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31일, 단식 8일째 날을 맞은 김홍술 목사(왼쪽)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성결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박찬희 목사. (사진 제공 박찬희)

광화문 7일째 아침을 맞는다. 전국 곳곳 목사 12명 결사 조직에 끼어 지난 월요일 도착했는데 금요일 저녁 토요일 아침 대부분 돌아갔다. 교회 예배를 위해…. 월요일엔 다시 올라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남은 자는 방인성 목사와 나. 방 목사는 40일을 작정하고 나보다 이틀 뒤 합류하였다. 도착한 다음 날은 회갑 생일날이었는데 마침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미 있는 회갑 선물이라면서 기뻐했다.

오늘 아침 방 목사는 S교회 예배에 설교 요청을 받았다면서 갔다 오겠다 한다. 내 왼쪽에 나보다 3일 먼저 오신 김 선생님이란 분은 내게 사우나에 같이 가자신다.

사실 매일 지하 회장실에서 양치와 세면은 해도 머리 감는 것과 몸을 씻는 것은 애로 사항이다. 한번은 밤 늦은 시간 장애인 전용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도 감고(내 머리는 상투를 올린 긴 머리카락임) 페트병 자른 것으로 물을 끼얹어 몸도 씻었다. 그런대로 개운했다. 입고 온 속옷도 세숫비누로 씻어 천막 내부에 대충 널 수 있었다.

근데 사우나라니 웬 호사인가 싶어 주춤거렸는데 방 목사가 따뜻한 물에 노폐물을 씻어 내면 좋다면서 등 떠민다. 그래서 새 속옷과 세면도구를 주섬주섬 챙겨 김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김 선생님은 올해 80세인 고령이신데 체격이 건장하셨다. 며칠간은 조용히 계서서 말을 못 붙이다 인사를 나눴는데, 참 겸손하시고 어지신 교장 선생님 같은 인상을 풍기셨다. 선생님은 사우나에 두 번 가 봤는데 처음엔 어렵게 찾았다며 앞장을 서신다.

사우나는 으리으리하게 큰 세종문화회관 뒷편 골목을 거쳐 큰 빌딩 지하였다. 우리 둘은 기운이 조금 부쳐 허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한참을 걸었다. 사우나에 들어서서 우선 벗은 몸을 보니 몰라보게 빠져 있었다. 그래서 먼저 저울 위에 올라가 봤다.

69.5kg. 놀랬다. 이 몸무게는 고등학교 당시 몸무게쯤으로 기억되는데 그간 수없이 금식 기도 했어도 74kg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는데…. 하기야 요즈음 꾸준히 새벽 조깅을 해서 평균 75~6kg를 유지한 거에 비하면 5~6kg 빠지는 건 당연한 결과인데 참 놀랐다.

우린 몸도 씻고 속옷도 빨고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아침이라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김 선생님은 고향이 전북 남원이셨는데 몇 년 전부터 사모님과 15평 남짓 되는 옛집을 고쳐 노부부 둘이 텃밭을 가꾸고 살았다. 서울 자녀집에 오가며 지내시다 세월호 정국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오셨다 한다. 떠나오실 때 연로한 사모님 혼자 적적한 시골집에 두고 오는 게 너무 걸렸다며 눈시울을 붉히시기도 했다.

매일 저녁 50대 아드님 한 분이 꼬박꼬박 찾아오는데 옆으로 나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아마 연로하신 아버지 단식 노숙을 너무 걱정하며 만류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20~30여 년 전 야당 국회의원을 2선을 하시면서 징역살이까지 하셨던 분인데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감추고 조용히 단식만 하시고 계셨다. 참으로 머리가 숙여지는 어른이셨다.

전 국회의원에 자녀들 번듯하니 두 내외가 시골서 시름없이 사셔야 할 분이 뭣 때문에 거친 광야 같은 광화문 광장에서 자동차 소음과 매연에 잠 못 이루며 10일간 단식을 이어 가야 한단 말인가? 언제까지 하실 거냐고 물으니 영 못 견딜 때까지라고만 답하시는 선생님.

10시 즈음 선배 C목사님 내외가 곱게 차려입고 나타나셨다. "형님 웬일이십니까? 주일인데…" 하니, "우리 교회 여기잖아" 하시는 게 아닌가. 아차. 목사님 내외는 건물 교회 목회를 하시지 않지…. 두 분은 좌정하고 성경을 한참 보다가 문득 나더러 사진도 한 장 찍자 하신다.

이윽고 분수대가 켜지고 어느덧 꼬맹이들의 천진한 물놀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천막마다 삼삼오오, "세월호 참사 국민 단식 1일째"라고 쓴 가슴띠를 붙인 아줌마 젊은이들이 눈앞에 오간다. 오늘도 광화문 광장의 슬픈 분노와 저항의 놀이는 이렇게 시작했다. 

▲ 김홍술 목사(애빈교회·사진 오른쪽 끝)가 광화문광장에서 나흘째 단식을 하던 날,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 김창규 목사(나눔교회), 김병균 목사(고막원교회)와 함께 찍은 사진.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글은 김홍술 목사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으로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