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아이들의 기억 교실을 철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세희 엄마는 딸이 들어 있는 상자를 보자마자 울었다. 옅은 갈색 네모난 상자가 마치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둥켜안았다. 세희 아빠는 천천히 상자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확인한 후 다시 닫았다. 엄마는 상자 앞에서 오열했다.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래층에서 세현이 엄마 곡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이고 원통해서 어쩌나… 세현아 세현아… 나도 데리고 가거라." 엄마는 상자에 얼굴을 부비고 한참을 손으로 보듬었다. 세현이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교실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 교실에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흐느낌이 들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학교 운동장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4·16가족협의회, 경기도교육청, 안산시청, 단원고등학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등이 참여한 7개 단체의 '사회적 합의'로 기억 교실을 8월 20일 이전하기로 했다. 19일 저녁, 단원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기리는 여러 공연이 진행됐다.

부모님들은 행사 진행에 개의치 않았다. 천천히 교실을 둘러보고 아이들 물건이 담긴 상자를 끌어안았다. 내일이면 아이들이 생활했던 교실이 없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순영이가 지금이라도 뛰어올 것 같아." 순영 엄마는 상자를 끌어안다가 순영이가 생활했던 교실 칠판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려왔다.

무사 귀환을 기원했던 수많은 메시지는 다 제거된 상태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 꽃, 편지, 방명록이 빼곡히 놓여 있던 책상은 모두 표정 없는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갔다. 교실에서는 상자 종이 냄새만 났다. 상자 위에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었지만 유가족들에게는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 창틀에 붙어 있던 수많은 포스트잇은 모두 떼어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우리 아들을 창고 같은 곳으로…"

8월 20일 오전 9시, 유가족과 시민 봉사자들이 하나둘 단원고로 다시 모였다. 전날 편히 잠을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진 아빠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까지 울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초췌한 얼굴로 싱거운 인사를 건넸다.

진행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날 오후, 임시 이전하기로 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아이들 책상 외 다른 비품들을 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교실을 임시 이전한 후 이를 어떻게 운영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한 유가족이 안산교육지원청 별관 내부를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바닥에 아이들 이름을 붙여 놨는데 간격이 너무 좁았다. 이렇게 되면 거의 창고처럼 물건을 쌓아 둘 수밖에 없다. 책상을 임시로 복원하고 둘러볼 수 있는 공간도 없어 보였다.

굳이 지금 옮길 필요도 없었다. 기억 교실 칠판 등은 겨울에 공사해 옮길 예정이다. 그때까지 교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떠밀리듯 빼야 하는지, 아이들 책상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은지, 유가족들은 분노하고 원망했다.

▲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교실 이전을 지켜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9시 30분부터 4·16가족협의회 집행부와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 4·16연대, 단원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긴급하게 회의를 열었다. 향후 아무 계획이 없다는 부분에 대한 회의였다. 이후 유가족들만 따로 모였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유가족들 표정이 어두웠다.

11시 반이 넘어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과 이재정 교육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김광준 신부, 4·16연대 박래군 상임위원이 기자들 앞에 섰다.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예정대로 기억 교실 이전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한쪽에 모여 있던 유가족들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김광준 신부가 전명선 위원장과 이재정 교육감에게 악수를 시킬 때 야유가 터졌다. 전 위원장과 이 교육감은 하는 둥 마는 둥 악수를 하고 기자회견을 끝냈다.

그때, 동혁이 아빠가 동혁이 박스를 들고 나왔다. 동혁 아빠는 두 손에 상자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우리 아들 창고 같은 데 둘 수 없잖아요. 일단 집에라도 두려고요." 뒤따르던 동혁 엄마가 말했다. "미흡은 무슨. 준비를 안 한 거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교실 이전식이 시작됐다. 흰옷을 입은 봉사자들이 하나둘 상자를 가지고 내려와 로비에 열을 맞춰 놓았다. 유가족들은 한쪽에 앉아 고개를 떨궜다. 어떤 유가족은 직접 상자를 가지고 내려왔다. 엄마들은 상자가 내려질 때까지 울었다.

순영 엄마는 직접 상자를 들고 1층 로비까지 내려왔다. 마지막 봉사자에게 상자를 넘길 때 엄마는 상자를 놓지 못했다. 순영 엄마와 봉사자가 마주 보고 상자를 잡고 있는 5초가 길게 느껴졌다. 봉사자는 울상이 되었다. 순영 엄마는 손에 힘을 거둔 뒤 뒤돌아서 흐느꼈다.

예은이 할머니는 이재정 교육감과 교육청·단원고 관계자들 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다 빼내서 시원하겄다. 새로운 교육을 한다더니, 이게 교육이야? 교육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교육감님,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세요." 예은이 엄마와 요한이 엄마가 할머니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다. 이재정 교육감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 순영 엄마는 아들의 상자를 건네지 못했다(사진 위). 예은 할머니는 이재정 교육감과 교육청·단원고 관계자들 앞에 주저앉았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갑자기 한쪽에서 한 엄마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맨날 뒤통수 치고! 용서 안 해! 용서 못 하겠어! 왜 우리만 당해야 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악에 받친 절규가 사람들 마음에 박혔다. 시민들이 엄마를 진정시켰다. 옆에서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눈물을 훔쳤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 책걸상을 싣고 갈 트럭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삿짐센터 탑차라는 것을 알 수 없게 차의 광고 부분을 다 가리기로 했는데, 한 차량이 광고가 다 보이게 허접하게 가려 놓은 것이다. 한 엄마가 항의하자 그제야 A4 용지를 붙여 광고를 가렸다.

이날 단원고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전식은 발인식 같아 보였다. 그 자리에 있던 유가족들은 아무도 교실 이전을 원하지 않았다. 봉사자들도 힘들어했다. 유가족들이 아무도 이전을 원하지 않는데, 그들을 돕는다며 물건을 옮긴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이런 모습을 '사회적 합의'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가족들은 비통한 가슴을 부여잡고 짐승처럼 울었다. 학교와 교육청, 시민단체, 종교인들이 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858일, 유가족들은 벌써 몇 번째 초상을 치르는지 모른다.

▲ 미수습자의 책상은 미수습자 가족의 요청으로 이전하지 못했다. 다윤이 책상만 빼고 텅 비어 버린 교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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