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가족 간담회. 어렵지 않다.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1. 부산 A교회 청년부 담당 이 아무개 목사는 이번 어버이날을 청년들과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뿐 아니라 고통당하는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4월 초, 여섯 명의 청년 리더에게 유가족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반응은 싸늘. 한 명 빼고 모두 난감해했다. "정치적인 사안이다", "세월호에 대해 잘 모른다", "교회에서 이런 일을 한 번도 한 적 없지 않느냐", "왜 굳이 부산에 있는 우리 공동체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 목사와 리더들은 한 달 동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기로 했다.

따로 채팅방을 열어 세월호 관련 기사들을 공유했다. 광화문 천막카페 이야기 <광장의 교회>(새물결플러스)를 함께 읽었다. 희생자 엄마 아빠들 이야기를 보고 서로 느낀 점을 나눴다. 2년 전 4월 16일에는 누구나 다 슬퍼하고 눈물 흘린 사건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을 정치적이라고, 종북 좌파라고 몰아세우는 현실을 보게 되었다.

결국 청년들은 5월 13일 금요일 저녁 기도회에 세월호 유가족 창현 엄마 최순화 씨와 광화문 봉사자 조미선 씨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청년 30~40명이 모여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가족과 만나기 전 느꼈던 두려움과 편견이 얼마나 막연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 3월 8일 열렸던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에 찾아온 세월호 유가족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2. 안산 B교회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네 명 있다. 그중 두 명은 부모님과 함께 이 교회에 다녔다. 안타깝게도 B교회는 참사 초기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다. 담임목사는 세월호가 정치적인 이슈기 때문에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한 아이 부모님은 교회를 잠깐 떠났다. 다른 한 아이 부모님은 답답한 마음을 꾹 참으며 교회에 다녔다.

이 교회에서도 5월 15일 간담회가 열렸다. 유가족 부모님들이 교인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계속 부탁했고, 담임목사가 이제야 받아들인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가 있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를 듣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교인 100여 명이 모여 가족들 이야기를 들었다. 교인들은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잘 몰랐던, 관심이 없었던 모습을 회개했고, 가족들은 이제라도 교인들이 이야기를 들어 주어서 고마웠다. 유가족 어머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어디든 달려갑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기사로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만나 직접 듣는 게 느끼는 바가 훨씬 크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면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오해했는지, 또 그 오해가 얼마나 사소한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최근 단원고 기억 교실 문제로 유가족들이 학교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일이 있었다. 단원고에는 아직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이 생활했던 교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복도와 창문에는 사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메시지가 빼곡히 적혀 있고, 아이들 책상에는 사진과 꽃, 편지들이 놓여 있다.

▲ 교실 존치가 왜 필요한지는 세월호 가족에게 직접 들어야 가장 잘 알 수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실은 이제 정리해야 하지 않나? 새로 입학한 아이들이 있을 텐데 언제까지 그대로 두자는 거지? 계속 그대로 유지하자는 건 세월호 가족들의 욕심 아닌가?' 세월호 가족을 지지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교실 문제만큼은 가족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교실에 와 보면 긴 설명 없어도 바로 알게 된다. 왜 이 교실을 치우면 안 되는지, 이 교실이 지금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교실을 유지하는 것과 옮기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여기에 유가족 이야기를 듣게 되면 기억 교실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실 문제를 예로 들었지만 세월호와 관련한 많은 의문이 가족들을 직접 만나면 풀린다. 가장 민감한 문제는 배·보상일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사회가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가족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는가.'

소문이 하도 많아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간담회 자리여도 쉽게 나오지 않는 주제다. 그런 분위기를 알기에 세월호 가족들은 본인들이 먼저 배·보상 이야기를 꺼낸다. 아픔을 무릅쓰고 돈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다.

▲ 4월 24일, 예장통합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담임하는 본향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 간담회. 미수습자 가족 3명과 유가족 2명, 교회 중진들에게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대형 교회 목사는 세월호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종북 좌파 단체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이들에게 뭐라고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는다. 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달라진다.

세월호 가족을 부르기에는 모이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규모를 따진 적이 없다. 10명 남짓 모이는 곳에서도 간담회를 해 봤고,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해 봤다. 꼭 교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할 필요도 없다. 청소년부·청년부, 각 단위별로 해도 된다. 세월호 가족들은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유일한 준비물, 듣고자 하는 마음

간담회를 열고 싶은 사람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다. 듣고자 하는 마음. 세월호 가족들 이야기를 들어 주려는 마음과 태도만 있으면 된다. 듣는 것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라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창현 엄마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게 우리가 치유되는 중요한 과정이에요."

세월호 가족들이 너무 거세게 정부를 비판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은 꾸며서 말하지 않는다. 자기 경험을 이야기한다.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직접 몸으로 겪었던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 4월 23일 팽목항에서 열린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 간담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미수습자 가족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간담회가 끝나고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미안하다", "모르고 있었다"이다. 아무리 세월호에 관심 있고 기사와 책을 챙겨 보더라도 한계가 있다. 직접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가장 좋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보수냐 진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들의 희생이 잊혀지는 것이다. 4월에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기억한다. 중요한 건 4월이 지난 다음이다. 기독교인 세월호 가족들은 다른 단체보다 교회와 신학교의 요청을 기다린다. 교회와 목회자에게 상처받았지만, 다시 이들을 치유해 줄 곳도 교회다. 오히려 가족들이 먼저 손을 건네고 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더욱 애타게 얼굴 마주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가족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피가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7월 선체 인양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를 끌어 올려야 하는 이유를, 미수습자 가족에게 직접 듣는 것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 문의: 페이스북 '이금희(은화엄마)' 검색 후 메시지로
-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문의: 영만 엄마 이미경(010-4398-7979), 창현 엄마 최순화(010-9087-5123)에게 문자메시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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