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북한…"국가와 개인 간 상호 의존하며 체제 유지"

▲ 우리가 상상하는 북한 주민의 일상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치체제의 억압 속 살아가는 주민들을 떠올리지만, 북한 주민에게도 일상생활은 있다.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핵무장, 로켓 발사, 3대 세습, 독재… '북한'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에는 북한 주민들이 감춰져 있다. 북한 주민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으레 김일성 동상 앞에 헌화하는 모습이라든가, 미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 나온다. 그나마 일상을 소개하는 기사도 휴대전화를 쓰고 세련된 패션을 갖추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굶어 죽은 사람만 100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살기 힘든 사회에 살면서 김정은을 찬양하고, 휴대전화를 쓰고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남한으로 탈북한 북한 주민 수가 3만 명이 채 안 된다는 통계를 보면 '나머지 사람들은 왜 북한에 남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북한 주민들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지 유추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강압, 공포정치에 벌벌 떨어서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3월 28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소장 김진호)가 주관한 월례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다.

'축구는 ( )다.' 

월드컵 당시 한 방송사가 경기 후 내보냈던 카피다. 빈 공간에 사람들은 무수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 가지 말로 정의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 주민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착취와 억압을 당하고, 김정은 부자에게 충성을 강요받으며 산다' 라고 속단할 수 없다. 우리가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과 생활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성경 교수는 "저런 나라 왜 무너지지 않나요? 세뇌된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지금껏 유지되는 데에는 나름의 작동 방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다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북한을 단편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 중 중국에 넘어간 주민의 경우도 상당수가 국경 근처에 살거나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접경 지대인 중국 연길만 해도 휘황찬란하게 발전해 북한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왜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일까. 끈끈한 가족애나 수령에 대한 충성 때문에?

김성경 교수가 주목한 건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다. 김 교수는 최근 탈북한 북한 이탈 주민 15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기본 정보로, 북한 사회 내부의 깊숙한 면을 보려고 시도했다.

▲ 김성경 교수는 '방법으로서의 마음(Mind as method)'을 이야기했다. 정치체제로 보는 북한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북한 주민의 일상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북한 주민 삶을 이해하는 두 개의 거울, 생활 총화와 검열

교회 갈 때 모습을 상상해 보자. 건물 안에는 십자가가 있고, 강단은 평지보다 높게 설치돼 있다. 떠들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목사님이 하는 말을 듣는다. 교회 공간이 주는 '신성함' 속에서, 교인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신성함'을 실천한다.

김성경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하는 '생활 총화'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의례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총화란 정기적으로 모여 일상생활을 반성하는 행사다. 직업 별로, 혹은 나이대 별로 어렸을 때부터 모인다.

"지금부터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동지께서 마련하신 생활 총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된 동무들은 토론에 참가해 주십시오"라고 위원장이 공포한다. 위압감 속에 생활 총화가 시작된다. 자아비판과 호상(상호) 비판을 통해 자신이 잘못한 점을 말한다.

자아비판이라고 해서 김정은을 욕했다는 식의 '치명적' 잘못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해 봐야 "어제 지각했습니다" 같은 정도다. 그렇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면, 위원장은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오"하고 죄를 사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 북한 주민들은 매주 이런 활동을 통해 시공간을 공유하며 상호작용을 해 왔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언제부턴가 이 생활 총화를 '짜고 치기' 시작했다. 시장이 들어서고 경제활동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 속에도 '개인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비판하는 인민'이 사회주의 체제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서로의 체면을 존중해 주기 위해 '겉으로만' 서로를 비판한다. 그것이 본심은 아니라는 것은 서로 잘 안다.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요한 또 하나의 지표는 '검열'이다. 한국 드라마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검열관과 검열을 받는 주민은 서로를 존중 내지 인정한다. 중풍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데리고 나와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울고불며 사정을 봐달라고 한다. 검열관의 권위를 존중하면서, 그의 감정이 흔들릴 때 쯤 '뇌물'을 건넨다. 이 가운데 국가가 요구하는 몫도 있다. 즉, 국가의 필요와 밀수꾼의 필요가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사 규모가 큰 사람들은 아예 '관리'를 한다. '돈을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관리들과 관계를 맺는다. 밀수와 검열이라는 대립적 관계가, 사실은 체제를 유지하는 '상호의존관계'인 것이다.

▲ 김 교수는 15명의 북한 이탈 주민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가 본 북한 사회는 주민과 국가 간 일정 수준의 '타협'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세뇌 좀비는 없다

김성경 교수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장례에서 애통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은, 장례식이라는 의무에 부과된 의례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를 잃었다는 이유가 아닌, 슬픔과 애도라는 집합적 정서에서 행동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 중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익숙해 한다는 것이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 체제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어떤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북한 주민들은 북한 사회의 '체제'를 나름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호혜성'이라고 정의했다. 주민들은 국가가 설정한 '신성함'을 존중하고, 그 대가로 국가가 자신들의 욕망을 실천하는 것을 '커버'해 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북한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김 교수는 "분명한 것은 북한 주민과 국가는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다시금 상호작용의 규칙과 규범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눈앞에 다가온 것만 같은 통일, 어쩌면 더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알아 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대비해 목사를 계속 양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학교 정원을 감축하지 않는 곳도 있다. 북한에 보낼 목회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정치체제, 이념, 제도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김성경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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