 김도언 양의 엄마 이지성 씨다. 이지성 씨는 7월부터 416기억저장소 소장을 맡게 됐다. 기억저장소는 2014년부터 있었지만 이번 7월부터 2기 운영진이 꾸려지며 활동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1기 때와는 다르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 11명이 운영위원으로 들어오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요즘 이지성 씨는 기억저장소를 홍보하는 데 바쁘다. 10월 3일 열린 작은 교회 박람회에도 부스를 차렸다. 기억저장소는 100% 시민 후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회원 유치가 중요하다. 밀물처럼 들어오는 각종 자료들을 분류·정리·보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지성 씨를 비롯해 운영위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전시 공간에 앉아 있는 도언 엄마 이지성 씨. ⓒ뉴스앤조이 구권효

10월 13일, 기억전시관에서 이지성 씨를 만났다. 어떤 마음으로 기억저장소 일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특조위도 강제해산된 지금,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저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숫자가 아닌 '김도언'으로

416기억전시관을 처음 방문한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시관은 안산 주택가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 3층에 있다. 전시 공간은 채 열 평도 안 되는 듯하다. 하지만 기억전시관은 참사 이후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해 왔다.

도언 엄마와 전시 공간에 의자를 하나씩 놓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방에 홍성담 화백의 그림 10여 점이 걸려 있다. 천장에는 작은 등과 투명 박스가 빼곡하다.

"304개의 등이에요. 304개의 별이죠. 박스 안에 있는 건 유품이에요.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 엄마 아빠들이 전화 돌려서 하나둘씩 채우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희생됐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냥 '304'라는 숫자로만 기억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어디 가면 '숫자로만 기억하지 말아 달라. 한 명 한 명 기억하고 그 꿈을 기억해 달라'고 말해요."

▲ 엄마는 천장에 있는 등에 도언이 사진과 배지를 넣어 놨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도언이 꿈은 선생님이었다. 연극을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 연극부 활동도 열심히 했다. 엄마는 아직도 매일 아침 도언이가 나오는 영상을 본다. 도언이가 연극 연습하는 영상,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영상, 2014년 4월 11일 찍은,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친구들과 얘기하는 영상을 볼 때는 특히 가슴이 아리다.

"잊지 않게 계속 영상을 봐요. 얼굴은 사진도 많고 해서 생각이 나는데 목소리는 잊힐 수도 있잖아요. 도언이 목소리, 웃음소리, 숨결… 이런 걸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동영상을 보는 거죠. 최근에 지인이 그래요. '그래도 2년 지나니까 그리움이 좀 옅어지지?' 그래서 '…더 깊어지지' 그랬어요. 그리움은 깊어지고, 더 보고 싶고….

참사 초기에는 우리가 아이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특별법 제정 때문에 국회·광화문 정신없이 다녔으니까. 제대로 슬퍼할 새가 없었어요. 틈새가 없었던 거죠. 요새도 물론 특조위 강제 종료나 힘든 일은 많지만, 어쨌든 초기보다는 시간이 많잖아요. 그럼 그 틈새를 비집고 이런 마음이 확 들어와요. 그러면 주체를 못하는 거죠."

9월 말부터 기억전시관에서는 '금요일엔 함께하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제(師弟) 동행 단원고 희생자 261인의 기억시 낭송 문화제다. 문예인들이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를 가지고 시를 만들었고, 이 시를 그 가족이 직접 낭송하는 것이다. 도언 엄마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시를 읽는 시간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기억 교실 이전으로 중단됐던 '기억과 약속의 길' 순례도 11월 중 재개할 예정이다. 안산교육지청으로 간 '단원고 416 기억 교실' 정리가 끝나면 시작된다. 단원고 416 기억 교실-416기억전시관-화랑유원지 합동 분향소를 걷는 코스다. 유가족이 동행하며 일일이 설명해 준다. 현재 기억전시관에 전시 중인 홍성담 화백 그림도 유가족들이 '도슨트' 역할을 하고 있다. 홍 화백에게 직접 배웠다.

▲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유가족이 직접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록, 세상을 바꾸는 힘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는 곳이다. 참사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분류해서 보관·전시한다. 물품이나 디지털 자료 양이 방대하다. 박스를 쌓으면 63빌딩 두 개 높이라고 한다. 안산시 곳곳에 1~4서고가 있고, 현재 다섯 번째 서고를 물색하고 있다.

"일이 쉽지 않아요. 운영위원 엄마 아빠들이 기록물 아카이브를 배우고 있어요. 맨날 밤늦게까지, 새벽까지 일해요. 같이 김대중도서관과 노무현재단에도 다녀왔어요. 어떻게 기록물을 관리하는지 벤치마킹하려구요.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을 시민과 유가족이 나서서 해야 하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참사인데, 기록을 수집·보존하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오히려 정부는 모든 흔적 다 지우고 있잖아요. 특조위도 종료시키고. 하물며 학교도 우리를 쫓아냈어요. 그러면 저장소밖에 남지 않는 거예요.

정부가 안 해 주면 우리가 끝까지 해 보자 싶더라고요. 엄마 아빠들이 역사에 남겨야죠. '이런 참사가 있었고, 이런 참사 때문에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었다' 이렇게."

▲ 전시관 한쪽에는 세월호 미수습자와 김관홍 잠수사 판화가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법 전문가도 되고 인권 전문가도 되고 아카이브 전문가도 되었다. 전에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상관없다. 늦은 나이에 밤낮 없이 배우고 일한다. 아이들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도 기록이잖아요. 하나님·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걸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가 그걸 보고 행동하지 못했겠죠. 그렇게 행동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변해 왔어요. 416기억저장소도 마찬가지예요. 기록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시민들이 그렇게 말해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면 밝혀질 날이 온다고. 이 기록들을 통해서 끝까지 기억하고 결국 대한민국이 생명의 존엄성이 인정되는 나라,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죠. '엄마 아빠들은 너희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또 다른 사람이 이런 슬픔을 겪게 하지는 말아야지. 이게 얼마나 큰 고통인데….' 그게 아이들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자 우리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416기억저장소 회원이 되어 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이 될 수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3 김도언] 기억시
은행빛 향기 진한 시골집

은행빛 향기 깊어 흰 구름 달밤에 그득한데
내 머리는 엄마의 까만 후드 티에 물들어 있어
법 도 말씀 언 두 글자를 엄마는 매일 엄마 귀에 걸고 다녀
너를, 네 목소리를 세상 가장 가까운 데서 듣고라도 싶거든
바람으로든
새 소리든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내 딸 도언이 목소리를

도언아
단원고 2학년 3반 기억 교실엔
네가 앉아 있어
아직도
엄마는 건들지 말라고
그 누구도 건들지 말라고
또렷이 써 놓았단다

아직도
누구 때문에 너희들이 바다에 생매장이 되었는지
왜 국민들이 다 보는 앞에서 너희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동거차도 어선들의 접근마저 막아 너희들의 구조를 막은 그 검은 세력이 그 누구인지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이 상황에서
엄마는 네 넋이 돌아와 뛰어 놀고 재잘거리고 함께 노래 부를
단원고 기억 교실에서 너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어
차마 없었어
너희들을 오렷이 기억할
추모공원 부지조차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너희들 유품을 고스란히 보관할 제대로 된 공간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때
엄마는 너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다 도언아

도언아
엄마는 칠월부터
기억저장소 소장이 되었어
지금은 홍성담 화백님이 그린 너희들이 수장당한 그 참담한 순간과 직면하고
엄마들의 떨리는 목소리로 그림 설명을 하고
금요일마다 너희들 넋을 불러모아 울음 반 소리 반으로 통곡의 기억시도 낭송하고
노래 손님, 말씀 손님 모시고 '금요일엔 함께하렴'을 진행하고 있단다
도언아
아마 엄마가 걸어갈 길은 멀고 먼 길일 거야
힘들고 복잡하게 뒤얽힌 세월호 안의 그 미로일 수도 있어
그러나 엄마는
매일 매일 도언이를 볼 수 잇는 이곳에서
날마다 날마다
이기고 있어

도언이가 그 차디찬 사월에 엄마 곁을 떠났지만
엄마는 언제나 우리 도언이 들숨과 날숨을 직면하고
너희들이 왜 물고기의 밥이 되어
얼굴도 없이 사지가 찢겨진 채로
김관홍 아저씨의 품에 안겨 올라왔는지를
너희들 몸이 바다가 되어
아직도 맹골수도 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상하이샐비지가 뚫는 150개가 넘는 구멍이 뚤려 빈 깡통처럼 해체되고
날조되어 올라와야 하는지를 
엄마는 응시하려고 해
그리고
다섯 감각을 모두 바쳐
아니 말초신경까지도 다 바쳐
온몸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해

그날
새날이 오면
엄마는 뚜렷하게 증언할 거야
그리고 심판할 거야
온 국민들의 힘으로
도언아 그때까지 엄마 응원해 줄 거지

도언아 너는 꿈꾸었지
엄마랑 아빠랑
외갓집 상주에 은행빛 향기 진한 시골집에서
방울토마토도 심고
복숭아 나무도 심고
졸졸졸 시냇물에 두 발 살을 드러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엄마도 매일 꿈꾼단다
우리 도언이랑
더 넓은 세상에서 화이트골드 커플링 함께 자랑하며
네가 끓여 주던 김치찌개의 선득한 돼지고기를 씹어도
알싸한 카레향의 인도 카레에 매운 청양고추를 씹어 입안에 불이 나도
얼마나 좋을까 도언아
내 딸 도언아

도언아
뼈마디 저려오는 슬픔을 은행 꽃바람에 싣고
너는 오른손 검지에
나는 왼손 중지에 낀 은행 향기
풀풀

아, 너는 나무가 되었구나
가을 목마른 고잔벌 생명들에게 새 생명의 단물로
눈물마저 말라 버린 별빛 광장부터 법원 길가 너랑 함께 걷던 길가의 은행나무에게
천 년 생명과 평화의 단물을
이 세상 헛된 욕망의 거품을 모두 걷어내게
느리게
더 느리게
천천히 다 주고야 마는구나
내 딸 도언아

- 김태철 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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