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붙박이 시작

이번 주 월요일부터 광화문광장 붙박이를 시작했다. 붙박이 셋째 날인 수요일, 7시 촛불 문화제에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적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광장을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유가족 한 명이 광화문광장에서 자고 가란다. 저녁 집회에 사람이 적으니, 같이 앉아 있다 가란다. 그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돌아가서 해야 할 업무가 많다. 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하고 광장을 떠났다.

이튿날 노숙할 준비를 하고 광장을 찾았다. 아침부터 새맘교회 박득훈 목사와 아내 김경애 씨가 보인다. '세월호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세기모)' 주관으로 7개 교회가 돌아가며 3일씩 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18일부터 20일은 새맘교회 순번이라고 한다. 

오전 10시: 행동하겠다는 젊은 목사들

점잖게 양복을 빼입은 젊은 남자 두 명이 이곳을 찾았다. 대형 교회에 속하는 서울 ㅇ교회 목회자들이었다. 한 목사는 ㅇ교회가 대단히 보수적이고 예민한 교회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념 논리에 갇힌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움직임은 약하지만, 한편으론 세월호 아픔에 공감하는 교인들도 많다고 했다. 그들은 맡은 교육 부서 예배에서도 같이 기도했다고 했다. 꾸준히 기도하고 행동하겠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또 한 명의 젊은 사람이 찾아왔다. 경기도 예향교회 유대실 목사(37)다. 유 목사는 교회에서 중고등부, 청년부를 담당한다. 참사 이후, 안산합동분향소에 교인들과 분향을 다녀오기도 했다. 교회에서 특별법 지지 포스터를 붙이고, 서명을 받기도 하고, 중보 기도회 때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유 목사는 이날 12시부터 1시까지 세기모와 함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작은 관심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유 목사는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 때문에 광장까지 나오게 됐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이 자신의 결단 영역이 아니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참사 직후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진상 규명을 약속할 때도 믿지 않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직접 들으니, 분노가 차올라 광장에 나왔다. 유 목사는 이제부터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9월 18일 낮, 예향교회 유대실 목사(37, 사진 아래)가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유 목사는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 때문에 광장까지 나왔다. 그는 한 시간 동안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유 목사 옆에서는 '세월호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이 서명운동과 피켓 시위를 했다(사진 위). ⓒ뉴스앤조이 이사라

오후 1시: 예은이 이모와 눈물의 인터뷰…"이야기 들어 줘 고마워"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 이모 박명희 씨(48)가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해 피켓 시위를 하러 온 것이다. 피켓 시위를 끝낸 박명희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처음에 고사했지만,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2시간을 넘게 얘기했다. 신앙적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인터뷰는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났다. (관련 기사 : "하나님, 답을 듣고 싶어요. 왜 모른 척 하셨나요") 

인터뷰 기사가 나가기 전, 박명희 씨에게 내용 검토를 부탁했다. 본래 의도와 다른 기사가 나갈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나가도 괜찮다는 답을 했다. 그리곤 메시지를 보냈다.

"수고하세요. 제 이야기 들어 주어서 많이 고마워요. 저 요즘에 엄청나게 외로웠거든요. 오히려 제 동생하고는 애들 이야기 못 해요. 눈물이 앞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견딜 수 없게 외롭네요. 제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날이 오기는 하겠죠. 고마워요."

오후 4시: 윤구병 선생, "70대인 내 책임"…노옥신 여사 "특별법 제정은 우리의 소명"

박명희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71·보리출판사 대표이사)이 앉아 있었다. 9월 5일 시작한 평화 순례 중 이곳을 찾은 것이다. 평화 순례는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느끼고 시작했다.

윤구병 선생은 개신교 단식장에서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대표와 민들레영토 대표 지승룡 목사와 얘기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기사로 전하겠다.

개신교 농성장에는 문대골 목사(73·예수살기 상임의장)과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대부 고 오재식 박사의 부인 노옥신 여사(80)도 있었다. 문 목사는 방명록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고 말을 아꼈다. 노옥신 여사는 사회 정의의 구현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 9월 18일 오후 4시,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71·보리출판사 대표이사)이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앉아 있다. 윤 선생은 9월 5일부터 평화 순례를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70대인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 지승룡 목사(민들레 영토 대표), 윤구병 선생,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 ⓒ뉴스앤조이 이사라
▲ 9월 18일 오후 4시,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대부 고 오재식 박사의 부인 노옥신 여사(80)도 있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하는 것이 기독인의 소명이라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저녁 7시: 광장을 찾는 기독교인들, 내일은 단식도 참여

저녁이 되니, 새맘교회 교인들이 여러 명 찾아왔다. 오전부터 와서 동조 단식을 하던 김경애 씨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광장에서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는 교인도 있었다. 한 교인은 내일 광장에서 같이 단식할 계획이다. 곁에 있던 방인성 목사는 교회에서 여럿이 찾아온 모습을 보고 참 보기 좋다고 연신 말했다.

보통 저녁 8시 30분에 개신교 단식장 천막을 내리는데, 오늘은 방문객이 많았다. 방 목사의 아내는 아까부터 천막 정리를 하고, 남편에게 얼른 들어가 잘 것을 권하고 있었다. 방 목사와 함께 단식하고 있는 김홍술 목사는 피곤한지, 진작 잠에 들었다. 아내가 한 번 더 강하게 얘기하자 그제서야 방 목사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 목사는 단식 24일째, 기력이 없을 게 분명한데도 사람들을 대할 때면 목소리에 힘을 내고, 낯빛을 밝게 했다.

▲ 9월 15일부터 7개 교회가 3일씩 동조 단식 릴레이를 하고 있다. 18일부터는 새맘교회(박득훈)의 차례이다. 박득훈 목사 아내 김경애 씨가 오전부터 광화문광장에 나와 단식을 했다. 교인들이 김경애 씨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저녁 9시: 하나님에게 화가 난 유가족, "전 지금 삐쳐 있어요."

7시에 시작한 촛불 문화제는 9시에 끝났다. 유가족들은 광장을 정리하고 나서야 저녁 식사를 했다. 기자도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김동혁 군의 어머니 김성실(49)씨도 함께했다.

이날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된 동혁 군의 어머니는 기자가 기독 언론사 소속이라는 것을 밝히자, 하나님에게 갖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동혁 군의 가족은 참사 이전에는 가정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에게 화가 많이 난다고 했다.

"저는 지금 하나님에게 화가 난 상태예요. 전 삐쳐 있어요. 하나님께서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건가요. 그리고 내가 키웠던 내 자식을 하나님이 왜 데리고 간 건가요. 동혁이는 우리 집에서도 가장 신앙이 좋은 아이였는데. 그런 내 아들을 하나님이 왜 데리고 간 건가요. 하나님이 제 화를 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속상합니다."

김성실 씨는 내일(9월 19일) 인천에 간다고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오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다. 물론 박 대통령이 만나 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가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 씨와 헤어졌다. 하나님에게 화가 났다는 김 씨의 말이 헤어진 후에도 맴돌았다. 예은 양의 이모가 했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이들이 얼마나 더 하나님을 원망해야, 답답해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눈앞이 한참 동안 흐렸다.

▲ 9월 19일 자정, 조용한 광화문 광장에 외로이 촛불이 켜져 있다. "잊지 않을게"라고 적힌 현수막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밤 12시: 잠을 못 이루는 가족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광화문광장은 적막한데 도로변은 여전히 대낮이다.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낮보다 속력을 높이며 주변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이 너무 크다. 기자도 농성장 천막 한 곳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유가족들이 있었다.

온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 서 있느라 피곤할 만도 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 아버지는 이날 아들의 같은 반 친구에게 쓴 편지를 받았다. 혼자 빈 천막에 들어가 편지를 읽고 나온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다. "울었어요" 물었다.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잠 못 드는 유가족 몇 명과 다른 언론사 기자와 함께 얘기를 나눴다. 오고 간 이야기는 모두 특별법에 관한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벽 2시, 각자 천막으로 잠을 자러 갔는데, 한 아버지가 남았다. 저만치 멍하니 서서, 그저 하늘을 바라본다. 아들 생각이 나나 보다. 

▲ 9월 18일 밤 12시, 광화문 도로변에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힘껏 속력을 높이고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소음이 너무 크다. 가끔은 광장 천막이 흔들리기도한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9월 19일 오전 8시, 일상의 모습이다. 수많은 차량과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유가족은 언제쯤이 되어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뉴스앤조이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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