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교실에서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단원고 명예 3학년 5반 교실에 나무 십자가가 세워졌다.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목요 기도회를 진행했던 김영명 목사와 장로회신학대학교 ‘하나님의선교’ 소속 학생들은 기도회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교탁 옆에 성찬 빵과 포도주를 진열했다. '기억 교실'에서 기도회는 처음이었다.

일정대로 저녁 6시 합동 분향소 기독교 예배실에서 목요 기도회를 마친 서울가향교회 김회권 목사와 교인 50여 명이 단원고로 왔다. 세월호 유가족의 노숙 농성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찾아온 기독교인도 있었다. 아이를 업고 온 엄마와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60~70명이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단원고에 모였다.

▲ 존폐의 기로에 선 '기억 교실'에 모인 기독교인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도회는 설교 없이 예정된 순서에 따라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일부는 아이들이 앉았던 책걸상에 앉았고, 나머지는 뒤에 서서 기도했다. 아이들 책상 위에 있는 사진과 꽃 등을 보며 사람들은 눈물지었다. 참가자들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책상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창현이 부모님, 지성이 엄마, 순영이 엄마, 동혁이 엄마, 예진이 엄마, 예은이 엄마가 참석했다. 유가족들이 간단한 소개를 한 뒤 지성이, 예은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예은이 엄마 박은희 씨 이야기를 정리했다.

▲ 왼쪽부터 지성이 엄마, 창현이 엄마, 동혁이 엄마, 창현이 아빠, 예은이 엄마, 예진이 엄마, 순영이 엄마. ⓒ뉴스앤조이 구권효

"어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교육청에 있는 세월호 지원단 분들이 왔다 가셨어요. 어제 교장선생님 말씀이 저는 잊히지 않아요. '제가 이 학교에 온 목적은 재학생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다. 언제나 즐겁게 올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과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즐거울까요. 들어오면서 느끼셨겠지만, 지금 몇 달 전부터 이 학교는 계속 공사 중이에요.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있어요. 화장실, 복도, 여기 천장도 보세요. 깨끗하죠? 멀쩡하잖아요. 근데 여기다 나무를 덧대고 있어요. 왜 그럴까. 지우려고 하는 거예요. 단원고처럼 안 보이고 싶은 거예요. 색깔을 밝게 하고, 예쁘게 하고, 뜯어고치고, 멀쩡한 식당을 싹 다 고치고, 그게 아이들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분향소 예배에 오셨던 목사님 한 분이 성경에 나오는 '잃은 양 한 마리 비유'를 말씀하셨어요. 목자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갔을 때, 남아 있는 양 아흔아홉 마리는 마음이 어땠을까 하시더라고요. 왜 우리는 버리고 갔을까,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저는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그 목사님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오히려 안심했을 거라고. 나도 길을 잃고 헤맬 때, 저 목자는 나도 찾아가겠구나, 나도 찾아 주겠구나, 나도 책임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는 거예요. 반면, 한 마리를 포기하는 목자는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결국에는 전부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유가족을 대표해 이야기하는 지성이 엄마(왼쪽)와 예은이 엄마(오른쪽).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 교실이 주는 의미는 뭘까요. 솔직히 저희 가족들은 처음에 여기 들어오기 싫었어요. 왜냐면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즐겁게 생활했던 곳이기 때문에, 더 아픈 곳이라 들어가기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 자리에 앉으면 얘기해 주는 거 같아요.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저희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안산시 단원구에서 새누리당이 왜 두 명이나 당선됐느냐고 얘기하시는 분이 있는데, 안산시는 어떻게든지 세월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해요. 지우고 싶어 해요. 성형하고 싶어 해요. 이렇게 교실도 어떻게든 없애려 하고….

교실 존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저희를 가까이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저희를 설득했어요. '중재자'라는 이름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8번의 회의 끝에 합의를 해 주기로, 협상하기로 약속한 거예요. 만약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같이 교실 존치하자고 외쳤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죠. 저희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통 큰 양보'라고 하는데 그건 통 큰 양보가 아니에요. '눈물의 양보'죠.

하지만 협상할 때 단서가 있었어요. 이후 진행되는 일은 협의, 말 그대로 서로 도와 가면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곳을 이전하는 과정이라든지,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 건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준비가 되고 이행되기를 바랐는데, 이건 무슨 도둑처럼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협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당일 짐을 빼겠다는 통보가 재학생 부모에게서 온 겁니다.

▲ 책상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이 적힌 방명록이 있다. 메시지를 남기는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 일을 겪으면서 저희 유가족 기독인 부모들은 농담 삼아 '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생각하고, 안 믿는 부모들은 '이건 아이들이 하는 일이다' 생각해요. 우리가 순리를 따르지 않고, 힘에 밀려서,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일을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죠. 어느 유가족도 이 교실을 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 우기다가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다치고 지역 주민과 등지게 되고. 그러면 저희가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억지로 협약을 한 거예요.

근데 이 일이 터지면서 저희가 다시 생각한 건 '아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구나',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에요. 이제 2개월 뒤면 네 명의 아이와 두 명의 선생님이 와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지금까지 2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두 달을 못 기다리고 이곳을 치워 버린다면, 그 아이들과 선생님과 부모들에게 우린 두고두고 고개 숙이고 살아야 해요. 유가족들도 그게 마음의 큰 짐이에요.

어찌 됐든 이 일이 계기가 돼서 미수습자들을 끝까지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도리인 거 같아요.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같이 갔으면. 그리고 만약에 범사회적으로 다시 교실에 대한 논의가 된다면, 교실 지켰으면 좋겠어요.

▲ 학교는 지금 이곳저곳 공사 중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 자리는 일종의 참회의 장소예요. 저희 아이들만 죽은 게 아니거든요. 저희가 전국에 간담회 하러 가 보면, 청소년들이 너무 아파해요. 그 마음에 원망과 분노가 있더라고요. 그런 원망과 분노, 절망을, 이렇게 건물 삐까번쩍하게 고치고 색칠하고, 천장을 연두색으로 칠하면 해결되나요? 그런다고 애들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니잖아요.

차라리 이 자리에 와서, 많은 어른들이 여기 와서 미안하다고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땅의 청소년들이 위로받지 않을까요. 그 아이들에게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미안하다고 얘기 못했잖아요. 이곳에 와서 모든 사람이, 특히 책임 있는 정치가들, 정부 관계자들, 교사들, 교육청 관계자들, 와서 울어야 해요. 울고 미안하다 얘기해야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그 마음의 원망, 어른들에 대한 실망, 그런 걸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먼저 간 아이들이나, 어렵게 생존해서 나온 아이들이나, 그 모습을 내 일처럼 지켜봐야 했던 청소년들이 '이제는 됐어요', '이제는 여러분의 약속을 믿어요'라고 할 때, 그때 교실을 치울 수 있을 거 같아요.

▲ 서울가향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늘 낮에도 교육감이 오셔서 '협약서에 사인했지 않나. 그러니까 그대로 하자'고 말하고 가셨어요. 여러분들이 좀 설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협약서에 먼저 간 아이들도 끼워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일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오케이 할 때까지, 그 협약서 속도를 좀 조절해 달라고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인하자마자 당일에 교실을 치우는, 그런 야만적인 일은 저희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들, 청소년들, 한마음으로 아파했던 국민들을 또다시 저 시커먼 바닷물에 집어넣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한목소리 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너무 바보 같았어요. 너무 겁쟁이였어요, 솔직히. 이제는 이 교실에 드러누워서라도, 남은 아이들 올 때까지만이라도, 이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을 지킬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해 주세요.

그게 진짜 '사회적 합의' 아닌가요. 누가 돈을 얼마 내서 건물 짓고, 누가 관리하고, 협약서에는 그 내용밖에 없어요. 건물 어떻게 지을 건지, 이거 어디로 옮겼다가 어디로 옮기고. 그건 합의가 아니잖아요. 진정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내가 무슨 힘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같이 힘 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기도회는 성찬과 감사와 결단의 기도로 마쳤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람들은 예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로 현재 상황과 유가족들의 마음을 전달받았다. 신문 기사로 보는 것보다 훨씬 울림이 컸다. 참가자들은 함께 성찬을 한 후 기도회를 마쳤다. 기도회 사회를 보던 장신대 신대원 전이루 씨는 기도회가 끝나자 참고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기도회 전에는 30여 분간 416기억저장소 김종천 사무국장 인솔하에 기억 교실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김 국장은 명예 3학년 1반과 2반 교실을 소개하면서, 세월호 가족들과 생존자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생존 학생들이 사고 당일 기억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명이 자살 기도를 했다는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가족들의 몸과 정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 흘렸다.

▲ 5월 12일은 순영이 생일이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였다. 아이 책상을 정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억 교실에 들어가면 공간 자체가 말을 한다. 이 교실이 지금 존폐의 기로에 섰다. 단원고는 봄 학사 일정 안에 기억 교실을 철거하기로 마음먹었고, 봄 학사는 5월 15일까지다. 학교는 교실을 치우기 위해 지난 2주를 단기 방학으로 지정하고 1·2학년 학생들을 쉬게 했다. 유가족들은 현관에서, 교실에서 노숙하며 교실을 지키고 있다.

※ 416기억전시관과 단원고 기억 교실, 합동 분향소를 경험하는 '기억과 약속의 길'을 신청해 주세요. 개인 및 단체로 신청 가능합니다. 신청과 자세한 내용은 416기억저장소(031-410-0416)로 문의하세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