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 군 어머니 이미경 씨는 그동안은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싶은 간절함이 크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싶고,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다. 아들 만나러 가야 하니깐." ⓒ뉴스앤조이 이사라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싶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다. 그래야 천국에 가서, 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10월 14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2학년 6반 고 이영만 군의 어머니 이미경 씨를 만났다. 이미경 씨는 안산에 있는 침례교회를 다니는 집사이기도 하다. 분향소에서 만난 이미경 씨는 노랑 리본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다. 토요일에 있을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 행사를 위해 리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자도 옆에 앉아 2시간 동안 리본 만들기를 도왔다. 저녁에는 상록수역으로 발언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상록수역에 가기 전, 분향소 옆에 있는 경기도 미술관으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단원고 2학년은 반별로 반대표가 있다. 이미경 씨는 단원고 2학년 6반 대표이다. 이미경 씨의 일과는 특별법 제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도 거의 매일 나온다. 지난달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초대를 받아, 기장 총대 목회자들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라도에도 내려갔다. 매일매일을 특별법 제정을 위해 바쁘게 보내고 있다. 자신을 돌보는 시간도 필요할 텐데, 이미경 씨는 늘 시간에 쫓겨 보였다.

- 너무 바쁜 모습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본의 아니게 2학년 6반 반대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 임원회의는 월요일, 금요일 아침에 정기적으로 있고. 또 수시로 모이기도 한다. 화요일은 보통 아침 10시에 대외협력부회의가 있다. 회의에 참석하려면, 집에서 9시 30분에 나와야 한다. 일정이 잡히면, 간담회도 가야 한다. 간담회는 주로 저녁 7시에 있다. 지방에서 간단회 일정이 잡히면, 안산에서 12~1시에 출발해야 한다. 매일이 바쁘다. 이번 일요일도 아침 11시에 분향소에 나왔다. 회의하고 안산에서 열리는 고려인 행사에 유가족 대표로 참여했다.

▲ 이미경 씨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는 영만이 사진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미경 씨는 아들을 생각하면, 웃는 얼굴만 생각난다고 했다. 영만이는 생전에 피자, 떡볶이, 치즈 스틱, 스파게티, 유부초밥, 물냉면을 좋아했다. (사진 제공 이미경)

성격 때문에 바쁘게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은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왔다. 지금은 일 안 하고 가만히 있다 보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고 활동을 해야 슬픔을 이길 수 있다. 특별법 제정에 매달려서 하기보단, 오히려 내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 지금은 이렇게 바쁘게 다니지만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그때는 내가 무엇을 하면서 슬픔을 견딜 수 있을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정신없이 쫓아다니고 있지만, 나중에 마무리되었을 때 내가 남은 시간들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무엇을 하면서, 행복하진 않지만 극복하며 보낼 수 있을지. 다가올 하루하루가 두려움이다. 아들 영만이의 죽음은 여전히 너무나도 큰 고통과 충격이다.

- 영만이는 어떤 아들이었나.

영만이는 태어날 때, 기관지 식도루라는 병이 있었다. 기도와 식도가 붙은 상태로 세상에 나왔던 둘째아들이었다. 태어난 지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식도가 좁아서 치아가 나서 음식을 씹기 전에는 잘 안 넘어가서 힘들어했다. 언제는 사과 큰 조각을 먹은 것이 안 넘어가고 목에 걸려 "헉헉" 소리를 내며 힘들게 숨을 쉬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많은 검사를 하는 동안 영만이가 크게 울었다. 그래서일까. 심하게 울더니 사과가 내려갔다. 잘 때도 먹은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변을 당할까 싶어 똑바로 누워서 재우지 못하고, 커다란 쿠션에 앉혀서 재웠다. 2년 가까이를 그렇게 키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늘 아기 같았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현관문에서 나는 영만이에게 "주님께 영광"이라고 인사하고 뽀뽀했다. 그리고 영만이가 문을 나서면, 나는 베란다에 달려가서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늘 뽀뽀했다. 지금까지 잘 때도 둘이 손을 꼭 붙잡고 함께 잤다.

영만이는 고민도 없고, 생각이 없이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늘 밝고 씩씩했다. 참 온순하고 순했다. 엄청 잘 웃었다. 무슨 말만 해도 그저 웃었다. 아들을 생각하면, 웃는 얼굴만 생각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투거나 싫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엄마, 싫어요. 안 돼요. 못해요."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보기만 해도 너무 예뻤다. 영만이는 어린아이 같았다. 같이 있다가도, 내가 영만이 볼에 갑자기 뽀뽀를 쪽 하면, 영만이는 "히히" 웃으며 좋아했다. 

또 랩은 무척 잘하고 즐겨 불렀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씻을 때나, 컴퓨터를 할 때, 노래를 들으면서 신이 나게 따라 부르곤 했다. 작년 12월 잠실체육관에서 있었던 아메바컬쳐 기획사 공연에도 가고 싶어했는데, 가지 못해 아쉬워했다. 좋아했던 랩퍼는 MC스나이퍼, 프라이머리, 긱스, 빈지노, 다이나믹듀오, 화나, 슈프림팀이다. 가장 잘 불렀던 노래는 키네틱플로우의 '몽환의 숲'이다. 축구도 무척 좋아하고 운동을 아주 잘했다. 5km 마라톤 대회에서 4등을 한 적도 있다. 문밖에만 나가면 늘 활기차게 뛰었다. 

▲ 2012년 2월, 영만이 중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이미경 씨는 영만이가 학교를 가던 아침 7시 30분, 귀가하던 밤 10시 30분에 아들이 가장 보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그 시간이 되면, 베란다에 나가 영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을 쳐다본다. (사진 제공 이미경)

- 영만이가 가장 보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매일매일 보고 싶다. 아침에 영만이를 배웅했던 시간 아침 7시 30분이다. 자다가도 그 시간이면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본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또 영만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었던 밤 10시 30분이 되면, 무슨 일을 하다가도 베란다에 나간다. 영만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던 길도 보고 하늘도 본다. 별이 있으면, 별에게 이야기한다. 매일을 그렇게 보낸다.

5월 22일인 것 같다. 그날도 밤에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캄캄하고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별 하나가 굉장히 밝게 빛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별이 날 향해서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별에 의미 부여를 했다. 그 별이 마치 내 아들 영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베란다에 서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 별을 향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젯밤에도 창문 밖을 보았다. 영만이에게 했던 것처럼 혼자서 미친듯이 손을 흔들어 보기도 했다.

-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사실 나는 20년 가까이를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다. 주일이 오면, 기뻐서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고 의무감으로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다. 하나님에게 매달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신앙에 대해 많이 갈급한 마음은 있다. 기도도 잘하고 싶고, 성경도 많이 알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나를 봐줄 수 있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같은 교회 집사님이 찬양 CD를 주어서 들어 보았다. "주님 손잡고 일어나세요"라는 가사의 찬양이 있었다. 나를 위로하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양을 들을 때는 은혜가 되는데, 지나고 나면 마음이 또 답답하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답답하다. 지금 이렇게 어마어마한 큰일을 겪으면서, 신앙을 저버리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다. 물론 후자를 택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서 답답하다.

▲ 고 이영만 군이 쓴 글씨가 담긴 종이이다. 영만이 어머니는 영만이의 글씨가 적힌 종이를 사진 찍어서 핸드폰에 보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미경)

형식적으로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한다. 내가 영만이를 지키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제발 그 영혼과 함께하시고 복 주시라고. 잘 모르지만 그렇게 기도를 한다. 통곡하며 기도한다. '하나님' 부르기만 하면 그저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아들이 나를 그리워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다. 그곳은 고통도 슬픔이 없는 곳이라고 했으니, 우리처럼 이렇게 그리워하는 감정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지 않은 감정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영만이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영만이가 이곳에 있는 우리를 그리워하면 그것도 영만이에게 고통이니깐.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니, 잘 이겨 내면서 계기가 되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도 할 줄 모르겠고 머리는 복잡하다. 매일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는 것 같다. 잘해야지 더 기도도 할 텐데, 잘 안 된다.

-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은가. 

처음에는 하나님이 계시기나 한지 원망도 했다.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기는 한지 생각도 들었다. 자꾸 주변에서 믿음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야기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만 천국이 없다고 믿는다면, 영만이가 어디 가 있겠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싶고,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영만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 테니깐. 신앙생활 제대로 잘 하고 싶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나아가서 뭐든지 회개하고 나중에 영만이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로 하나님을 잘 믿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내가 천국에 못 가면 어떻게 하나 두렵다. 신앙생활 잘하고 싶다.

▲ 인터뷰를 마친 영만이 어머니 이미경 씨가 버스를 타고 상록수역에 가고 있다. 상록수역에서 있는 촛불 문화제에서 발언을 하기 위해서이다. 안산 시민들은 상록수역에서 매주 화요일 7시 30분에 촛불 문화제를 한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이미경 씨의 둘째아들 이영만 군은 지금 평택서호추무관에 안치되어 있다. 영만 군보다 한 학년 위인 형은 공부를 잘해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런 형을 동생은 자랑스러워했다고 이미경 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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