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3일,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영만이는 2월 19일에 태어났다. 날 때부터 기관지 식도루라는 병을 앓았다. 식도가 위에 붙어야 하는데 기도와 붙었다.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두려웠다. 만약 아이를 잃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 아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고, 엄마는 일주일 만에 영만이를 안을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안아 주지 못한 죄책감이 영만이를 키우는 동안 늘 따라다녔다.

영만이는 무럭무럭 잘 커 주었다. 건강하게 자란 것만으로도 감사한 아들이었다. 아이는 마음이 밝았다. 어버이날에는 엄마 아빠에게 곧잘 편지도 썼다. 몸이 아픈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랬던 영만이가, 작년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 이번에도 일주일 만에, 영만이는 엄마에게 안겼다.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아마 영원히 엄마를 괴롭힐 것이다.

예진이는 12월 11일,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목소리가 크고 당당했다. 앞에 나서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 예진이는 무대에 서고 싶어 했다.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보며, 언젠가 그 자리에 설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단지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예진이는 반에서 소외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친구가 마음고생을 하면 집에 데려와서 라면도 끓여 주고, 그 친구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아이였다.

예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항상 함께 다니던 친구 13명이 있었다. 작년 4월 16일 이후, 2명만 살아오고 11명은 하늘로 갔다. 이제 그 엄마들이 아이들 흉내를 낸다. 매달 한 번씩 만나, 아이들이 갔던 곳에 가서 아이들 포즈를 따라하며 사진을 찍는다. 12월에는 이화여대 앞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갔던 음식점에도 가고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엄마들은 웃고 있지만 사진을 보는 엄마들의 마음은 미어졌다.

▲ 6반 영만이 엄마(왼쪽)와 3반 예진이 엄마(오른쪽). ⓒ뉴스앤조이 구권효

영만이 엄마, 예진이 엄마가 아이들의 '남'과 '삶'을 이야기했다. 영만이 엄마는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 예진이 엄마는 아무래도 눈물 때문에 말을 못할 것 같다며 종이에 써 온 글을 읽었다. 12월 23일 저녁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 자리였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상에 서서 이야기하는 엄마들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이번 성탄 예배는 지난 1년간 합동 분향소 앞 기독교 컨테이너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목요 기도회, 주일예배를 꾸준히 해 왔던 팀들이 연합해 준비했다. 희생자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목요 기도회 팀의 오상열 목사(기독교평화센터)와 장신대 하나님의선교 학생들, 주일예배 팀의 박인환 목사(화정교회) 등이 예배 순서를 맡았다. 컨테이너 앞에 천막을 치고 간이 의자를 놓았다. 300석 정도를 마련했는데, 자리가 모자라 몇몇은 뒤에 서서 예배해야 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기만 하는 여느 성탄 행사와는 달랐다. 예수님의 탄생과 삶, 죽음을 기념하며,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태어남과 삶, 죽음을 기억하는 자리였다. 예배의 주제는 '별을 따라 예수께로'. 동방박사가 별을 따라가다 예수를 발견했듯이, 별이 된 아이들이 우리를 예수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안산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300여 명이 모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미수습자 다윤이 엄마희생자 다영이 아빠가 시대의 증언 순서를 맡았다. 다윤이 엄마는 흐느끼며 말했다.

"예수님은 가장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세월호 속에, 그 어둡고, 그 차갑고, 그 빛이 없는 곳에 아직도 9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 딸 다윤이도 있습니다. 저는 그 약한 자에게 오신 예수님도 세월호 속에 9명과 함께 계신다고 믿습니다.

가장 두렵고 무서운 건, 배가 올라왔을 때 거기에 다윤이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너무나 큽니다. 그건 아마 미수습자 가족들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참사가 터지고 많은 교회와 많은 목사님과 많은 성도님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함께해 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실종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더 많이 기도해 주시고 더 많이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 영상 제공 조선재

다영이 아빠는 흐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끝까지 싸우겠으니, 함께 싸워 달라는 다영 아빠의 호소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주 월·화·수, 청문회가 있었습니다. 해경은 모른 척했고 방송 3사와 중앙 일간지들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저희는 617일 동안 거리를 헤매면서,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야만적·폭력적이고 상식을 짓밟는 어처구니없는 사회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짓밟는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탐욕과 이익을 위해서 생명을 무시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희 아이들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야만적·폭력적이고 하나님의 정의를 짓밟는 악의 세력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싸웁시다! 여러분, 저희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진상이 규명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는 그날까지 모두가 연대하고 힘을 합쳐서 싸워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2반 다윤이 엄마(왼쪽)와 10반 다영이 아빠(오른쪽).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배는 성찬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성찬식 중간, 단원고 희생자 261명의 이름과 생일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였다. 희생자 엄마 아빠, 형제자매 12명이 한 달씩 맡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순서대로 단상에 나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말했다.

분병과 분잔을 하기 전, 예배에 참석한 모두가 '세월호 가족의 주기도문'을 읽었다. 희생자 지성이 아빠가 딸을 생각하며 주기도문을 고쳐 쓴 것이었다. ('별을 따라 예수께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 순서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이들도 그곳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거룩한 아이들이 되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나라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주께서는 용서하시되,
이 땅에서는 죄인들이 진실을 고백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신 이도 주님이요, 능히 이기게 하실 이도 주님이시니,
안전하게 헤쳐 나올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으니,
그 영광을 먼저 간 저희 아이들을 사용하시어 비추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희생자의 가족들이 한 명씩 나와 월별로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이름을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예배는 성찬으로 마무리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1반 지성이 아빠가 고쳐 쓴 주기도문.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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