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두 가지 구성

모든 보편 종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영적 체험과 경전 학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적 체험의 경우, 종교마다 달라 기도나 염불, 주문을 외우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명상, 묵상, 관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내면의 세계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찰나적이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경련, 발작, 나아가, 환각, 환청, 방언, 빙의를 경험하기도 한다. "전생을 보았다", "천국을 갔다 왔다", "죽은 사람을 만났다"고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듣고 보니 자신이 예수였다, 자신이 하나님였다고 한다고까지 말한다.

고대에는 이런 자들이 사제가 되었다. 신도들의 재산, 노동력, 성 착취는 물론 자신이 섬기는 악신을 위해 인신 공양을 서슴지 않았던 신도 있었다.

그러나 칼 야스퍼스가 이야기하는 축의 시대가 오면서 성현들이 나타났다. 구전되던 선지자의 말씀은 기록되기 시작한다. 사제들은 주술이 아니라 기록을 담당하게 된다. 보편 종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때가 보편 종교의 시대인 것은 성현들의 말씀, 각 종교의 가르침이 신의 섭리, 도(道), 무위자연처럼 우주의 원리와 부합되든지, 사랑, 자비, 인(仁)처럼 인간의 도덕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들은 문자로 기록되었기에 이전처럼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대적, 주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나에게 절대적, 객관적, 보편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보편 종교는 말 그대로 '보편 종교'였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경전이 진리가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우선, 글 자체가 지니고 있는 프레임 문제, 패러다임 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였다. 이것은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이던 가부장제를 경전에 깊이 침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woman은 womb, 자궁을 지닌 man이라든지. 아니면 신을 he라고 부름으로써 신과 남성을 동격화한다든지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미켈란젤로 '천지창조'를 보면 여호와는 남성이다. 게다가 헬레니즘 영향을 받아, 제우스를 닮아 있다. 이를 본 동양 여성들은 매우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유교 경전은 한자(漢字)로 기록되어 있다. 한자도 강력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남(男) 자는 밭에서 일을 하는 사내를 의미하는 것으로 '남자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녀(女) 자는 손을 오므리고 몸을 굽혀 공손히 예절을 지키는 여자 모양이다.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을 만들어 낸다.

나아가 남(男) 자를 통해 농업이 좋은 것이라는 관념이 은근히 부각된다. 동물을 죽이는 일, 사람을 웃기는 일은 물론이고 돈 꿔 주는 일, 상품을 매매하는 일, 그릇이나 낫을 만드는 일은 나쁜 것이라는 신분제 이데올로기를 낳았다. 녀(女) 자는 모(母)자로 바뀌어 여자는 남자의 성적 대상이 되어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를 젖 먹여 키워야 한다는 반여성적 이데올로기를 낳게 된다.

경전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편집 문제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경전은 글로 기록되다 보니 떠도는 말씀을 기록, 선택, 배제해야 한다. 그 주체는 사제다. 그런데 글이 생기고 경전이 기록될 당시, 모든 문명은 가부장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사제는 남성이고, 심지어, 왕이기도 했다. 제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편집의 경우, 아무리 공평무사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가부장으로서의 편견이나 사제로서의 편견이 반영된다. 정치와 종교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정치적 지배자의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다. 이쯤 되면, 경전이 진정 진리인지 의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종교의 이데올로기화

사회과학에서는 진리 반대편에 있는 관념을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이데올로기는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착취자, 억압자, 기만자의 이해와 편견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의 몸과 정신, 영혼을 지배하게 되며 대중을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로 만든다.

이데올로기는 종교에도 존재한다. 우선, 신비 체험으로 자신을 우상화하는 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사교(邪敎)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경전과 사제들, 그리고 -사찰이나 사원, 교회처럼- 제도화된 조직을 중심으로 만든 종교 또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세상 모든 보편 종교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크다. 원시 유교와 원시 도교, 불교의 전신인 브라만교가 그렇다. 최초에는 귀신을 부르고 점을 치며 병월 고쳐주고 운명을 알려 준다며 신도들을 혹세무민했다.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민중에게 고통받는 게 업이고, 팔자니 참고 견디면 극락에 가고 부처가 된다고 말했다. 세상을 피해 자연 속으로 도피해 살라고 하든가, 양생술, 요가, 명상 등을 통해 영생을 누리라고 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상의 혼탁함을 틈타 자신을 구세주, 미륵, 신이라고 하면서 가뜩이나 혼란한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그리고, 석가가 등장하고 경전이 만들어졌따.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 공(空), 그리고, 인(仁), 자비(慈悲) 등 '진리'를 설파했다. 그것은 매우 큰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배이데올로기가 된다.

특히 유교의 경우 공자 말씀은 충효, 삼강오륜, 남존여비, 사농공상 등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강력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신분제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세뇌시켰다. 서원을 만들어 농민들을 착취했다.

기독교를 보자. 최초의 유대인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않았다. 그들은 악신, 사제, 국가, 돈 있는 자를 섬겼다. 그러나 여호와를 믿기 시작했고, 그것이 기록되면서 오늘날 기독교인에게는 '진리'라 여겨지는 성경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 부분은 매우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적이고, 신분적이며 계급적이다. 심지어 신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 감성, 자유의지를 사탄이 준 것처럼 묘사하면서 여호와를 모독하는 부분조차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분노케 한 자들은 율법을 지킨다면서 간음한 여성을 돌로 때려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을 지킨다면서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인 노동자를 탄압한 바리새인들이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다면서 장사를 하던 율법학자들과 유대교사제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율법을 새로 쓰시지 않으셨다. 대신 사도들이 말씀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가 되었다.

기독교의 사탄화(satanization)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여전히 진리일까? 아무도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우선, 오늘날 헬조선의 경우를 보면, 기독교를 참칭하는 자들은 착취, 혼음, 마약 등의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집단 자살, 나아가, 정권을 조정하며 대규모 인신 공양을 획책하고 있다. 이들은 명백한 사탄 숭배자들이다.

성경에 적힌 글자 한 자 한 자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성서 무오류설(無誤謬)과 축자적(逐字的) 영감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독실해 보이는 기독교 사제들이 오늘날 전 세계 패권을 쥐고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탄과 아마겟돈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깨어 있는 기독교인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우선, 그들의 성서 무오류설과 축자적 영감설은 그 자체로 물신숭배, 즉, 페티시즘(fetishism)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우상숭배라 부른다. 이것은 사탄화(satanization)될 가능성도 내포한다.

이것은 형식의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이들은 성경을 무기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신분제적, 계급적 이데올로기, 파시즘적 이데올로기,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등을 교묘하게 전파시킨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예수가 가장 사랑했던 사회적 소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사탄에 더욱 근접한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들이 파시스트와 결탁하면서 맘몬의 사제가 되고, 초국적 자본과 결탁하면서 맘몬의 사제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기독교 근본주의 사제들은 이제 여호와의 사제가 아니라 사탄의 사제가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규모 홀로코스트에 눈감고 전쟁까지 획책해 명명백백 몰렉의 사제가 된다.

헬조선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오컬트 마니아는 물론 기독교인, 일반 시민, 심지어, 사이비 종교인까지 '요한계시록'에 무한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종교의 이데올로기화를 야기하는 두 가지 요소인 '신비 체험'과 '경전화된 기록'을 다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기독교 내에서도 요한계시록 위상과 해석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오늘날 호기심 많은 오컬트 마니아들은 666, 7이라는 숫자에 관심을 갖고 온갖 추리를 해 댄다. 여기에 편승하여 일부 기독교인은 얼마 전까지도 종말론이니 휴거니 하면서 여중생을 가출하게 하고, 특정한 날 밤 밖에 모여 하늘로 올려지는 장면을 연출하겠다고 했다. 방송사 카메라까지 동원했는데, 아무 일도 없자 구경꾼들의 비웃음을 사며 '오늘이 아닌가벼'라며 다음날을 계산하겠다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처음에는 공산주의를, 나중에는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며 사탄이라 부르며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아마겟돈 성전을 수행하라고 선동해 선량한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게 사탄으로 지목된 여성, 성소수자, 좌파, 노동자 등은 기독교를 '개독교'라 경멸하기 시작했다. 자업자득이다.

기독교를 참칭하는 한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자신이야말로 진리의 편이고 기독교가 사탄이니 자신이 기독교를 상대로 아마겟돈을 선포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착하고 순진한 교회들에 잠입해 야금야금 자신의 신전으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현재는 물론 미래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모양이다. 기독교계는 두려움 반, 부러움 반으로 어수선하다. 이것도 자업자득이라고 하면 너무 냉정한 평가일까?

얼마 전 악마 숭배자와 파시스트 잔당, 재벌의 결탁이 어느날 사소한 이유로 밝혀지게 되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기독교의 높으신 어른들은 시민들이 만든 마음의 바리케이드 저편에서 근엄한 모습, 근엄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제목은 여러 가지나 내용은 하나다.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여담이지만 러시아혁명 당시 러시아의 민중이 왕궁으로 향할 때, 행렬 맨 앞에는 성상을 앞세운 사제들이 있었다. 사제들은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차르의 군대는 시위대에 발포를 했다. 민중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고 몇 년 뒤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다. 신은 당시 기독교 편에 서 있지 않으셨던 것이다. 21세기 헬조선에서도 신은 그들의 편에 계시지 않는다. 물론 공산주의 편도 아니시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악마 숭배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파시스트, 인종주의자, 그리고, 대재벌들이 사탄이라면 그들에 맞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야말로 천사의 군대가 아닐까 하고.

다시 말해, 환란의 헬조선에서 요한과 '요한계시록'이 수난당하는 것 같아 입에 올리기 꺼려지지만 사실 아마겟돈은 헬조선이고 천사군은 지금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아닐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요한계시록도, 아마겟돈도 사실이다. 성경은 기록과 해석이 아니라 실천이고 창조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2016년 전 오신 그분이 몸소 실천하셨으니까.

얼마 안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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