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기자로서 난해할 때가 있다. 도저히 '보수'(保守)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보기 어려운 곳인데도 '보수 단체'라는 말을 써야 할 때다.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진보'(進步)도 마찬가지다.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하는데도 이들을 '보수 교회', '보수 기독교 단체'라고 점잖게(?) 표현해야 할 때 곤혹스럽다. 간혹 독자로부터 그런 불만을 듣기도 한다.

편의성 때문이다. 대체할 만한 다른 단어도 딱히 없다. 아무래도 그렇게 표현하는 게 쓰는 입장에서나 보는 입장에서나 알아보기 편하다. 한국은 교계뿐 아니라 사회도 보수와 진보, 우와 좌로 나뉘어 있다. 이는 진영이 되고, 사람들은 한쪽 편을 선택하기를 강요당한다. 가령,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은 동성애를 옹호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회색분자'가 되기 십상이다. 색이 선명한 사람이 존경받는다.

빨간 개구리가 되거나 파란 개구리가 돼야 대접받는 시대에 '얼룩 개구리'로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 2002년 탈북해 한국에서 기자가 된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다. 북한 최고 명문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그는 목숨을 걸고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독재 체제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을 '정은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김일성의 손자와 박정희의 딸이라니… 박통 당선됐을 때, 김정은 권력 세습 비판하던 나는 게면쩍었다. '저긴 스스로 아버지 권력 물려받았지만, 우린 국민이 뽑았다고?' 나는 그게 더 부끄러웠다. 북한 사람들 보고 이것이 바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정신에 충만된 국민들의 자랑스러운 선택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요새 새누리 하는 거 보니 다시 북한 비판하기 쪽팔린다. 1년 반짜리 권력에 저리 필사적으로 아부하는 자들을 보니, 끝이 어딘지 모르는 김정은 앞에서 설설 기는 북한 고위 간부들을 뭐라고 비판한단 말인가." - 3월 25일 주성하 기자 페이스북

한국 사회에서 보수 언론으로 손꼽히는 조선·동아·중앙일보 기자가 이런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의 페이스북과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를 보면서 더 관심이 갔다. 한국 사회가 규정지은 '탈북자'라는 이미지가 그에게는 맞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의 보수 언론 기자로서 그는 한국 사회를,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5월 2일, 서울 광화문에서 주성하 기자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확실히 <뉴스앤조이>가 그동안 인터뷰해 온 인물과는 달랐다. 위에서 든 예처럼, 세습을 반대했으니 동성애는 찬성한다는 입장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색깔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의 포지션은 우리 편과 상대편 중간 어딘가였다. 그는 "인간 사회를 진보와 보수, 두 집단으로 나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다양한 의견이 존중받는 사회, 나의 신념대로 말하고 움직이기엔 제약이 많은 사회라고 했다.

주성하 기자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했다.

▲ <동아일보> 국제부 주성하 기자를 5월 2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정희가 보수냐 진보냐

-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다. 사람들은 색이 선명한 사람을 좋아한다.

무리 심리, '나는 여기에 소속돼 있다'는 심리인 거 같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나눈다는 건 난해한 문제다. 가령,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일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진보주의자로 꼽지 않는다. 진보라는 건 변화를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간다는 거다. 박정희 시대만큼 우리나라가 변화되고 경제가 발전한 시대가 있었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진보를 이뤄 낸 정치가가 박정희다. 박정희가 보수주의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박정희 대통령이 인권을 탄압한 건 사실이다. 그런 걸 보면 진보는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을 따지자면 경제 발전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박정희 대통령은 진보주의자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를 보수주의자라고 꼽으니까 얼마나 (보수와 진보 개념이) 엉켜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보수 정권이 추앙하는 박정희란 인물을 평가하려 해도 보수적인 면과 진보적인 면이 엉켜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을 진보라고 평가한다. 근데 그건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변화해서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거꾸로 가는 북한 봉건 세습 왕조를 추종한다. 그건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반동'이다. 이렇듯 우리는 반동을 진보라 부르기도 한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는 편 가르기용으로 쓰일 뿐이지 진정한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한 개인을 봐도,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할 때도 있고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할 때도 있다. 한 사람 내에도 엉켜 있어서 딱 자르듯이 얘기하기가 불가능하다. 물론 어떤 진영을 대변하는 입장을 표현하는 용어는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용어가 보수와 진보는 아닌 것 같다.

- 페이스북에서도 한국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 보수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 사회에는 그 개념 자체가 혼재돼 있다. 언론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흔히 조·중·동은 보수, 한겨레·경향은 진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조·중·동이 나라 발전 하지 말고 이대로 있자고 하나. 아니다. 그들도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거다. '보수 언론'도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고 변화되고 좋은 사회가 되는 데 기여하는 면이 많다. 언론을 그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도 잘못된 거다.

-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변질됐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런 표현을 쓰게 된다. 최근 어버이연합이 구설에 올랐는데 다들 '보수 단체'로 표현한다. 교계도 그렇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보수 교계 단체'라고 표현한다.

어버이연합이 진보는 아니니까. (웃음) 애매하다. 대안은 학자들이 모여서 좀 정하면 좋겠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문제다. 나는 그런 표현이 불공평하다고 얘기할 뿐이다. 새로운 개념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내가 제시할 입장은 아니다.

- 어떤 교수는 새누리당이 전혀 보수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있어 보수 정당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권력 정당'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따지면 권력 정당 아닌 데가 어디 있나. 정당 활동이야 다 권력을 노리고 하는 건데. 그것보다 정의당은 노동 친화 정당, 새누리당은 자본 친화 정당, 이렇게 구분하면 좀 더 정확할 거 같다.

▲ 북한의 거짓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가 개봉했다.

인간의 존엄을 잃지 말자

- 언제 써도 특종이 될 만한 북한 관련 이슈를 두 개나 묻어 버렸다고 했다. 기자로서 욕심도 있을 텐데. 보도 원칙이 있나.

민주주의도 좋지만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법치보다 더 위에 있어야 한다. 사람이 첫째다. 이걸 써서 누군가 피해를 입는다, 내 양심에 꺼려진다 하면 안 쓰는 게 낫다.

피해자가 생기면 안 쓴다는 게 기계적인 원칙은 아니다. 이 사람은 처벌받아도 싸다 싶으면 쓴다. 내가 기사 써서 죄지은 사람이 처벌받는다면 당연히 쓴다. 그게 언론인의 사명감이다. 딜레마가 있다. 내가 쓰면 피해자가 나오는데 사회는 바뀌어야 할 때, 이 사람들은 처벌받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 때문에 못 쓸 때. case by case다. 기자의 판단이다. 양심에 비춰 이건 써도 떳떳하고 가책을 안 느낀다 싶으면 쓰는 거다.

- 최근 중국 식당에서 일했던 북한 사람 13명이 집단으로 탈북을 시도했다. KBS는 7명이 더 탈북하려고 했다가 포기했다는 후속 보도를 냈다. 기사를 보고, 북에 있는 7명의 신변이 위태롭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걸 언론사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세 번째 정도? 첫 번째 책임은 국회의원이다. 왜 그런 걸 말해 주었을까. 두 번째는 국정원장이다. 좀 가려서 얘기했으면 좋았을 걸. 세 번째로 언론이다. 기자들은 내가 안 써도 타 언론사 기자는 쓸 거라는 심리 때문에 쓰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애매한 피해자가 생긴다. 어디 하나에서 스톱을 시켰으면 좋겠는데 지금 한국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 최근 개봉한 영화 '태양 아래'가 북한의 실상을 드러내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 아이의 신변을 생각하면, 감독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아이는 안 다친다. 북한도 그렇게 무지막지하지는 않다. 아이는 뭘 모른다. 어른들이 욕먹으면 욕먹었지 아이는 괜찮다. 내가 판단하건대 그 영화 때문에 다칠 사람은 없다. 따라다니는 안내원들이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해임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보직을 보전해 주려고 북한 체제를 드러내지 않을 수는 없지 않나. 영화는 문제없다고 본다.

- 최근 어버이연합이 탈북자들에게 돈을 주고 관제 시위를 했다는 구체적인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어버이연합의 시위에 탈북자가 동원된 건 팩트다. 그 사람들이 갈 데가 있으면 거기에 갔겠나. 이 사회에서 아무도 탈북자들을 찾지 않는다. 교회에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집에 앉아서 TV 보는 일 외에 할 게 없다. 김성경 교수의 지적이 맞다. 탈북자들도 불쌍하다. 빨갱이라면 몸서리치는 사람들에게 '종북 반대하자', '싸우자' 선동하면 나간다. 게다가 시위 나가면 돈도 주고 밥도 준다. 이용한 사람이 나쁘지, 나간 사람한테 큰 책임을 묻는 건 어렵지 않겠나.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한 사회에 이용당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교묘하게 선동하는 사람은 나쁜 거다.

근데 또 어버이연합의 사고는, 탈북자를 이용하는 게 아니고 그들을 조직해서 투쟁에 나서게 하겠다는 확실한 사명감이 있다. 절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그걸 잘못했다 욕하면,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뭐냐. '그럼 진보 진영이 광우병 때 가짜 가지고 선동한 건 잘한 거냐' 이렇게 나온다. 그쪽 진영도 이용당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책임을 묻는다면 이용한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북한 보도를 할 때 사실 확인은 어떻게 하나.

가서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취재원의 얘기를 듣고 쓴다. 그 얘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는 건 기자의 몫이다. 판단을 하려면 대북 관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증언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증언은 아주 중요한 취재 수단이다.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동안 쌓아 온 북한에 대한 지식과 정황이 부합하면 쓰는 거다.

특히 누가 숙청됐다는 내용은 북한 관련 보도에서 아주 위험하다. 그건 증언자도 실제로 보지 못한 거니까. 나도 그런 건 웬만하면 피해 가려고 한다. 한국에서 숙청 보도가 나갔는데 실제로 살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써도 단정하지 말고 이런 설이 있다는 정도로 써야 한다.

- 북한에도 언론이 있나.

북한은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면 언론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당의 선전지일 뿐이지. 그들은 신문·방송이라고 말하겠지만 사내 홍보물 수준이다. 그마저도 우리나라에서 못 보게 다 막아 놔서 보기도 어렵다. 왜 막는지 모르겠다. 나는 풀어 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신문 좀 보면 어떤가. 우리나라 공안 계통은 너무 수구적이라, 그거 보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는데. 우리는 21세기에 살지만 거긴 아직 70~80년대 살고 있다. 봐도 큰일 안 난다.

- 북한과 자주 접촉하면 '종북', '빨갱이'가 될 거라고 우려한다.

종북이나 빨갱이는 반작용 측면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가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80년대 군부 정권까지 '국시'라는 게 있어서 거기에 맞지 않으면 다 나쁜 놈이 되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게 종북이라고 본다. 수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종북도 역시 지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회가 다양성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맞추겠다고 한다. 지금이 70~80년대도 아닌데 사고가 거기 머물러 있어서 변화될 줄 모른다. 나이 60~70 넘으면 사고가 안 변한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40 넘어가니까 점점 굳어 가는 게 느껴진다. 못 바꾼다. 그 세대가 흘러 지나가야 해결될 문제다.

▲ 주성하 기자는 한국에서도 북한 언론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극단주의자의 말은 무시해야

- "상식과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곳까지가 좌와 우의 끝이다. 이 끝을 벗어나 있다면 오른편에 있든 왼편에 있든 내 눈에는 똑같이 정신적 노숙자로 보일 뿐"이라고 했다. '정신적 노숙자'는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가.

국민 중에는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많겠고, 경우에 따라 우측으로 좌측으로 갈 수 있는, 혹은 자신을 오른편 왼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상식적인 한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좌우로 나누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주장을 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그런 건 뭐랄까. 노숙자라고 하면 노숙자들이 화를 낼 텐데. 아무튼 '정신적 돌연변이'라고 해야 하나.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에 우리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도 되는 세상 아닌가.

이석기 전 의원을 이런 범위를 벗어난 사람으로 보지만,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북한을 추종하자는 내용은 아니다. 가끔 옳은 소리도 한다. 그런 건 써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에서 벗어나는 주장에 대해서는 무시할 필요가 있다.

-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글에 사람들이 많이 호응했다. 페이스북에서도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의 친구 신청이 많아졌다며 우려하는 글을 썼는데.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 비판할 건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건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진보 정부가 들어섰을 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비판하지 않고, 적이라고 생각하면 엄청 부풀려서 얘기하고. 그게 문제다.

세월호의 경우, 불행한 사고라는 건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거나 어떤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체제가 지금 어느 때인데, 아이들을 희생해서 농간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무능력이 너무나 신랄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그건 비판하되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분노한다. 제일 화가 났던 건 공권력이다. 이준석 선장은 정신 나간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하면, 일차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주체는 공권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경비정에 열불이 난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물론 사람인 이상 '죽을 수도 있다' 싶으면 뒤로 물러날 수도 있겠지만 그 상황이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았다. 명령이라면 사지(死地)도 걸어 들어가야 할 판에, 세상에 그런 경찰이 어디 있나.

그럼에도 내가 봤을 때 이미 밝혀질 진실은 다 나온 것 같다. 진보 단체들은 정부가 진실을 감추려 한다는데, 난 그들이 말하는 진실이 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봐도 그 실체를 다 알 수 있지 않나. 대통령의 7시간은 부차적인 문제다. 근데 이걸 문제 삼는 걸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 그러는 것 같다. 여객선이 침몰했을 때 꼭 대통령이 다 구해 내라고 해야 구하는 건가. 그런 건 대통령이 없어도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다. 그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았던 게 문제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정치를 잘못해도 그런 문제 제기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진실 규명을 기대만큼 하지 않아서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악의 원흉일 수는 없다.

이건 사고고 대통령이 없어도 해결돼야 했던 것이다, 시스템을 되돌아보고 재정립하는 계기를 삼자는 게 '보수'라고 하는 신문들의 입장인데,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노무현·김대중 정부라고 이런 사고에 더 잘 대처했을까.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시민단체가 노무현·김대중 정부에 지금 정도의 잣대를 들이밀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잣대는 항상 똑같아야 한다.

- 전형적인 '보수'의 논리인 것 같다. <동아일보>는 한국 사회에서 손꼽히는 '보수 신문'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조·중·동을 사회악으로 규정한다.

한국 사회 언론들이 여러 목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 이 언론은 이런 목소리를 내고, 다른 언론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져야 한다. 다만, 상식에 기반해서 하자는 거다. 어디에나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자는 거다.

조·중·동이 무슨 거대 권력 집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그런 시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신문사에 있어 보면 음모 이런 건 없다. 그냥 기자가 자기 가치관대로 쓰는 거다. 물론 편집국장의 판단이 작용하겠지만, 기자가 정부 기관의 지시를 받고 음모를 꾸며서 쓰는 건 없다. 단, 한쪽 목소리가 커 보이는 건 조직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몇 년 있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결과적으로 기자 스스로의 판단으로 기사가 나오는 거지, 권력의 지시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 차라리 권력에 조종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한 것 같다.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요즘 언론사를 어디에서 조종하나, 못 한다. 뭐든지 자기 잣대로 바라보면 문제인 거다.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또 한겨레·경향이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조·중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아일보>는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하는 언론사는 아니다. 사정을 고려해 어느 정도 협조하는 면은 있겠지만 그 정도일 뿐이다. 언론이 정부에 전적으로 조종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주성하 기자는 누구보다 북한 체제의 실체를 알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종북' 소리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내가 '종북'이라고?

-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자 '종북'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를 종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 일베 같은 데서 이런 욕을 하는데,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외부에 비난의 타깃을 정해 놓고 자기들끼리 공통점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어느 순간 내가 비난의 대상에 올라간 것이고. 나를 비난하면서 그들은 사상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거다. 그들만의 '놀이 문화' 정도로 생각한다.

논리를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나를 종북이라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사람이 있겠나. 없다. 그냥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처형 대상이 어느 날 내가 된 거다. 내일이면 또 다른 사람이 타깃이 될 거고.

종교라는 게 꼭 기독교나 불교 이런 것만이 아니다. 일반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종교가 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을 욕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박근혜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거다. 박근혜에 대한 신앙, 노무현에 대한 신앙. 나는 김정은·김정일·김일성 우상숭배하는 나라가 싫어서 (한국으로) 왔는데, 여기에도 그런 신앙이 있더라. 난 그런 게 용납이 안 된다.

- 북한을 비판하는 사람이면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령, 동성애를 싫어하면 보수적인 쪽에 참여하면 되고, 교회 세습을 싫어하면 진보적인 쪽에 참여하면 된다. 자기 생각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겠나. 그런데 이쪽에 있던 사람이 저쪽 가면 '변절자'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가 진보 단체 소속이기 때문에, 그 비난이 두려워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입 다물고 있는다. 살아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결국 내가 소속한 곳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 주니까. 가운데에 선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주성하'라는 캐릭터가 독특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보수 쪽에서는, 탈북자들이 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이상한 놈도 있다, 먹고살 만하니 왜 저러냐, 저쪽 편에 가서 섰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진보 쪽에서는 탈북자니까 당연히 보수 편이겠지 한다.

- 그럼에도 '얼룩 개구리'로 살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얼룩 개구리로 산다는 게 상당히 힘든 문제이긴 하다. 쉽게 말해 자기 편이 있어야 편하다. 만약 권력에 야심이 있다고 하면, 나는 민주당·정의당이랑 어울리지 말고 새누리당과 어울려야 한다. 내가 아무리 진보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진보 진영에서는 나를 같은 편으로 받아 주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탈북자는 이래야 한다'는 위치가 있다. 그걸 벗어나게 되면 이쪽에서도 욕하고, 그렇다고 저쪽에서 같은 편으로 받아 주지도 않는다. 양쪽에서 다 욕먹으면 좋을 게 없다. 확실하게 한쪽 편을 드는 건 개인에겐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쪽 판에서 해 먹겠다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남쪽에서 승진하고 뭘 더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한국 올 때 목표는 북한 인민들 좀 잘살게 하고 싶다는 거였다. 나중에 북한이 열리면 거기서 뭔가 큰일을 해 보고 싶지, 남쪽에서 내가 목표로 삼는 자리는 없다. 현실적으로 내가 기자 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다른 일은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다. 눈치 보고 숨겨야 할 만큼 야심이 없기 때문에 내 맘대로 얘기하는 거다. 보수의 가치도 진보의 가치도 얘기할 수 있다.

나는 목숨 걸고 한국에 왔다는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다. 여기까지 와서 눈치 보고 살고 싶지 않다. 이게 내 인생에 대한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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