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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는 왜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도 없는가"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를 통해 본 '진정한 사랑’
  • 강동석 기자 (kads2009@newsnjoy.or.kr)
  • 승인 2017.03.27 14:25

*이 글에는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2017) 일부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당신 주변에는 왜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도 없냐, 진짜로 없는 것이냐, 아니면 당신이 그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믿을 만한 이웃이 못 되는 것이냐?"

[뉴스앤조이-강동석] 법학자이자 문필가 김두식 교수(경북대)는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는 질문을 위와 같이 바꿔 보자고 제안했다. 동성애자는 이슬람교인과 더불어 보수 개신교회에서 여지없이 '괴물'로 그려지는 대상 중 하나다.

개봉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월트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2017)는 '동성애 코드'로 보수 개신교회의 뭇매를 맞았다. 1991년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이 뮤지컬 영화에 동성애 정체성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이유에서다.

미녀 벨(엠마 왓슨)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전쟁 영웅(이지만 실은 악당인)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부하 르푸(조시 게드)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개스톤을 향한 연모의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동성애자 캐릭터 르푸의 등장에, 미국 앨라배마주 한 극장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며 '미녀와 야수'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행동은, 야수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저주받은 왕자(댄 스티븐스)를 '괴물'로만 대하는 개스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벨에게 청혼하는 개스톤.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컷

아이러니한 것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 외면을 꿰뚫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에 있다. 왕자가 야수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의 '진정한 사랑'인데, 이를 예수가 말하는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치환하면 오버하는 것일까. 

미녀 벨은 마을 사람들에게 아름답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벨은 술통을 세탁기로 만들어 빨래를 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다. 여자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마을을 벗어날 꿈을 꾸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한껏 발휘하지만 무시당할 뿐이다.

갑자기 행방불명된 아버지 모리스(케빈 클라인)를 찾아 야수의 성으로 들어간 벨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감옥에 갇히는 길을 택한다. 야수의 성에서 도망쳐 나온 모리스는 벨이 야수에게 잡혔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리치지만 이들이 납득할 리 만무하다. 야수는 이들에게 '없어야 할 존재'일 뿐이고 모리스는 정신 질환자 취급을 받는다.

야수의 성에 들어서는 벨.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컷

처음에 야수와 벨은 악다구니판을 벌이지만, 야수가 몸을 던져 벨을 구해 주면서부터 둘 사이에 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야수는 책을 좋아하는 벨에게 도서관을 선물로 주고, 둘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온몸으로 서로의 존재를 겪어 낸다. 그러다 벨은 '마법의 거울'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야수의 허락을 받아 마을로 돌아간다.

개스톤은 마을로 돌아온 벨이 '마법의 거울'을 통해 야수의 존재를 증명하자, 야수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벨은 야수에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말하며 온몸으로 막아서지만 모리스와 같이 마차에 갇히고, 개스톤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야수의 성'으로 진격한다. 그렇게 '없어야 할 존재'가 실존한다고 드러나는 순간, 야수는 모두의 적이 되고 만다.

한 존재에 대한 앎은 계시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자리를 알아야 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것은 온몸으로 그 사람을 겪어 내는 '여정'을 요구한다. 벨은 야수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는 사랑을 꽃피우는 여정이었다. '미녀와 야수'야 개스톤이 죽고 미녀 벨의 사랑 고백과 키스로 야수가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현실은 동화 같지 않다. 벨 같이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주체성'을 가진 '이상한 사람'이어야 야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야수와 춤을 추는 벨. 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컷

전 통일부총리 한완상 교수는 "땅의 샬롬 없이 하늘의 영광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 땅에 '샬롬'을 세우기 위한 실천이 없다면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사야는 어린양과 사자가 뛰노는 세상을 다시 '부활'한 하나님나라로 그린다. '미녀와 야수'에서도 벨의 '진정한 사랑'이 야수에게로 가닿을 때 야수가 왕자로 변하고, 성 안의 '말하는 집기들'이 원래 모습을 되찾는 부활이 일어난다.

오늘날 보수 개신교회가 '괴물'로 규정하는 이들이 왕자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동성애 영화라며 '미녀와 야수'를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김두식 교수의 말을 빌려 되묻고 싶다.

"당신 주변에는 왜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도 없냐, 진짜로 없는 것이냐, 아니면 당신이 그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믿을 만한 이웃이 못 되는 것이냐?"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을 원하는 것은 나이브한 생각일까. 개인주의 영성에 함몰된 이들에게 사회적 영성을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수난이라는 드라마로 초대합니다. (중략) 수난은 너무나 섬세하고 변혁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아는 모든 정의를 넘어서고 전복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이 이야기는 위험하며 우리에게 우리의 삶 전체를 건 여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고통을 지나야 하며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과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십자가를 향한 여정은 온몸으로 겪어 내야만 하는 여정입니다." - 새라 코클리 <십자가>(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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