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빼고, 이념 빼고 일단 사람부터 찾자는 거예요. 그냥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봐 주세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미수습자 가족 은화 엄마는 739일째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부터 그의 마음은 오직 딸을 찾는 것뿐이다. 현재 맹골수도에서 인양 작업 중이고 올해 7월 말까지 인양할 것이라고 하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더 이상 '말'을 믿지 못한다. 배가 올라와서, 그 안에 있는 가족을 찾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인양'이다.

▲ 팽목항에 있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세기모)이 4월 23일 팽목항을 찾았다. 세기모 이름으로 여는 네 번째 팽목항 기도회다. 아침 7시 서울역에서 40명이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님, 선교 단체 청년, 신학생, 목사 등 다양한 사람이 왔다. 서울 하.나.의.교회와 대전·광주 등에서도 기도회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유모차를 타는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목사까지 70여 명이 팽목항에 가려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고 어떻게 오게 됐는지 소개했다.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처음 가는 이들은 2년이 지나서야 오게 된 미안함, 두세 번, 네 번 가는 이들은 몇 번 찾아오지 못한 미안함이었다. 지켜 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분노, 괴로움. 세월호가 인양되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될 빚진 마음이었다.

▲ 팽목항에 내리자 분향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후 2시 팽목항에 다다랐다. 길가에 핀 노란 유채꽃도 아름답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0416 팽목 분향소'라는 간판과 미수습자 아홉 명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희생자의 얼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국화 한 송이 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열린 문 사이로 향 피우는 냄새가 났다. 날씨가 흐려 항구 전체가 뿌옜다.

멀리 방파제가 보였다. 방파제 양옆 난간에는 수많은 노란 줄과 깃발, 미수습자 가족들의 편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다, 검푸르고 뿌연 바다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지난 2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난간을 붙잡고 울었을까. 팽목항은 그 통곡과 한이 서린 장소가 되었다.

▲ 은화 엄마는 기자에게 "저게 솔직한 우리 맘이에요" 하면서 한곳을 가리켰다. "내 가족을 못 찾을까 봐 무섭습니다"고 쓰여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방파제 끝에서 기도회를 시작했다. 허호익 교수(대전신대)는 '공감'을 주제로 설교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공감 능력이 큰 만큼, 역설적으로 반감 능력도 크다고 했다. 아파하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를 이유 없이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하며, 이 비유는 '이웃'의 개념에 대한 혁명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고통으로 공감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공감을 가지고 민중들을 대했다. 허 교수는 예수님이라면 세월호 가족들을 못 본 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도회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어서 미수습자 아홉 명을 찾을 수 있기를, 참사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세월호를 위해 분투하는 가족들과 많은 사람이 영육 간에 위로를 얻기를 기도했다.

▲ 허호익 교수(사진 위)가 설교를 전했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광주에서 온 기독교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진정한 인양은 한 사람도 유실되지 않는 것

컨테이너로 자리를 옮겨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를 열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참가자들이 둘러앉았다. 10분 정도 되는 영상을 함께 보았다. 아이들의 휴대폰에서 나온 영상과 사고 당시 영상을 종합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세월호 위에서 불꽃놀이를 하던 모습, 사고 당시 배가 기울어 있는 모습, 기울어진 배 안에서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모습, 16일 저녁 어선을 빌려 나간 사고 현장에 아무도 구조하고 있지 않은 모습. "현장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주저앉아 흐느끼는 한 아빠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 컨테이너에서 미수습자 간담회를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은화 엄마 이금희 씨와 권재근 님의 형이자 혁규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가 함께했다. 이금희 씨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고, 문자 보내면 답장이 올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은화가 그 아홉 명 중에 한 명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라며 울먹였다. 참가자들도 함께 울었다.

"유가족들이 아이 찾아서 올라갈 때 우리 보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던 곳이 바로 팽목항입니다. 저도 정말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진실 규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양이 먼저입니다. 세월호가 물속에 있으면 진실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혁규가 지연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줬습니다. 그냥 오빠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여야·이념, 그런 정치 논리 다 버리고 일단 사람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원하는 인양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와 아홉 명을 다 찾는 것입니다."

이금희 씨는 인양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현재 모든 창문과 입구에 유실 방지막을 쳐 놓고 부력제를 설치하고 있는 상태다. 이후 선수를 들어 리프팅빔 18개를 설치하고 선미를 들어 8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7월 말 인양을 목표로 빠듯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씨는 감시도 중요하지만, 인양 업체 상하이샐비지가 인양 작업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 은화 엄마 이금희 씨는 해양 전문가가 다 됐다. 페트병으로 인양 상황을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소조기 때 날씨가 안 좋으면 다음 소조기까지 보름이 밀려 버리기 때문이다. 7월이 넘어가면 태풍 때문에 9월 이후로 밀릴 수 있는 상황이다. 또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 미수습자 한 명도 유실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실제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금희 씨는 단순히 "인양이 되고 있어"라고 말하지 말고 실제로 인양이 어떤 상태까지 왔는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미수습자 가족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또 미수습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미수습자 은화·다윤이 부모님은 지금 전국을 다니며 간담회를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이금희 씨와 권오복 씨를 가운데 세우고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손을 잡고 포옹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참가자들은 눈물로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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