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감돌 때쯤 벌어졌는데 어느새 가을의 문턱까지 왔다. 계절과 계절을 넘어섰지만, '세월호 참사는 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단원고 2학년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46일 동안 단식한 뒤 회복 중이고, 다른 유가족들은 광화문과 청운동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한다. 시민들과 가수, 영화인, 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단식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원하는 단 한 가지, '세월호 특별법'은 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족들도 추석 전에 특별법 제정이라는 선물을 안고 가족들의 품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가위에도 광화문과 청운동을 떠날 수 없게 됐다. 진도 팽목항에도 아직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10명의 가족들이 있다. 추석 전에 시신이라도 건지길 바라며 가족들은 마른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추석은 민족 대명절도, 연휴도 아니다. 그냥 세월호 참사 146일째일 뿐이다.

추석을 앞둔 9월의 첫째 주, 유가족 중 교회 사역자인 박은희 전도사(안산화정교회)와 임온유 목사(안산성문교회)를 만나 심경을 들어 보았다.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 생명의 문제라고 이들은 말했다.

"우리 말고 또 다른 섬이 많이 있었구나"

박은희 전도사는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기독교인들의 모임이나 기도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앞에 나가 발언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 소속된 박 전도사는 감리회 목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여러 번 유가족들의 상황을 알렸다. 얘기를 나눠 보니, 그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에만 참석하는 게 아니었다. 안산 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인 박 전도사는 안산 지역 주민들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찾아가 유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안산은 가까운 이웃인데 오히려 공감을 못 얻고 있어요. 서울보다 안산이 더 조용해요. 제가 여기저기에다 얘기해 놨어요. 지역 주민들 모임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그런 모임들에 계속 찾아다닐 거예요. 9~10월은 지역마다 축제가 많은데요. 거기에도 가고, 가능하면 부스 하나를 맡아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상황을 알리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아무튼 사람 많이 모이는 곳, 특히 보수적인 분들이 많이 모이는 곳 환영합니다.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에게 잘 말씀드리려고 하는 거죠. 특히 세월호 특별법 내용이 뭔지, 유가족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4월 16일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세 가지는 정확하게 짚어 드리려고 해요."

▲ 박은희 전도사는 세월호와 관련한 기독교인들의 모임이나 기도회에 거의 대부분 참석한다. 유가족들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고, 연대해 주는 단체들이 유가족들과 보폭을 맞춰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사진은 9월 1일 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 기도회에 참석한 박 전도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박은희 전도사는 첫째로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메이저 언론사들이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지 않으니,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라도 진실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여러 단체들이 유가족들과 보폭을 맞춰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오래 투쟁해 온 단체들이 연대해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유가족들은 대부분 농성이나 투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구호 외치는 것도 너무 낯설었어요. 유가족들 중에는 지금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들 그런 건 잘 모르고 산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진보적인 단체에서 연대해 주시는 분들은 어찌 보면 투사잖아요. 보폭이 우리보다 빠르니까, 그분들이 너무 빠르게 가 버리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겁먹고 주저앉아 버리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유가족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말씀드리고 완급 조절을 하자는 마음도 있어요."

문득, 7월 12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 버스 보고 대회에서 사회를 맡았던 박은희 전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촛불을 든 5000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그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예은이가 촛불 집회 한번 가 보자고 졸랐는데 자기가 막았다고.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예은이가 정말 좋아했을 거라고. 예은이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예은이는 촛불 집회 같은 걸 되게 좋아했어요. 사회적인 문제에 민감했던 것 같아요, 얘가. 근데 엄마 입장에서 딸이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괜히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말렸죠.

저는 그런 거 몰랐어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또 공권력에 의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연대해 주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보통 국민들이 생각하는 반동분자나 빨갱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오히려 이 사회의 강자들이 그들을 안 보이게끔 가렸던 게 아닌가, 그런 걸 깨달았어요. 저뿐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똑같은 얘기해요. <섬과 섬을 잇다>라는 책처럼, 우리가 또 하나의 섬이 돼 보니까 '우리 말고 다른 섬이 많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도 전도사로 사역하는 종교인으로서 회개해야 할 일이에요. 이렇게 사회적인 약자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도대체 우리는 지금까지 뭘 했나. 교회 성장에만 급급해서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해야 하는 종교적인 본분을 하지 못한 건 아닌가…."

▲ 예은이는 어린 나이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박은희 전도사는 딸이 가고 싶어 했던 촛불 집회에 같이 못 간 것이 못내 아쉽다. 사진은 지난 7월 12일 세월호 가족 버스 보고 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박 전도사. 이날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런 경험은 종교인으로서도 생각을 다시 하는 계기가 됐다.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해 대고 이제 국민들을 위해 농성을 멈추라고 촉구하는 목사들이 있는 반면, 유가족들의 곁에 있어 주고 함께 단식하는 목사도 있었다. 종교를 떠나 유가족들에게 진정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9월 1일 가톨릭·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 5대 종단 연합 기도회를 지켜본 박은희 전도사는, '생명'이라는 가치 아래 종교인들이 손잡았다는 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개신교 안에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건 건강하다고 봐요. 서로 견제가 되고 균형을 잡아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세월호와 관련해서 해도 너무한 것 같아요. 이거는 보수 진보를 떠나서 마땅히 밝혀야 하는 일이고, 마땅히 처벌해야 하는 일이고, 마땅히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일인데…. 생명에 보수 진보가 어디 있어요?

5대 종단 기도회 정말 좋았어요. 물론 다른 종교의 예전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런 형식보다도 그분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는지를 봤어요. 그분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만 봤어요. '생명'이라는 두 글자에 서로 다른 종교가 손을 잡았다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감동스럽더라고요. 당연한 일이죠. 그때 개신교에서 설교하셨던 한신대 교수님 말씀대로,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는 '공감'이 모든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니까요."

그렇다. 생명이라는 가치 앞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생명이 아닌 다른 걸 우선했다가 수백 명의 꽃다운 아이들을 잃은 사건이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진실은 하나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아무리 희석시키려고 해도, 진실이 있는데 그게 사라지겠어요. 지금은 잘 안 보여도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뚜렷이 보일 거라고 믿어요."

"당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일간지의 헤드라인처럼 "팽목항엔 추석이 없다." 명절이 다가오자 가뜩이나 썰렁해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이 더 텅 비게 생겼다고 임온유 목사는 걱정했다. 임 목사는 단원고 2학년 4반 고 임요한 군의 아버지다. (관련 기사 : 세월호에서 아직 아들 못 건진 어느 목사의 기도) 그는 벌써 몇 주째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삶을 함께하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진도에 가서 성경 말씀대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있습니다. 제 아들도 20일 만에 시신을 건졌어요. 5개월이 다 되어 가도록 시신도 못 건진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입니다. 저도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부족하게나마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고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바지선에 가서 20~30분간 아직 나오지 못한 아이들, 선생님, 일반인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불러 줍니다.

지금 구조 작업을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려고 하면 파도가 5m씩 올라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적인 작업이 안 되고 있어요. 한 달이 넘도록 실종자가 한 명도 안 나왔잖아요. 안 나온 이유가 뭐냐면, 일단 계속 구조 작업을 못하고, 인원도 많이 줄었고요. 브리핑을 들어 보면, 배 안에 뭐가 무너졌다든지 길이 막혔다든지 이렇게 얘기해요. 실종자 가족들은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뾰족한 대책도 없고 답답한 상황입니다."

임온유 목사에게 듣는 진도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브리핑은 매일 하는데 진척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바람은 하루빨리 유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세상에 있을까.

"지금 실종자 가족들은요, 유가족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얼마나 슬픈 현실입니까. 제가 함께 기도할 때 한 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도 유가족 되게 해 주세요.'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명절을 유가족이 돼서 보내고 싶다고 하는데, 가슴이 미어집니다. 무슨 현실이 이런지…. 실종자 가족들 마음이 지금 이렇습니다."

▲ 임온유 목사는 최근 호남신학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도보 순례를 했다. 요한이의 얼굴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간 현수막을 등에 업고 걸었다. (사진 제공 임온유 목사)

유가족대책위원회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지는 않지만, 임온유 목사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전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서명을 받고, 집회 때문에 미국에 들렀을 때도 서명 용지를 챙겼다. 얼마 전에는 호남신학대학교 학생들이 하는 도보 순례에도 참여했다. 임 목사는 아들 요한이의 얼굴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제작해 어깨에 메고 걸었다.

"서명을 받다 보면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 네 아들 죽은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정부를 왜 그렇게 괴롭히느냐, 교통사고 난 거랑 똑같은 거 아니냐, 그런 막말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목사도 있어요. 각자 옳은 대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할 수도 없고, 저는 그냥 그랬어요. 당신 가족이 그렇게 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그런 얘기하겠느냐. 그러면 아무 말도 못해요.

보수든지 진보든지 이번 세월호 참사 때문에 내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데모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를 빨리 잊자고 하는데, 아니 어떻게 자식을 잊을 수가 있냐고…. 그러면 당신들은 자식이나 손자가 죽으면 잊을 겁니까. 나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자기 얘기 아니라고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려는 유가족들에게 일부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은 9월 1일 유가족들과의 3차 면담에서 "뭐가 부족하다는 거냐. 뭘 더 달라는 거냐"고 말했다. 유가족들과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난항을 거듭하며 성사 여부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청년들이 일어나야 특별법 제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나 부마항쟁처럼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또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 지식인들이 함께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바랍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잖아요.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예수를 믿는 종교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사랑을 실천하지 말고 밖에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임온유 목사는 광화문과 청운동에 있는 유가족들을 지지하면서 자신은 팽목항에 좀 더 마음을 쏟겠다고 얘기했다. 그는 실종자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진도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는 "생명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 가슴 깊이 박혔다"고 말했다.

▲ 진도의 분위기는 무겁다. 임온유 목사는 몇 주째 월~수요일 팽목항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바지선으로 가서 실종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고 싶다며 피울음을 삼키고 있다. (사진 제공 임온유 목사)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추석 연휴 일정

추석 연휴인 9월 6일부터 10일까지 광화문 농성장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특별법 퀴즈 대회, 윷놀이, 연극, 노래 공연 등 세월호 유가족들을 외롭게 두지 않으려는 시민들이 연대의 장을 만들었다. 8일 추석 당일에는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가족 합동 기림상을 차리고, 이후 팽목항을 방문할 사람들은 함께 출발한다.

함께여는교회는 7일 주일 오전 11시 광화문에서 예배를 드린다. 함께여는교회 담임 방인성 목사는 8월 27일부터 광화문 농성장에서 무기한 단식 중이다. 교인들은 이후 청운동으로 이동해 노숙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 점심을 대접할 예정이다.

진도에는 이렇다 할 일정이 없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현재 진도 체육관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매우 침체돼 있으며, 수온이 떨어지고 물살이 거세지는 10월 중순부터는 수색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 힘들어하고 있다. 또 실종자 가족들은 자원봉사자 60여 명을 추석 연휴 동안 모두 귀가시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팽목항엔 추석이 없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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