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0일, 장헌권 목사(광주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57)가 광주지방법원 입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장 목사는 본회퍼를 존경한다고 했다. 본회퍼가 히틀러의 독재에 저항했듯이, 오늘날 교회도 국가권력이 시민을 희생시키거나 고통당하게 할 때, 이를 본질적으로 차단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목회자는 예언자의 관점을 지니고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 제공 장헌권)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 15명의 선고 공판이 열린 11월 11일, <뉴스앤조이> 기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광주지방법원을 찾았다. 오전 8시, 20여 명의 유가족을 태운 버스는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광주에 도착했다. 선고 공판이 열리는 법원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차에서 내린 유가족들은 가장 먼저 장헌권 목사(광주 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57)를 찾았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장 목사는 유가족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지난달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광주에서 공판이 열리는 날이면 장 목사가 법원을 찾아 물심양면으로 유가족들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사를 제공하고, 공판이 연달아 열리면 숙소까지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물질적 도움도 고맙지만, 그보다 장 목사가 자신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줘서 큰 힘을 받는다고 했다. 종교가 없는 유가족들도, 장 목사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이날 장 목사는 늘 그래 왔듯이, 미리 구매한 법원 구내식당 점심 식권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마지막 한 명까지 식사를 제대로 하는지 챙겼다. 식사를 마친 유가족은 대기실로 이동했다. 안산에서 내려올 때와 달리 불안해하는 유가족들도 보였다. 장 목사는 긴장하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다독였다.

선고 공판은 오후 1시에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바람과 달리 선장과 승무원의 형량은 검찰의 구형보다 낮아졌다.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내버려 둔 채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은 징역 5년부터 36년 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공판을 지켜본 유가족들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재판 결과에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은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일부 유가족은 "아이들 목숨이 그렇게 가볍나요. 이게 무슨 법인가요"라고 소리쳤다.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들이 그치지 않았다. 지난 6개월간 한 번도 빠짐없이 공판장을 찾은 장 목사도 분노했다.

공판 이후 세월호참사희생자·생존자·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는 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고 최진혁 군 어머니 고영희 씨는 이제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유가족이 가진 모든 증거를 모아 항소심에 제출할 것이라 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 재판이 남았다며, 그들이 죄에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 광주지방법원 사거리 초입부터 법원까지, '세월호 삼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 상주 모임' 회원은 노랑 피켓을 들고 나란히 서서 길을 지키고 있었다. '진실 마중 사람 띠 잇기'이었다. 이들은 매번 유가족이 법원에 내려올 때마다,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고자 '진실 마중'을 준비해 왔다. 이날도 유가족은 버스에서 내려 광주 시민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기독인이 세월호 의혹 밝혀야"

세월호 참사 희생자·생존자·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는 공판마다 유가족과 함께하며 힘을 보태주었던 장헌권 목사에게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부탁했다. 장 목사는 "이번 판결을 보고, 어떻게 법치 국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항소 의사를 밝힌 유가족을 지지하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의가 세워지고 진실이 밝혀지도록 모두 함께하길 바란다"고 했다.

장 목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심 판결은 유가족이 아닌 처지에서 보더라도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304명이 희생된 대참사임에도 선장은 고작 징역 36년 형을 받았다고 했다. 책임 문제도 비켜 간 것 같다면서 이번 판결은 책임 규명 없이 면죄부만 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 1심 판결을 마치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생존자·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했다. 유가족은 공판마다 유가족과 함께하며 힘을 보태 주었던 장헌권 목사에게 발언을 부탁했다. 장 목사는 "이번 판결을 보고, 어떻게 법치국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항소 의사를 밝힌 유가족을 지지하며, 진실이 밝혀지도록 항소 과정에도 함께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본회퍼의 영향이 컸다. 본회퍼는 예수가 타자를 위한 존재였듯이, 교회도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본회퍼는 히틀러의 독재에 저항하고 심지어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순교했다.장 목사가 법원에서 유가족을 처음 만난 것은 6월 10일이라고 했다. 세월호 처음 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문제위원회 서기를 했던 장 목사는 그동안 광주에서 1인 시위와 매주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도회에 참석해 왔다. 고 김유민 양 아버지 김영오 씨가 단식을 할 때, 광화문광장에 가서 함께 단식을 하기도 했다.

▲ 지난 8월 광화문 광장, 장헌권 목사가 고 김유민 양 아버지 김유민 씨와 단식을 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문제위원회 서기를 했던 장 목사는 그동안 광주에서 1인 시위와 매주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도회도 참석했다. 또한, 6월 10일 시작한 첫 공판부터 지금까지 광주지방법원에서 유가족의 곁을 지켰다. (사진 제공 장헌권)

장 목사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가 권력이 시민을 희생시키거나 고통당하게 할 때, 교회는 이를 본질적으로 차단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많은 기독인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진실 규명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회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예언자의 관점을 지니고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합니다.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핵심은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나아가 안전한 사회 건설입니다. 깨어 있는 기독인이 유가족과 함께 의혹을 밝혀야 합니다."

▲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 목사는 안산으로 향하는 유가족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의 말을 빼 놓지 않았다. 장 목사는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하며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기자회견을 마치고, 장 목사는 안산으로 향하는 유가족을 한 명 한 명 만나 악수하고 위로했다. 유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 계속 힘을 더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 목사는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며 유가족과 끝까지 투쟁하겠다"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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