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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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주에는 얼마 만이십니까?

고동식이 차를 몰았다. 정민규는 조수석에 앉지 않고 뒷좌석에 앉아 고동식이 말한 대로 차창 밖에 비추인 외부 풍경을 살폈다. 조수석에 앉겠다고 하는 민규의 의지를 고동식이 한사코 꺾었다. 고동식이 민규를 태운 차량은 검은색 세단으로 중형이라고 표현하기엔 차 내부가 지나칠 만큼 넓고 고급스러웠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민규를 사로잡은 감흥은 최고급 의전 차량에 탑승한 느낌 그대로였다.

열차 안에서 얼핏 봤을 때에도 율주시 중심가는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떠올리게 했다. 차창을 통해 본 율주시는 더한층 민규의 눈을 낯설게 자극했다. 민규가 창밖 거리를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 14년 만입니다.

- 14년이라… 그 시간 동안 많은 게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어떠십니까? 율주시 중심가의 풍경.

- 맞아요. 정말 많이 달라졌네요. 서울과 진배없어요.

- 14년 전이면. 우리 김 의원님, 아. 죄송합니다. 김 장로님으로 불러야 되는 거죠?

고동식이 겸연쩍은 눈짓을 룸미러를 통해 민규에게 보냈다.

-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하세요.

- 예. 저한테는 의원님이셔서 의원님이란 호칭이 더 입에 붙네요. 14년 전이면 김 의원님이 이곳 율주에서 초선 의원으로 막 정치를 시작하셨을 때네요.

- 보좌관님도 그때부터 김 장로님을 보필한 건가요?

- 그전부터죠.

- 그전부터?

- 김 의원님 아버님 때부터 모셨습니다. 두 분을 모신 셈이네요.

- 아. 그렇군요.

민규는 그때, 문득 고동식의 단정한 흑발 머리가 세월의 흔적을 애써 지우려는 염색의 결과임을 짐작했다. 염색으로도 감춰지기 어려운 얼굴 가득 번져 있는 검버섯,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목을 감싼 주름이 고동식의 연령대를 새삼 실감케 했다. 김인철 의원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환갑은 훨씬 넘겼을 어른이 차를 직접 운전하고 자신을 배웅한다는 사실에 민규의 마음은 괜스레 무거워졌다. 하지만 고동식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말의 핵심은 김인철에 대한 찬양이었다.

- 14년 전만 해도 이곳은 대한민국의 변방이었습니다. 안개를 빼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불모지였죠.

- 맞아요. 안개가 지독하죠.

고동식의 말에 동의한 정민규는 다시금 옛 기억에 빠진 듯 차창 밖을 바라봤다. 율주시의 중심가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부터 최고급 현대식 백화점까지 완비된 중심가 풍경을 벗어나면서부터 다시 그 고질적인 율주의 명물, 안개가 어슴푸레하게 주변을 감쌌다. 새벽은 물론이고 정오가 되기 전까지도 이렇듯 율주시 전역에는 미세 먼지가 아닌 안개가 남아 있었다. 고동식이 다시 말했다.

- 하지만 그동안 김 의원님이 이곳 율주를 경남권 최고의 명품 도시로 만드셨죠.

- 김 장로님이요?

되묻긴 했지만 민규도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김인철 의원의 대표 작품이 곧이어 그 거대한 정체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율주제일교회로 가는 곳에 위치한 김인철의 작품은 대형 원자로였다. 율주는 분명 특산물도,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역사적 유물, 위대한 인물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고동식이 말한 대로 떠들썩한 명품 도시로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원자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14년 전에는 한창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던 원자로가 이제는 거대하게 솟은 옥토퍼스의 성난 등처럼 거대한 위용을 과시했다. 더구나 원자로는 한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

- 원자력발전소 유치에 율주가 제일 적극적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자로를 한 기 더 추진하신다구요?

- 예. 기왕 정부 지원 전폭적으로 받은 거, 아예 끝판을 보겠다는 의원님의 복안이셨죠.

- 그런데….

- 예?

- 그만큼 안전은 보장할 수 없지 않나요? 한 도시에 원자로가 네 개가 자리 잡는 건데.

말을 하던 민규가 고동식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를 깨는 건 아닌가 하는 눈치가 보여서였다. 하지만 고동식은 이미 그런 종류의 질문은 수없이 받아 봤다는 내성을 과시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여유롭게 답했다. 그가 내뱉은 단답형의 답이 민규의 머릿속을 순간 어지럽게 했다.

- 비행기 사고보다도 사고 확률이 훨씬 적은 게 원자력발전소입니다. 실보다는 득이 천문학적으로 높은 사업을 투자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게 미친놈들이죠. 안 그렇습니까?

민규는 고동식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약간의 미소만 보여 주었다. 고동식이 말을 이었다.

- 덕분에 율주시는 복지, 행정 부문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혐오 시설을 친환경 시설로 이미지 개선한 대표 사례로 꼽히죠.

고동식의 말은 거기서 멈췄다. 더 이어 가면 자기가 모시는 사람에 대한 상투적인 찬양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가뜩이나 증폭된 상대방의 정치 혐오증을 증가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비롯한 세련된 처신이었다. 하지만 이미 민규는 김인철에 대한 찬양 일변도 율주시 건립 신화에 적잖이 지쳐 버렸다.

10여 분 정도 지난 뒤였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민규의 눈을 다시 열게 한 건 이번에도 고동식의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 목사님. 다 왔습니다. 율주제일교회 앞입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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