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9일 광화문광장 개신교 농성장을 이정배 교수가 지켰다. 저녁 7시에는 기도회를 했다. 사진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사라

"이제, 기독인이 광화문광장을 지키겠습니다." 종교개혁 497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0월 30일, 광화문광장에 신학자들이 모였다. '세월호의아픔에참여하는이땅의신학자들' 177명은, 제자 목회자들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중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감신대) 이정배 종교철학 교수도 있었다. 이날 이 교수는 "세월호 특별법 서명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신학자' 이름 걸고 광화문광장 지킨다)

'세월호의아픔에참여하는이땅의신학자들' 모임은 이 교수가 맨 처음 제안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가슴 아파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학대 교수가 앞장서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벌이고, 신학자들을 한데 모은 이유가 궁금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정배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11월 7일 감신대 연구실에 만난 이 교수는, 광화문광장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교수의 재킷에는 세월호 아픔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이 교수는 기자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고 했다. 지난 9월 광화문광장에서 붙박이 취재를 하던 기자를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교수도 기자만큼 광화문광장을 많이 찾았다. 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수시로 찾았던 것이다.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기도회에는 20여 차례 참석했다고 한다. 

11월 19일, 광화문광장에서 한 번 더 만난 이 교수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하나의 '사건'이 돼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기독교와 전혀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구원 사명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독인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진실 싸움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 것이다.

▲ 이정배 교수는 이제 세월호는 정치적 쟁점 이전에 '진실 싸움'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기독인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진리 싸움'을 해야한다고 했다. 또한 세월호 유가족 중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이정배 교수가 세월호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사라

- 오늘 광화문광장을 찾은 까닭은 무엇인가.

그동안 광화문 개신교 농성장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생명선교연대가 릴레이 단식기도를 했다. 11월 11일 어떻게 농성장을 지킬 것인지 회의를 했다. 그 결과, 개신교 농성장은 세월호 유가족이 광화문에서 철수할 때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11월 17일부터 23일까지 감리교시국대책위가,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 일하는예수회가, 12월 1일부터 7일까지는 기장 생명선교연대가 돌아가면서 연합 기도회를 하기로 했다. 이번 주는 감리회가 광장을 책임지는 기간이다. 아무래도 수요일 오후는 일반 교회 목회자가 사역 때문에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서 감신대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중심하여 담당하기로 했다.

여야가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고, 세월호 가족대책위도 법안을 수용했다. 그 이후로 사실 나도 광장을 자주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점차 흐르니까, 내 안에 있었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우리 같은 사람도 관심이 줄어드는 듯 했다. 줄곧 관심을 가졌던 우리 같은 사람도 그 농도가 옅어 지는 것을 보며, 오늘 다시 꺼져 가는 불씨를 살리러 왔다. 오늘 하루 저녁이라도 광장을 지키려고 한다.

- 신학자를 '상아탑'이 아닌, 이런 현장에서 보는 것은 드문 일이다.

내가 사는 집이 광화문과 멀었으면, 자주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집이 광장과 20여 분 거리에 있어서 자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많은 시민이 애쓰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민이 생겼다. 우리 사회에 나를 포함하여 신학자라는 그룹이 있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는지, 우리는 왜 이 현장과 이렇게 동떨어져야 하는지 고민이 생겼다.

그게 8월이었다. 그래서 제자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8월 15일, 신학자 20여 명이 광장에 모여 하루 단식을 했다. '세월호의아픔에참여하는이땅의신학자들' 모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발적 모임이었다. 학자들이 학문적 구별 속에서 학회 조직으로 모이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이런 식의 자발적 연대를 통해 거리 모임을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리고 10월 7일에는 청운동주민센터 건너편에서 40여 명의 신학자가 모여 기도회를 했다. 기도회 이후, 앞으로 신학자들이 무엇을 할지 의논을 했다. 당시 나왔던 이야기가,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별법 촉구 서명을 했던 것처럼, 신학자들도 서명을 받아 유가족에게 힘을 주자는 것이었다. 원래 서명자 수가 100명이 되면 그만하려고 했다. 그런데 177명이 서명을 했다. 조직 없이 알음알음 연락했었음에도 말이다. 아마 서명을 받는 기간이 더 길었으면, 더 많은 신학자가 서명했을 것이다.

서명을 받은 후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목회자 철야 기도회처럼 신학자들도 기도회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관련 기사 : 목사 500명, 광화문에서 밤샘 기도) 10월 30일에 했던 기자회견과 기도회가 바로 그 열매이다. 제자들과 함께 했던 것이지만 조직이 없이 이만큼 규모로 진행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족한 모습도 있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발적 구조로 이뤄졌기에 기쁨이 더하다.

- 일부 목회자나 기독인은, '세월호'는 정치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계속해서 기억하라"는 종교라 할 것이다. 바로 출애굽 사건이 그렇다. 성경 곳곳에서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라고 한다. 세월호 역시 기억하려는 사람들과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의 싸움이다. 세월호는 단순히 사고가 아닌 무수한 비밀을 감춘 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사실을 찾고 그 실상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인은 이 사건을 정치적 쟁점 이전에 진리 싸움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막고 진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사실을 찾고 기억하는 일에 앞장서야만 할 것이다. 이는 정치 투쟁 이전에 우는 자와 함께 울고자 하는 '진리 싸움'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이 시대에 만연한 총체적 부실에 대한 하나의 표징이었다. 이 표징을 제대로 읽지 못해 기회를 놓치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을 기독교의 구원 사명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본 사안을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지나칠 수는 없어야 한다. 

▲ 광화문광장을 지키는 이정배 교수를 지지하며 감리교신학대학교 제자들, 제자 출신 목회자들, 동료 교수, 교직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향후 유가족과 어떻게 연대할지 논의하기도 했다. 사진은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사무총장 진광수 목사(가운데)와 제자들이 농성장을 방문한 모습. ⓒ뉴스앤조이 이사라

-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됐고, 유가족도 법안을 수용했다. 앞으로 기독인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요구가 모두 수용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마음에 흡족치 않는 특별법이지만, 이만큼 된 것은 200여 일에 걸쳐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법 운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엉뚱하게 시간을 끌면서 가게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인양을 재정적 이유로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할 일은 큰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이다. 순간순간 진행되는 과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켜보는 역할이 남았다. 누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능력일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이런 역활의 상징터이다. 어느 시점까지일지 모르지만, 광장에서 이 일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엊그제 자기 아들을 억울하게 잃은 한 권사를 만났다. 권사는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만하라'는 말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라고 한다. 마찬가지다. 세월호 부모들에게 그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 기독인도 진실 규명을 위해 그들과 함께 끝까지 가야만 한다.

- 앞으로 신학자들은 무엇을 할 계획인가.

세월호 유가족 중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교회가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 정권 이후 신학자들이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을 말했듯이 '세월호의아픔에참여하는이땅의신학자들'은 향후 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려고 한다. 금번 성탄절에는 지난번 서명한 교수를 중심하여 신학 에세이집을 낼 것이다. 또한, 4월 16일까지 본격적인 세월호 이후 신학 서적을 출판할 계획이다. 본 작업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세월호대책위원회, 생명평화마당 등이 힘을 보탤 것이다. 

이날 이정배 교수는 밤 11시까지 농성장을 지켰다. 그가 광장을 지키는 동안 그를 지지하는 감신대 제자들과 동료 교수, 교직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비록 미약할지라도 세월호를 기억하며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했다. 

▲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 있는 종교인 천막이다. 개신교 농성장은 세월호 유가족이 광화문에서 철수할 때 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매일 농성장에서 릴레이 기도를 하며, 매주 화요일 정오에는 '세월호 진실 규명' 기독인 연합 기도회가 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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