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닙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완성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부담은 안고 있었지만, 온갖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뤄 왔습니다. …… 책을 내놓는 저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꼭 필요한 몇 사람만 읽고 조용히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책이 되어도 다행이고, 많은 사람들이 읽고 좋은 동지들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쓴이의 머리말에서)
Q 김두식 교수는 그동안 <칼을 쳐서 보습을>(뉴스앤조이), <헌법의 풍경>(교양인), <평화의 얼굴>(교양인), <불멸의 신성 가족>(창비) 등 주로 법, 국가를 이야기하는 책을 내 왔습니다. <헌법의 풍경>은 3만 권이 넘게 팔릴 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계속 전공을 살려서 글을 써 나가면 더 사랑 받는 저자가 될 텐데, 굳이 교회라고 하는 좁은 동네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자는 원래 타향에서 존경받더라도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한국교회가 워낙 희귀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터라 '교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좁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A 작년 1년을 미국에서 보내며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국가 기관과의 협의에 따라서 영화와 인권을 접목시킨 시민 교육 교재를 집필하고자 출국했던 것인데, 그 기관의 내부 사정 때문에 중간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나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한국교회에 나처럼 복 받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아도, 대한민국 어떤 가정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사춘기 때 부모님들께 막말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중 몇 번은 다른 집 같았으면 진짜로 맞아 죽었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제게 한 번도 폭력적으로 뭘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형이 가끔 "너만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불평하는 걸 보면, 부모님께서 워낙 늘그막에 얻은 막내라서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뭘 잘못해도 늘 형만 혼났거든요.

젊은 나이에 진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고시에 합격했고, 그 이후에 어디를 가나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여러 직장을 거치는 동안 누구하고도 목소리 한 번 높인 일이 없을 정도로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요.

책에서 한동대를 약간 비판하는 것 같은 부분도 나옵니다만, 사실 5년 반의 한동대 교수 생활을 통해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사람이 접니다. 김영길 총장님 내외분께서는 처음부터 저를 아들처럼 아껴 주셨고, 종종 제가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생각들을 비추어도 단 한 번도 "너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총장님하고 생각이 다를 때면 문자 그대로 '아무 때나' 총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총장님께서 가끔 제 이야기 들으시면서 화를 내실 때도 있었지만, 그다음에 만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학교를 옮기고 나서 보니 총장실이라는 곳이 그렇게 아무 때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더군요. 한동대에서 교수 생활을 함께한 분들도 제게는 다 형님, 누나 같은 분들입니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늘 그리운 분들이지요.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보면서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한국교회에서 살아남았나?'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높은뜻숭의교회를 다니면서 김동호 목사님 가르침에 동의하지 못한 때도 많았고, 그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때도 많았습니다. 언젠가는 코스타 집회에서 전체 청중을 상대로 간단한 말씀을 전하면서 거의 노골적으로 김동호 목사님을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청중석에서 김 목사님이 듣고 계셨는데 말이지요. 김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강사실에 가서 보니 다른 강사 분들에게 "우리 교회 집사야"라며 저를 자랑하고 계시더군요.

교회가 분립된 후에 출석하고 있는 높은뜻푸른교회를 담당하시는 문희곤 목사님은 선교 단체에서 제가 존경하던 형입니다. 높은뜻숭의교회 시절에 제가 청년대학부장을 하고 문 목사님이 청년대학부 전임목사를 하셨는데요, 그때 저는 문 목사님을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청년대학부장은 청년 대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데 담당 목사님과 형, 동생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년 동안 멀쩡하게 "형, 형" 하며 따라다니던 애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문 목사님" 하고 부르니 목사님도 당황하셨겠지만, 역시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제 책에서 언급한 호칭 문제와는 모순되는 태도를 제가 취한 거죠. 문 목사님은 원래부터 일관되게 목사, 전도사, 간사들끼리도 형, 동생으로 부르자고 하고 그걸 실천하던 분이셨고요. 제가 잘못하고 목사님이 옳은 건데도 굳이 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님, 목사님, 선생님, 동료, 아내, 딸 등 제 주변에는 제가 뭘 잘못해도 용납하고 이해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이게 아무나 누리는 복이 아니더군요. 제가 어떻게 이런 훌륭한 분들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주신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을 누린 데 따르는 일종의 책임을 생각하게 된 건데요,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 것이 반쯤 써 놓고 나서도 '내가 굳이 이런 싸움에 나설 필요가 있나?' 싶어서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바로 이 원고였습니다. 이 책부터 쓰지 않으면 다른 책에는 손도 못 대겠다 싶었고요. 실제로 원고를 작년 9월에 홍성사에 넘겨주고 나자, 바로 국가 기관과의 일도 수월하게 해결되었고, 12월에는 영화와 인권 원고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말씀 묵상과 일기 쓰기가 글쓰기의 힘

Q '교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지만, 이 책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른 책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앞부분은 오늘의 한국교회, 중간 부분은 중세 유럽 교회, 마지막은 미래라기보다는 교회에 대한 소망 내지 대안적 교회 모습,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책들은 대개 교회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과거 모습에서 김두식 교수의 주특기가 발휘됩니다. 교회 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부패해 가는 모습, 그 결과 마구잡이식 마녀사냥과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진 참상, 진리를 좇아 살다가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소수 종파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영화처럼 생생하게 재현되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지 않고 줄거리도 복잡한 영화 <여왕 마고> 이야기를 가지고 16세기 유럽에서 국가와 종교, 정치와 신학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면서 서로를 망쳐 갔는지를 30쪽 가까운 분량을 들여서 박진감 넘치게 풀어냈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입니까, 평소 생각하던 것을 이번에 풀어쓴 것입니까.

A 일부러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선교 단체에서 강렬한 신앙 체험을 하고 나서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일기를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침에는 말씀을 읽고 저녁이면 그 말씀에 비추어서 하루를 돌아보는 식이었지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 통렬하게 자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걸 깨달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읽은 책이나 영화의 내용도 꼼꼼하게 기록하고요. 책을 쓸 때 그 일기를 다시 읽어 보면서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찾다 보면 금방 큰 틀이 잡힙니다. <뉴스앤조이>를 보니 김기현 목사님도 이런 글쓰기를 강조하셨더군요. 사실 말씀 묵상하고 일기를 적는 것만큼 좋은 글쓰기 훈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원래 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주무시고 나서도 혼자 텔레비전으로 주말의 영화를 볼 때가 많았고,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는 방학을 하면 교사이던 부모님이 일하시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수십 권씩 빌려서 읽곤 했습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읽었습니다. 대학 때는 신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 때문에 80년대 후반 한창 쏟아져 나오던 신학 서적들을 많이 읽었고요.

워낙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체계가 전혀 없습니다. 진짜 신학 전공자들이 보면 이번 책에도 엉뚱하고 웃기는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읽을 수 없는 게 문제지요. 영어로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스터디 바이블을 쌓아 놓고 대조해 보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는데, 그런다고 원문을 읽는 걸 따라갈 수야 있겠습니까.

그냥 '오죽하면 너 같은 문외한까지 나서서 이런 책을 쓰냐'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성경 이해나 지식이 뛰어난 평신도들이 훨씬 많을 거라는 걸 아시고, 목사님들께서 '중하 수준의 평신도 김두식도 이 정도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한국 교인들 수준이 대충 이렇겠구나' 가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삶이 부끄러워도 예수님의 가르침 제대로 이야기해야

Q 6장 '먼저 실험한 사람들 이야기'를 읽노라면, 근본주의와 평화주의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보입니다. 책 뒷부분에서 소망이 되는 교회 모습을 이야기할 때 '중세 유럽에서 먼저 실험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걸 동의하고 실천할 사람들은 소수일 것 같습니다. 성서에 충실하려다 보니까 자연스레 평화주의를 선택하게 되고, 결국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소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신앙 경향은 어떻습니까.

A 장로교파에서 성장했지만 제 신앙 색깔은 메노나이트 등 재세례파 쪽에 가깝습니다. 노트르담대학에서 가르치다 돌아가신 존 하워드 요더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수가 오랫동안 감리교 목사이면서도 요더 교수와 신학적 입장을 같이했던 것처럼 장로교 신자이면서 평화주의 입장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기독교의 정당한 전쟁 전통과 평화주의 전통이 반드시 대립하는 입장만은 아니더군요. 정당한 전쟁 요건을 검토하다 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 중에 '기독교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평화주의나 정당한 전쟁이나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99%인 거죠.

▲ "이 책은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제가 그동안 교회 때문에 느낀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혹시라도 이미 절망하여 교회를 떠난 분들께 이 책이 재도전의 용기를 줄 수만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글쓴이의 머리말에서)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우리 개신교의 뿌리 자체가 실험이고 모험입니다. 잘못된 역사와 전통을 깨고 나온 경험을 가진 교회잖아요. 제가 제일 자주 받는 비판이 '너무 이상주의 아니냐'는 건데요. 저는 역으로 우리 교회가 언제부터 그렇게 현실적이 되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중 상당 부분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가르침 자체를 뒤로 감추고 구약의 축복 이야기와 현실 이야기만 자꾸 한다면 그건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이지요. 너무 이상적이라 안 될 걸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이상적인 걸 이야기하는 저도 제 현실을 보면 기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집도 있고, 승용차도 몰고, 매달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너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거든요. 최근에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쓴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읽다 보니 그분이 살아온 인생 경험이랄까 지혜 같은 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정말 대단한 것이더군요.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 중산층으로 살아온 저 같은 사람이 어디 가서 함부로 인생 경험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급진적인 예수님의 가르침과 안정적인 제 삶을 비교해 볼 때마다 저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 삶이 부끄럽다고 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단이라고 배척할 게 아니라 왜 그리 되었나 먼저 반성해야

Q 저자는 <칼을 쳐서 보습을>과 그 내용을 더욱 발전시킨 <평화의 얼굴>에서 한국교회에서 대표적인 이단으로 꼽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열심히 옹호합니다. 물론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서도 이단으로 낙인찍혀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는 한국의 대표적 이단 대변인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이단들은 대개 억울하게 희생된 경우가 많지만, 요즘 한국교회 내에서 횡행하는 이단들은 경우가 조금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특정인을 메시아 내지 재림주로 받들어 섬기고, 그 교주는 신도들의 몸을 빼앗아 가정을 파괴하고, 재산을 모두 바치도록 만드는 등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을 경우 면죄부를 줄 위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기존 정통 교회에서도 파렴치한 일들이 횡행하기 때문에 굳이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A 글쎄요, 제가 한국의 대표적 이단 옹호자라면 포항에서 조용히 지내던 저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한 책을 쓰도록 부추기고 <칼을 쳐서 보습을>을 출간하기까지 한 김종희 기자야말로 이단 옹호자 아닌가요? (아니, 이런 물귀신 보게나. 저자는 기자에게 이단 옹호자라고 했지만, <뉴스앤조이>만큼 이단으로부터 소송을 많이 받은 기독교 언론도 없습니다 - 편집자)

제가 이단을 옹호한 적은 없는 것 같고요, 다만 한국교회가 이단 문제에 대해서 상식적인 선을 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관용을 강조한 적은 여러 번 있는 것 같습니다. 이단에 대한 공포감이 지나치다 보니, 최근에는 비리를 일으킨 목사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신도들을 무조건 ㅅ 이단으로 모는 기현상까지 일어나지 않습니까. '비록 내가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어도, 그건 ㅅ 이단의 유혹이자 함정이었다'라고 하면 면죄부를 받는 분위기인데요, ㅅ 이단 쪽에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ㅅ 이단이 하도 많아서요.

우리나라의 이단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그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목사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적 순종만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언제나 이단이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단이 자라날 더러운 토양을 만들어 놓고 그 잘못된 토양을 바로잡으려고 하기는커녕 이단 사냥에만 몰두하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 아닐까요.

김종희 기자 이야기대로 "자신을 교주로 만들고 여자들 몸 빼앗고 가산 탕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겠죠. 그런 사람들을 걸러 내는 데 다수 종파냐 소수 종파냐의 구분이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성애자는 죄인인가 친구인가

Q 저자가 소망하는 교회 모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그리면서 동성애자 이야기를 두드러지게 했습니다. 아예 한 장을 다 털어 넣었습니다. 특별히 동성애자 이야기를 '심하게' 한 까닭이 있습니까.

A 책에도 소개하고 있지만, 저도 원래는 동성애자를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으면서(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무조건 동성애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죄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가르침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다들 잘 아는 누가복음 10장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내 이웃이냐?"고 질문하는 율법학자의 모습이 저하고 똑같더군요. '누가 내 이웃이냐'는 질문은 돌려 말하면 '누가 내 이웃이 아니냐'는 뜻도 되겠지요. 이웃의 의미를 분명히 해서 사랑할 사람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구별하겠다는 게 율법학자의 의도이고, 거기에서 '배제'의 논리가 나옵니다. 마침 제 직업도 늘 그런 정의를 내리고 개념을 분명히 하는 법학자더군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율법학자에게 누가 이웃인지를 대답하는 대신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는 "당신도 가서 그렇게 행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을 한정 짓고 배제할 사람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가서 좋은 이웃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는 성경의 핵심 주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 줄 생각은 안 하면서 허구한 날 죄냐 아니냐만 이야기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된 건데요, 신기하게도 제가 그걸 반성하고 나자 그걸 어디 광고하고 다닌 게 아닌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성 정체성의 속 깊은 고민을 제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똑같은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나누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사명이기도 하지요.

헨리 나웬의 전기를 읽으면서,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예일 교수를 지내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던 그가 '상처 입은 치유자'를 이야기한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도 평생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고통스런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사셨습니다. 그 상처가 그런 주옥 같은 글들을 만들어 낸 것이고요. 숨겨야 할 대단한 비밀도 아니고, 헨리 나웬의 전기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사실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면서 나웬 신부님의 가르침만 인용하고 있고요.

이 책에서는 소수자 문제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관련하여 제가 느낀 것을 좀 나누어 본 것뿐입니다. 질문을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에서 '당신 주변에는 왜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도 없냐, 진짜로 없는 것이냐, 아니면 당신이 그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믿을 만한 이웃이 못 되는 것이냐?'로 바꿔 보자는 제안을 해 본 것이고요.

Q '배제의 질문, 사랑의 답변' 대목에서 착한 사마리아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했는데, 그건 저도 많이 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배제의 질문, 사랑의 복음' 대목에서 예수가 선포한 희년 메시지를 둘러싼 사건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런 관찰과 해석은 평소 성경 묵상과 일기 쓰기를 통해서 스스로 깨달은 것인지, 일부러 다른 주석이나 참고 서적을 찾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성경 묵상, 일기 쓰기, 주석, 참고 서적이 저에게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읽으면서 일기를 썼고 그러면서 책도 함께 읽은 것이니까요. 이번 책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부분이나 희년 이야기는 로버트 M. 브라운 교수의 생각에 제 생각을 보탠 것입니다. 여러 기독교 작가 중에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분은 필립 얀시인데요, 우습게도 얀시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이분이 나하고 책 읽는 취향이나 속도가 거의 같구나"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훌륭한 작가하고 저를 비교한다는 것이 외람되기는 합니다만, 생각의 방향이 비슷하다 보니 읽는 책들도 비슷하다는 말씀이지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책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가 나중에 얀시 선생님 책을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창조적인 상상과 용기 있는 실험이 시작되었으면

Q '교회 역할을 보험 회사에게 빼앗겼다'면서 '돌봄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그런 공동체의 실험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요즘 박종운 변호사를 중심으로 기독교 일각에서 '희년 기금'을 만들어서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참여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재정 상황이 열악한 기독교 활동가를 지원하는 데 500만 원, 사회 선교 단체 긴급 운영 자금으로 300만 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는 차이가 있을 뿐, 개념은 저자가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A 박종운 변호사님께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한때는 저도 운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박 변호사님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으로 처음 모시고 간 것도 저였고, 여러 단체에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지 조직을 이끌거나 투쟁에 앞장 설 재목이 못 되더군요. 고생길에 박 변호사님을 밀어 넣고 저는 슬쩍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기독법률가회(CLF)의 전재중, 박종운, 김종철, 태원우 변호사님 같은 분들은 그 끈기나 용기 면에서 저 같은 사람하고 수준이 다른 분들입니다. 이번 책에 '기독교+거시기' 운동은 그만 하자고 하면서도, 그런 운동하는 훌륭한 분들하고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도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 때문입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제가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가장 마음에 걸린 게 우리 집 거북이였습니다. 미국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키울 사람은 없고…. 그 거북이가 지금 박 변호사님 댁에 가 있습니다. 형편을 이야기하니 그날 밤에 두말없이 받아 가더군요. 작년에는 기독법률가회에서 인턴하는 지방 학생들을 자기 집에 불러다 일주일이나 재우고 먹이며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경북대 학생들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흉내도 못 낼 일입니다. 그 학생들이 박 변호사님 집에 우리 거북이가 잘 살고 있다고 전하더군요.

박 변호사님은 교회도 열심히 섬기고 계신데, 거의 초인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공의정치실천연대, 한반도평화연구원, 성서한국, 통일시대 평화누리 등에는 이런 초인들이 참 많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다운 교회'부터 만드는 것이 우리 사명 아니겠냐는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적어 본 게 이번 책입니다.

Q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김두식 교수와 가끔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느낌입니다. 평소 생각했던 것을 잘 모아 두었다가 책을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럼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냅니까. 앞으로 어떤 책을 낼 생각인지요.

A 매번 책을 낼 때마다, '책은 저자와 분리된 독자적 생명력을 갖는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어지간해서는 제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하는 법도 없고, 남의 책에 추천사를 써 주지도 않습니다. 제 책에 대해서 부당한 비판을 받아도 굳이 나서서 열심히 변명하지 않습니다. 출판사와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터뷰에 응할 때는 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열심히 판촉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우리 부부가 낳은 딸이지만, 딸아이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책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특히 '내 책'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책입니다. 우리 교회 특별 새벽 기도 나갔다가 하나님께서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세도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 것 같아서 인세도 포기했고요.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이 책의 인세는 모두 높은뜻푸른교회와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입니다 - 편집자)

4, 5월경에는 앞서 말씀드린 영화와 인권 책이 창비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생각해 보면 <칼을 쳐서 보습을>, <헌법의 풍경>,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 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앞으로 나올 영화와 인권 책까지 제 책들은 교회 쪽 색채가 강한 주제와 국가 쪽 색채가 강한 주제가 번갈아 가면서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앞으로도 이런 경향이 계속 이어질지 모르겠네요.

뱀발(蛇足) : 솔직하게 고백해야겠습니다. 이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밝히자면, 질문만 제 글이고 대답은 김 교수 글입니다. 출간되자마자 보내 준 따끈따끈한 책을 받아서 읽고, 토요일 저녁에 간단한 질문을 보낸 다음,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에 이미 답 메일이 왔습니다. 굳이 월요일에 다시 만날 필요가 없을 만큼 글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분량이 원고지 60매나 되어서 1/6로 줄어야 할 텐데, 도저히 그럴 수는 없더군요. 우문현답 꼴이 될 것 같아서 오히려 질문 내용을 다듬느라 애를 썼습니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 해서 만났고, 덕분에 10여 명의 점심식사를 대접하느라 김 교수가 거금을 써야만 했습니다. 제 맘이 흡족할 정도의 촌지 수준은 아니니까 너무 노여워하지는 마시기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하겠다고 하니까, 메일을 보내 주면 메일로 답하겠답니다. 말하는 속도나 글 쓰는 속도가 비슷하니까, 그게 더 낫겠답니다. (잘났어, 정말.) 글 잘 썼다 저 칭찬 마시고, 글 못 썼다 저 욕도 마시길. 내용도 좋고, 글도 재미있습니다. 꼭 읽어 보십시오. 이 글 말고 책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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