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Under the Sun, 2015)

▲ 영화 '태양 아래'는 북한 체제의 거짓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다. 4월 27일 개봉했다. ⓒTHE픽쳐스

"소년단원이 되면 조직 생활을 합니다. 조직 생활을 할 때 잘못도 느끼게 되고, 경애하는 대원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북한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는 여덟 살 소녀 진미의 말이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진미의 눈에서 눈물 방울이 떨어진다. "이제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본인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도 이해 못하는 눈치다. 울지 말고 좋은 것을 생각해 보라는 말에 진미는 "잘 모릅니다"라고 답하고, 어떤 시(詩)를 생각해 보라고 주문하자 소년단 입단 선언문을 읊는다.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 주시고, 위대한 김정일 대원수님께서 빛내어 주시었으며,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영광스러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면서…"

북한 체제의 거짓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에 담긴 진미의 모습은 서글프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교과를 배우고, 태양절을 앞두고 잘 못하는 무용 연습도 해야 한다. 좋은 것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눈물을 그친 뒤 시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진미가 입단 선언문을 읊는 장면은 몸서리쳐진다. 영화는 주로 북한 어린이들의 현실에 초점을 맞췄지만, 북한 체제가 갖고 있는 기만을 폭로하는 풍경도 카메라 속에 담긴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당초에 북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감독이 다섯 명 후보 중에 진미를 선택한 까닭은 진미네 가족이 낡은 아파트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어서 평양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촬영 시작 당일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결국 영화는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준비하는 1년간을 영상에 담게 됐다.

진미 부모님의 직업이 바뀌고, 사는 곳도 고급 아파트로 바뀌었다. 담당 감시원이 모든 영화 촬영을 감독했고 연출하고 지시했다. 촬영한 필름도 북한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만스키 감독은 여분의 필름을 감추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북한의 거짓된 선전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체제를 비판하려 했다. 영화 중간중간 개입하는 북한 당국자 모습이나 여러 차례 NG를 내면서 같은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 북한 체제의 거짓을 폭로한다.

▲ 무용 연습 도중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진미. ⓒTHE픽쳐스

'진미의 눈물'은 북한 어린이들 눈물만 대변하는가

4월 27일 한국 개봉 이후 많은 보수 언론은 '태양 아래'를 다루면서, 이 영화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고 고발한 영화라 극찬했다. 5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다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꿈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우리가 보듬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갖고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삶을 보살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핵 개발과 북한 주민의 인권이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을 타진하기 이전에, 핵 개발을 포기한다고 해서 영화 속 현실이 극적으로 뒤바뀔 리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폭력으로는 북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이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서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진미의 눈물에서 북한 체제의 거짓됨과 북한 어린이 인권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눈물에서 북한 어린이들의 슬픔만 읽어 내기에는 남한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는 2009년부터 8년째 OECD 주요국의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수를 연구해 왔는데, '주관적 행복 지수'(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이 꼴찌였다. 한국 어린이·청소년 5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이해하지만, 북한 어린이들의 삶 못지 않게 남한 어린이들의 삶도 버겁다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8·10·12세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 행복감 국제 비교 연구'에서도 조사 대상 15개국 중 한국이 모든 연령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최근 7년간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20·30대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었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 자체가 진실의 한 조각만 보여 주듯이 통계 자료도 현실의 한 측면을 비춰 주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나 핵 개발을 둘러싼 국제 관계에서 발생하는 숱한 담론을 '진미의 눈물'로 축소시키고 한정지어 버린다면 그보다 더 북한 문제를 어리석게 바라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감상적으로 접근할 계제가 아니다. 북한 어린이들만 불행한가. 북한 어린이의 불행은 남한 어린이의 불행과 같이 다뤄질 주제다.

인권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현실적인 타계책을 모색하는 쪽이 좋겠다. 값싼 감상주의를 불러와 자기 본위에 만족하는 것만큼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 일도 없다. 사실 '태양 아래'가 주장하는 거짓된 북한의 실상은 우리가 아는 북한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새로울 게 없는 주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담겨진 '부분'을 북한의 '전모'로 인식한다면 북한에 대한 기존의 피상적 이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답보 상태에 놓일 따름이다.

▲ 김일성 탄생을 기념하는 '태양절'을 준비하는 1년간의 과정이 스크린에 담겼다. ⓒTHE픽쳐스

언론과 교회가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

한국 언론이 이 영화에 나타내는 반응들을 보면 북한 문제를 왜 아직까지 이 정도밖에 논의하지 못하는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언론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방식은 북한 관련 사건을 대하는 이전 방식과 다르지 않다.

진일보는 없다. 교회 문제처럼 쳇바퀴가 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감상주의적인 화제를 연이어 던지고, 논의할 주제를 축소시키고, 반공주의 전통에 기반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불과 몇 개월 전 뜨거운 감자였던 개성공단 철수 문제나 얼마 전의 한충렬 목사 피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팩트 체크가 명확하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논의를 이어 간다.

개성공단 철수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익은 무엇이며, 그곳 사람들 인식은 어떠한지, 대북 정세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명징하게 논의하는 매체는 드물다. 한 목사 사건에서는 누가 그를 죽였고, 죽임당한 흔적이 어떤지가 두드러진다. 피 묻은 시트커버가 대문짝만 하게 커버 사진으로 실린다.

'단독', '엄청난', '충격' 같은 과장된 단어로 사건을 부풀린다. 북한의 현실에는 관심도 없고, 늘 같은 선상에서 머문다. 진정 북한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북에 대한 인식부터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북한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단지 한 가지 기도 제목일뿐, 그 이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루는 교회를 만나기 쉽지 않다. 통일 한국을 기원하거나, 복음화를 이루자는 목표에 머문다. 그 관심은 북한 선교사 후원으로만 이어진다.

동성애나 이슬람에 관한 담론만큼 피상적이다. 딱 잘라 말하자면, 교회 집회에서 북한에 대해 아무리 울부짖으며 기도해 봐야 실효책은 없다.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수 교회들은 기도만 강조해 왔다. 자칭 선지자 H 씨나 종북 척결을 외치는 P 선교사 같은 이들이 음모론에 기반해 활개 치는 것을 보면 한국교회가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이슬람과 동성애 반대를 정책으로 내세운 기독자유당이나 핵 보유를 당론으로 내세운 기독민주당이 선전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이들을 떠받치는 주요 세력이 대형 교회와 유명 목사다. 이들 중에 이슬람이나 동성애, 핵 문제와 관련해 현실 지점까지 내려가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우려스럽다. 북한 문제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는 기독교가 이슬람이나 동성애 문제를 대할 때와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태양 아래'는 북한의 실상을 제한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다. 북한의 입체적인 현실을 보여 주기에는 부족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하는 주민들이나, 가끔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우악스러운 말투로 일관하는 북한 아나운서 모습 정도가 북한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는 이미지다. 그저 한쪽에 '잔류'하고 있다.

김정일 사진은 북한 풍경을 간접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THE픽쳐스

북한 주민은 돼지가 아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3월 28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한 포럼에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이탈 주민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탈북한 북한 주민 수가 3만 명도 채 안 되는 점을 지적하며, 일반적으로 생각할 법한 독재국가의 강압적인 세뇌나 공포, 자유 박탈이 북한 주민의 일상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국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소위 이단 사이비 집단에 빠진 사람들 중에서도 '일상'을 갖고 이를 건전하게 영위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만희, 정명석 씨를 하나님으로 받드는 이들에게도 다양한 현실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이를 냉철하게 인정할 때 해법을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동일한 메커니즘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지만, 북한 주민의 '일상'을 행·불행으로 잘라 말할 수 없다. 세계 어디에 살든지 사람이라면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 발을 묶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은 좀비처럼 생각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한 신문에 "북한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돼지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몇몇 돼지를 제외한 인민들은 '진미' 가족처럼 독재자의 압제 속에 거짓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라는 글이 실렸다. 누군가를 돼지로 취급하는 순간, 그 삶은 인간이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오만과 편견만 남는다. 그들에게도 '일상'과 '현실', '삶'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이해가 시작된다.

종교에 경도된 사람들이 보이는 '광신'은 남한 사람들 중에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심리 구조를 광신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김 교수는 북한에도 '개인주의'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의 종교적 의식처럼 행하는, 서로의 생활을 반성하는 '생활 총화'도 근래에는 겉으로만 서로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우상화 또한 종교 의례적인 맥락에서 그들 개인의 욕망을 뒷받침해 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 영화는 내내 진미네 가족을 비춘다. 본래 진미의 아버지는 기자였고, 어머니는 식당 직원이었다. 하지만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아버지는 봉제 공장 기술자로, 어머니는 콩우유 공장 노동자로 바뀌었다. ⓒTHE픽쳐스

이제 그만 좀 싸우자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 '독수리와 소녀'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터무니없이 말라 버린 아사 직전의 소녀, 그 소녀를 발치에서 보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은 생멸 기로에 놓인 소녀의 극한 상황을 보여 준다. 이 광경 앞에서는 기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쟁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 사진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당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 사진으로 기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지만,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정작 필요한 현실에 대한 논의를 축소시키기도 했다. 논점은 이렇다. 사진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셔터를 먼저 눌러야만 했을까, 곧바로 달려가서 독수리를 쫓아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논쟁이 사진이 던지는 이미지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독수리와 소녀'로 기아 문제를 체감했다면, 그 극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다. 행동 없는 논쟁은 감정싸움에 머물 뿐이다.

문제는 현실을 외면하고 이미지에 천착해, 지리한 논쟁에 머무는 데 있다. 종북 좌파, 빨갱이, 수구 꼴통 같은 단어가 오가는 현장이 그렇다. 당사자는 논의에서 빠져 있다. 편 가르기에만 익숙할 뿐. 그 어떤 때보다 냉철한 이성에 기반한 실천적 신앙이 요청되는 요즘이다.

기도나 눈물 몇 방울, 공감 몇 조각으로 신앙인의 의무를 방기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 '일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통일'이나 '선교'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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