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소설 <침묵>, 영화 '사일런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2월 28일 한국에 개봉하는 영화 '사일런스' 포스터.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온다. 일본으로 선교를 나간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배교를 맹세했다는 것. 그는 일본에서 33년을 체류하던 주교(主敎)였다. 신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잠복해서 선교를 계속해 온 불굴의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세 명의 신부가 분개한다. 자신들의 은사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이교도에게 굴종해 배교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 젊은 신부는 일본에 건너가 사건의 진상을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는다. 세 사람의 열정을 받아들인 그들의 상사는 1637년 일본에서의 위험한 선교를 허락한다.

한 사람은 건강 악화로 일본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두 사람만 일본 땅을 밟는다. 프랜시스 가르페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 신부다. 프랜시스 가르페는 '순교'로 생을 마감하고 세바스티앙 로드리고는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진실'을 확인한 뒤,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이름을 받고 자신도 배교한 사제로서 일본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된다.

프랜시스 가르페(아담 드라이버)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앤드류 가필드) 신부.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리암 니슨이 페라이라 신부 역을 맡았다.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거칠게 정리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줄거리다. 페레이라 신부나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행동은 '후미에'를 밟는 것이었다. 후미에는 엔도 슈사쿠가 <침묵>을 쓰게 된 모티프다. 엔도 슈사쿠는 실제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는데, 후미에는 '밟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목재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성화상을 말한다. 이 그림을 밟으면 배교한 것으로 인정돼 풀려날 수 있었다. 엔도 슈사쿠는 후미에에 남겨진 발자국 자국을 보고 배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작품을 구상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가장 공이 들어간 부분은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소설은 이 한 장면을 위해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작품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박해받는 일본 '기리시단'(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일본어)의 참혹한 현실을 보며 하나님의 침묵과 마주한다. 절절하게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의 박해는 끝나지 않았고, 신도들은 배교를 강요받고 죽어 나갔다. 로드리고 신부는 '후미에'를 앞에 둔 순간, "밟아도 좋다"라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로드리고의 배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배교를 선택하면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는 일본 농민 세 명을 살려 준다고 조건을 걸었던 탓이다.

페레이라 신부는 후미에를 밟는 것을 망설이는 로드리고를 설득한다. 예수가 있었다면, 예수도 저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라는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를 선택했으리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생각이 어떻든, 이 소설은 '순교'와 '배교'를 단적으로 가를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리의 층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현실의 층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나무 기둥에 묶이는 기리시단들.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17세기 일본 기독교 탄압의 현실을 소환해, 배교와 순교 사이의 신앙적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 낸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은 많은 문학 연구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에도 <침묵>을 주제로 쓴 논문이 많이 나와 있는데, 대체로 로드리고의 배교를 '순교'와 진배없이 표현한다. 남은 일생으로 '순교'를 보여 줬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그의 '배교'가 순교를 넘어선 사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배교 이후, 아래와 같은 로드리고의 회고가 그 단초가 된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이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는다. 순교를 선택한 사람의 죽음은 개죽음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이 소설은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가운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욥기나 하박국에서도 엇비슷하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오늘날 절대적 가난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있는 현장에서도, 홀로코스트나 세월호의 현장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의 부재'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 배교한 이들의 모습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그를 배반했던 제자들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수는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내치지 않았다. 베드로처럼, 로드리고가 배교하는 장면에서는 닭이 운다.

순교자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

1992년 엔도 슈사쿠는 <침묵의 소리>를 출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이었다. 이 책에는 <침묵>을 집필하기까지 과정, <침묵> 출간 후 있었던 대중의 반응에 대한 소회가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침묵>을 통해 침묵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의 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힌다. 많은 이가 하나님의 '침묵'으로 이 소설을 읽어 제목을 잘못 지은 것 같다고 후회하는 내용도 나온다. 그의 의도를 오독해 <침묵>을 금서 취급했던 신앙인도 있었다. 소설을 읽은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엔도 슈사쿠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아래는 <침묵의 소리>에 실린 내용 일부다.

"후미에를 밟지 않았던 사람은 결국 고문을 받고 죽어 갔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본의는 물론 아니면서도 후미에를 밟았던 '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아마도 후미에를 밟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기리시단 시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곧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교자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자신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신앙을 버렸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그 어느 교회에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념을 관철했던 강자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배교자, 말하자면 '썩은 사과'에 대해서는 당시의 교회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학교가 낙제생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과 같았다."

<침묵>, <침묵의 소리>. 홍성사와 동연에서 번역 출간됐다.

소설에는 배교-회개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일본인 기치지로다. 로드리고가 붙잡히게 된 것도 기치지로가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침묵의 소리>에 따르면, 기치지로는 베드로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기치지로는 자신의 고발로 끌려가는 로드리고를 향해, 순교를 선택했던 다른 기리시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 용서해 주세요. 나는 약해요. 나는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강한 자는 될 수 없어요."

강함과 약함을 단순화시키고,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누어 기록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처음에 일본행을 선택한 세 신부의 목적은 엄밀히 말하면 선교가 아니었다. 스승이 배교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여기서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는 "굴욕적인 패배"로 표현되는데, 선교제국주의적인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 속에서 박해받는 신도의 현실은 비춰지지 않는다.

한국어 번역판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본래 <침묵> 말미에는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가 있다. 이 기록에는, 기치지로가 배교-회개를 반복하다가 '순교'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난다. 로드리고 신부의 실제 모델 '쥬제페 키아라'도 죽을 때까지 배교-회개를 반복하다가 영면한 것으로 드러난다.

로드리고 신부에게 고해하는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기도를 받고 있는 모키치. 나무 기둥에 묶여서 순교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연약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엔도 슈사쿠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 기리시단을 핍박했던 수령 이노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인간 존재는 다층적이다.

"소설가는 자신 속에 있는 여러 인격을 각각 독립시켜서 그것을 작중 인물로서 그려 나간다. <침묵>에 대해서 말해 본다면, 페레이라, 기치지로, 로드리고는 모두 나이며, 이노우에 치쿠고노카미도 역시 나 자신이다. 즉 내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을 작중 인물로서 독립시켜서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련성은 매우 강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노우에는 기리시단을 효과적으로 박해했던 실존 인물이다. 귀 뒤에 작은 구멍을 뚫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오랫동안 굴욕과 고통 가운데 죽어 가게 만드는 '구멍 매달기' 고문으로 많은 기리시단의 배교를 이끌어 냈다. 단번에 죽이는 방식으로 기리시단을 '순교'시킬 경우, 순교자들에게 감화되는 사람이 나타나 오히려 신앙의 불길이 거세지기도 했는데, 이런 부작용을 없앤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리시단을 박해했던 이노우에도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이노우에 치쿠고노카미는 한때 기독교인이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후일 그는 기독교를 버렸다. 그는 뛰어난 인텔리였으며, 도쿠가와 시대에 전장에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않고서도 다이묘(일본 헤이안 시대, 영지를 가졌던 봉건 영주 - 기자 주)가 될 수 있었던 최초의 관료였다. 그 정도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나이였다면, 자신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 때나 또 그것을 버렸을 때에도,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다이묘 이노우에(오른쪽, 이세이 오가타).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이와 같은 현실을 다 고려할 때, <침묵>은 결론적으로 '연약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엔도 슈사쿠 '침묵의 비(碑)'에 실린 이 문구가 주제를 집약한다. 폭력성을 드러내면서 기리시단을 박해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한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배교를 선택하는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고, 배교하지 않고 순교를 선택하는 것이 "허영을 위한 죽음"은 아닌지 고뇌하는 로드리고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2월 28일 국내에 개봉하는 영화 '사일런스'는 원작을 충실히 살려 냈다. <침묵> 내용이 곧 '사일런스'의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따라서 러닝타임이 160분으로 상당히 길다. 간간이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파도 소리가 인상적인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연출과 영상미가 뛰어나다. 아예 배경음악 없이 '침묵'을 보여 주는 장면도 있어 주제 의식을 잘 살리고 있다.

<침묵의 소리>에 실린 배교자들을 위한 엔도 슈사쿠의 변으로 글을 맺는다.

"그들의 신앙이 얕았기 때문에 배교하였다고 비난한다면, 비록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다. 우선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상상력이 없다. 얕은 것은 배교한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그들 배교자들을 비판하는 사람 자신의 애정이다. 그리고 애정이 얕은 사람의 신앙이란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은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도 없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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