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도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또래에서 비교적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편이었던 필자는 대학에서 자연스레 선교 단체에 들어가고 지역 교회에서도 열심히 청년부에 출석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후 청년부 모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청년부 지체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대학 때문에 타지에서 온 청년이 대다수니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일도 없었고, 대학가와 가까이 있었기에 밥집이나 카페의 선택지는 무궁무진했다. 자연스럽게 '저녁 뭐 먹지?'는 주일을 마무리하는 가장 큰 선택지 중 하나였다.

▲ 어느 교회의 주변 상권. 본문 내용과는 관계없다. (사진 제공 박준우)

저녁을 먹기 위해, 때로는 카페를 찾으며 교회 밖으로 나서서 어느 곳에 가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몇 년 넘게 반복하다 보면 이제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어, 이 집 망했네?"
"어, 이 건물 헐고 재건축하나?"
"이 집 별로던데…."
"이 집은 참 오래도 가네."

처음에는 잘 못 느꼈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교회가 주일 오후 주변 상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신성한' 주일에 내리는 선택이 사실은 '세속적'인 소비 행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청년부뿐 아니라, 장년부 모임이나 교역자 모임 등 여러 모임이 교회 주변 상점가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시 속에 자리 잡은 교회는 단순한 성도 모임을 넘어 도시의 많은 자영업자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소비 집단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교회 골목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가게,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한 교회 모습을 담담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선교 단체 활동 때문에 다른 대학에서 온 이들과 필자 교회 주변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채식주의자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기가 안 들어간 음식점 찾기 어렵지 않겠지'라 생각하고 교회 주변 음식점을 떠올려 보려고 하니 막상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항상 이 주변에서 치킨 같은 음식들만 주로 먹었던 것을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칼국수 가게가 하나 생각나서 그곳으로 가긴 했지만, 교회 주변 식당가가 얼마나 고기 일색인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일자리 잃은 이들이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현실의 상징이 되어 버린 '치킨집'은 우리 사회의 식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구장에서도, 새벽 유럽 축구 리그를 볼 때도 치킨은 빠질 수 없다. 그뿐인가, 대학 문화에서도 치킨은 빠질 수 없다. 밤새워 공부하다가, 또는 동아리나 학생회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먹는 야식으로 치킨을 자주 먹게 되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의 육식 문화와 자영업의 현실은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있는 이 고기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짚어 내고 싶다.

적어도 우리가 뜯는 이 닭고기가 사육되고 도축되어 우리 앞에 오기까지 들어가는 수많은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 생명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음식 소비는 늘 바쁘고 정신없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분 안에 존재하는(골로새서 1:17, 새번역) 분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세상에서 '치느님', '치킨은 언제나 옳다!' 하며 우상숭배를 할 때, 교회의 자세가 조금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교회 수련회 마지막 날 밤에 벌어지는 치킨 파티도 그렇고, 청년부 모임 끝나고 치킨 먹자고 수많은 제안을 했던 나도 그렇고 교회가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교회의 소비문화도 이런 치킨 숭배에서 벗어난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치킨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영업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27.4%로, OECD 평균의 약 1.7배이며 OECD 국가 중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많은 자영업자가 행복하면 좋겠지만, 10개의 자영업체가 창업하는 동안 8개가 폐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음식 업종의 현실이 가장 잔인하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87만 개가 창업하고 174만 개가 폐업하여 창업과 폐업 양쪽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영업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보자. 자영업자가 창업하면 1년 이내에 3곳 중 1곳은 문을 닫는다. 프랜차이즈 자영업은 본사의 폭리 시스템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쑤다.

▲ 이원석 작가 <공부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한국 학생들의 진로. 이미 인터넷상에서 유명해진 지 오래다. (사진 제공 박준우)

과연 교회는 이런 자영업의 현실과 무관할까? 오히려 교회 현실은 이런 '자영업 헬조선' 대한민국과 닮아 있다. 신학교들은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신학생을 배출했지만, 정작 이 신학생들이 갈 목회지는 천국이 아니라 '헬조선'이다.

<다시 프로테스탄트>(양희송, 복 있는 사람)에서 지적하듯, 전국의 편의점 수가 2만 개 이상, 치킨집 개수가 3만 개 이상인 현실 속에서 놀랍게도 교회 수는 7만 개에 달한다. 그 흔하다는 편의점, 아무나 한다는 치킨집보다 교회 수가 2배,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개신교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편의점 개수, 치킨집 개수보다 교회가 많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이미 지속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목회가 사명이 아니라 생존 경쟁이 되어 버린 이 현실, 신학교를 졸업한 신학생들이 접하는 문제가 청년 일자리 문제와 다를 바가 없는 이 현실은 한국교회 문제가 곧 한국 사회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고, 그나마 직장을 잡은 이들조차 금세 퇴직 위기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이원석 작가의 <공부란 무엇인가>(책담)란 책에서 현실을 드러낸 도표까지 등장했을까. 모두가 결국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자영업 세계로 내몰리지만, 결국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폐업이다. 내가 겪던 매 주일 청년부 저녁은 사실 이런 자영업자가 벌이는 냉혹한 생존경쟁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필자가 교회의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라 생각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찬송가 가사처럼 최후 승리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던가. 그래서 일상에서 겪은 작은 희망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어느 날 밤 필자는 시간이 어중간하게 비게 되어 잠시 교회 근처 카페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카페는 교회 청년부 지체의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카페였다. 필자는 커피를 하나 시켜서 마시며 독서를 하고 있었다. 계산대 근처에 앉아 있던 청년부 지체의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중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에효…. 우리집 손님도 잘 없는데 뭘."

그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사회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의 고단한 일상은 사실 교회 안 지체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우리와 가까운 이야기였다. 다만 교회 안에서의 은혜로운 나눔에 묻혀 몰랐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카페에 조금 더 자주 가게 되었던 것 같다. 비록 예배나 청년부 모임에 잘 나오지 않고, '주일은 쉽니다'라는 문구를 걸어 놓는 곳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일상에 조금이라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 일요일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전보다 자주 들르게 되었다.

우리 소비문화가 자영업자의 지옥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출하는 그 돈이 다른 이들에게는 '떡'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어떨까.

당장 '착한 소비'를 실천하기는 힘들어도, 적어도 '소비자 - 구매자' 관계 이상으로 그들과 '지역 주민'으로서의 관계를 맺어 가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들의 친구 되신 예수님처럼 그들과도 친구가 되어 가는 것이다.

교회의 소비문화는 그 주변의 자영업자들에게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 모습에는 조금 더 싱그러운 생명의 향기가,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나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로 먹고산다는 것도 어렵지만, 교회도 그런 팍팍한 '먹고사니즘'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와 늘 동행하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교회 주변에서 '조용한 전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가서서 그들과 친구 되어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더 많이 찾아 나가면 어떨까?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전도'이자 '선교'가 되리라 기도하면서 말이다.

박준우 / 대학원생. 대학 생활 대부분을 선교 단체와 학생 자치단체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전공과 관련이 하나도 없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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