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발생한 지 10여 일이 지났다. 실종자 수는 290여 명에서 110여 명으로 줄었지만, 팽목항 주차장의 수백 대 응급차들은 경적을 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부모들은 생각보다 구조 작업이 늦어지자, 이제는 장례라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임요한(단원고·18) 군의 아버지 임온유 목사(성문교회)도 이와 같은 마음이다. 임 군은 지난 16일 인천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를 타고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던 중, 진도 앞 해상에서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한 할머니가 손자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울고 있다. 팽목항에는 있는 부모들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이다. 자식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들리는 건 야속한 파도 소리뿐이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나님께 다 맡겼어요."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 4월 21일 저녁. 기자가 처음 임 목사를 만난 곳은 진도가 아닌, 서울시 중랑구 하늘샘교회(문수진 목사)였다. 한창 현장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려야 하는데, 하늘샘교회 부흥회 때 설교와 기도회를 맡기로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임 목사는 TV에서 본 학부모들과는 달리 의연해 보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다 맡겼어요." 현재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임 목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임 목사도 처음부터 침착했던 것은 아니다. 사고가 일어난 4월 16일 오전 9시경.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임 목사는 교회로 달려가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둘러 부인과 딸을 데리고 진도로 내려갔다. 하지만 진도에는 아들을 포함한 29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진도실내체육관은 눈물 바다였다. 임 목사도 부인과 딸과 함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다른 부모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자식한테 연락해서 목소리도 듣고 문자도 주고받았다는데, 왜 자신은 아들에게 전화할 생각을 못 했는지" 임 목사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임 군은 임 목사에게 무척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18년 전, 서른여섯에 아들을 얻은 임 목사는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기도를 떠올렸다. 임 군도 아버지의 바람대로 목회자를 꿈꾸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임 군이 목사가 되겠다고 말했던 순간을 임 목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임 군은 주일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난 뒤, 오후에는 안산평촌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안산평촌교회 박두환 목사는 임 군이 초등학생 때부터 단 한 번도 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다며, 믿음이 좋은 아이였다고 했다.

임 목사는 하나님께서 임 군을 몇 번이나 살려 주셨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을 앓던 임 군이 6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초등학생 때 장파열을, 올해에는 급성늑막염을 겪으며 임 군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임 목사는 애초부터 임 군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했다.

▲ 계속해서 발견되는 시신들로 인해 진도실내체육관 분위기는 침울했다. 실종자의 시신을 인계받고 떠난 가족들의 빈자리는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더 허전하게 만들었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사고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4월 23일 오후. 진도공용터미널에서 임 군의 어머니 김금자 씨(49)에게 전화했다. "누구세요? 무슨 일이에요?" 낯선 전화번호에 놀란 듯 김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난 김 씨는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고, 팔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어느 아들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임 군은 김 씨에게 있어 특별한 아들이었다. 남편 임 목사가 국내와 중국·미국의 기도 집회에 다니느라 집을 비울 때,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은 임 군이었다. 김 씨는 임 군이 자신과 여동생 임찬양 양에게 "내가 지켜 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임 군은 그렇게 배려심이 깊고 착한 아들이었다. 어머니 김 씨와 여동생 임 양은 임 군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어요. 처음에는 아들이 무사히 구조되도록 기도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어요.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이잖아요. 주신 이도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래잖아요..." 김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는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있습니다."

학부모 대표단이 범정부재난대책본부에게 구조 작업 기한으로 제시한 24일 저녁. 임 목사를 다시 본 곳은 팽목항이었다. 임 목사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 청장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학부모들 무리 안에 있었다. 학부모의 불만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조류의 흐름이 가장 느린 '소조기'에도 불구하고 23일 밤 9시부터 24일 정오까지 발견된 시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고 있냐"라는 학부모의 질문에 김 청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고, 고성은 더욱 커졌다.

25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쉬고 있는 임 목사를 만났다. 팽목항에서 하룻밤을 꼬박 샜는지 지쳐 보였다. "시신이 벌써 180여 구나 발견됐대요. 나는 아직 요한이 얼굴도 못 봤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 목사는 다른 학부모들과 같이 의자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이들은 말없이 햇볕을 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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