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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져 버린 성경 족장 시대의 역사
성서와 고고학 : 초기 이스라엘(2)
  • 박태순 (ipccomae@empal.com)
  • 승인 2013.01.29 04:39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고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여러 학자의 노력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아모리 가설을 족장 시대에 적용하는 것, 연대 확정 등의 주장 가운데 많은 부분이 크게 수정되거나 포기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희미해져 버린 '역사'

먼저, 유목민의 침략이나 대규모 이주가 제3000년대 말엽 도시 몰락의 주된 요인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살았던 유목민들은 그 이전 시대에도 정착민이 살고 있던 도시들 곁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인구 과밀, 가뭄, 기근 등으로 도시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꼭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었을 수 있고 도시가 사라지자 유목민들의 임시 거주지들만 남게 되었던 것이죠.

일부 유목민들은 원래 사막 변두리 지역에 살다가 새로운 환경을 이용하여 이전에 정착민이 살던 지역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대규모의 이동과 이주는 없었습니다. 고고학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화적 변화는 유목민과 같은 외부인들이 들어옴으로써 생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올브라이트가 MB Ⅰ로 부른 시대가 실제로는 초기 청동기시대의 마지막 단계, 곧 도시-이후 단계였으며, 최근 학자들은 대체로 이 시대를 초기 청동기 Ⅳ(EB Ⅳ)로 부릅니다. 초기 청동기 Ⅳ(EB Ⅳ)에 침략이나 대규모의 이주가 없었다면 아브람의 떠돌이 생활을 이 시기에 연결시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12~25장의 도시들이 이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고고학 증거를 고려해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와는 달리, MB Ⅰ과 MB Ⅱ라 부르는 시기, 곧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에 유목민과 도시 거주민이 나란히 함께 살았던 시기의 상황은 성서의 족장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또한 수정된 아모리 가설은 족장 시대를 제3000년대가 아닌 제2000년대로 설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본다고 해도, 도시 거주민과 부족민(유목민과 촌락 거주민을 모두 포함하는)이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현상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방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아모리 가설을 부정하게 합니다.

톰슨(T. L. Thompson)은 그의 책 <족장서사의 사실성: 역사적 아브라함에 대한 탐구>(The 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Abraham. 2002)에서, 중기 청동기와 후기 청동기 사이에 대규모의 파괴가 있었다는 학설에 관해 반대하면서 '아모리가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서부셈족의 이름(특별히 아브라함, 야곱)은 어느 시대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흔한 이름이기에 그것이 아브라함의 역사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어('emw) 역시 아모리(Amurru)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사회 계층으로서 '부메랑 던지는 사람'일 것이며, 아모리인들이 대규모로 이집트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기근 등으로 인한 국내적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고고학적으로 제시되는 문화 재구성 역시 유목민(아모리) 문화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정착민들의 문화 유물이 많다는 거죠.

성서의 족장 이야기를 제2000년대 문서들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한때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졌던 누지 문서들에 관해 말하자면, 그 증거들을 통해 개인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 역시 널리 퍼져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관행을 반영할 뿐이지 아브람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전파시켰다고 볼 만한 독특한 관습을 보여 주는 아닙니다. 이를테면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람'이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중기 청동기 자료에서 식별하는 것은 불확실하거나 의심스럽습니다. 반면 이런 형태의 이름(아브람, 아비람)은 후기 청동기시대(기원전 1550~1200)의 문서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성서에서 아비람은 광야에서 모세에 대항하는 반란에 가담했던 이름(민 16:1)이며 기원전 9세기에 이스라엘 지배 아래의 여리고 성을 건설한 히엘의 맏아들 이름이기도 합니다(왕상 16:34).

또한 같은 구조를 가진 이름들이 아주 흔하게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아히람(Ahiram)과 줄임말 히람(Hiram)은 베냐민 지파의 한 씨족의 이름(민 26:38), 다윗 및 솔로몬과 동시에 살았던 페니키아 왕의 이름(삼하 5:11, 왕상 5), 그리고 솔로몬 성전 건축을 관리했던 장인의 이름(왕상 7:13)으로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페니키아 명문에서는 이 이름이 기원전 10세기 비블로스 왕과 기원전 8세기 두로 왕의 이름으로도 나옵니다.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이름 역시 고대 근동 역사에서는 골고루 나타납니다. '‘야곱'은 중기 청동기시대에 매우 흔하고 후기 청동기 자료에서도 보이며 그와 관련된 이름들이 엘레판틴(기원전 5세기)과 팔미린(기원전 1~3세기) 아람어에도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이름의 유사성을 갖고는 성서의 족장 이야기를 누지 문서와 연결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죠.

또한 창세기 이야기 속에 나오는 법률 관행과 사회 관습이 중기 청동기 연대 추정을 지지한다는 주장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올브라이트나 스파이저 등이 제안한 제2000년대의 유사점들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본 결과, 많은 유사점이 어느 특정한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자녀가 없는 사래가 남편에게 자신의 여종을 주는 장면(창 16:1~4)과 누지 문서의 유사점들은 독특한 것이 아닌데 이러한 것은 고대 바빌론, 고대 아시리아, 12세기 이집트 문서와 기원전 648년으로 추정되는 님루드(Nimrud)에서 나온 결혼 계약서에도 나타납니다. 사

래가 아브라함의 누이이면서 동시에 아내라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스파이저가 인용한 계약서를 살펴보면, 어떤 여자를 누이로 받아들인 '오빠'가 보통은 그 여자의 장래의 남편이 아닙니다. '오빠'가 나중에 실제로 자기 '누이'와 결혼하는 경우가 한 번 있기는 하지만 이는 이전에 동생으로 입양했던 입양 문서를 나중에 결혼 문서로 대체해야 했을 정도로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더구나 성서에서 아내를 여동생으로 지칭한 경우는 법적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속임수의 사건에서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이어지는 문제점들

대부분의 학자는 솔로몬이 기원전 930년쯤에 죽었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열왕기상 11장 42절에 따르면 그는 40년간 통치합니다. 따라서 성전 공사가 시작된 솔로몬 제위 4년은 기원전 966년 전후였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기준으로 주요 연대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2091년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떠남 1876년 야곱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감 1446년 출애굽 966년 솔로몬이 성전 건축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족장들의 수명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야곱의 아들 레위의 4대손인데(역대상 6:1~3), 이집트 노예의 430년은 레위부터 모세와 아론에 이르는 3세대의 기간으로는 너무 깁니다(한 세대가 무려 143년). 무리를 해서 한 세대를 143년으로 잡는다 해도 모세와 같이 활약했던 여호수아가 레위의 형제인 요셉의 12대 손이었다는 것과도 모순이 생깁니다(역대상 7:20~27). 만약 역대상 7장을 기준으로 세대를 따르면 요셉부터 여호수아까지 열한 세대는 세대 당 평균 39년이 되기에 어느 정도 해결은 되지만 이 또한 성서끼리 충돌하게 됩니다. 둘째, 이 연대 방식은 고고학 증거와 어긋납니다. 출애굽이 기원전 1446년에 일어났다면 가나안 정복은 40년 뒤인(광야 생활 40년 뒤) 1406년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원전 15세기 말(1400년대)에는 가나안 지역에서 대규모 파괴나 인구 변동에 관한 고고학 증거가 없으며 가나안 지역의 물질문화의 변화와 인구 증가는 기원전 13세기 이후에나 나타납니다. 

족장 이야기의 최종 편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것은 '낙타'와 '블레셋'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파는 이야기(창 37:25)와 같은 경우 낙타는 대상 무역에서 짐을 옮기는 짐승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핑컬스타인에 따르면 고고학 연구를 통해 낙타가 짐을 옮기는 사육동물로 드러난 것은 2천 년대 말기 이후였으며, 낙타를 운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길들이게 된 것은 기원전 15세기와 13세기 아라비아 오지에서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에서는 낙타를 이용한 유목민들이 기드온 시대에 등장합니다(삿 6~8장). 따라서 낙타를 언급하는 창세기 12장 16절과 24장 등은 후대의 청중들에게 이야기들을 더욱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하여 나중에 삽입된 시대착오적인 묘사일 확률이 높습니다(브라이트, 110). 오히려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 알게 되는 것은, 기원전 8~7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의 관할 아래 번영했던 아라비아 무역의 주요 물품들이 낙타 대상이 운반한 수지, 향료, 몰약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14장 14절에 나오는 단(Dan)에 관한 언급(삿 18:29 참조), 창세기 21장 32~34절 및 26장에 나오는 블레셋인들에 관한 언급도 시대착오적인 기록입니다. 에게 해 또는 동부 지중해에서 이주한 민족 집단인 블레셋인들은 기원전 1200년이 될 때까지는 가나안의 해안 평야에 대규모의 정착지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건설한 여러 도시는 기원전 11세기와 10세기에 번영했으며 아시리아 시대까지 그 지역을 계속 지배했습니다. 이삭 이야기에서 그랄이 블렛 도시라고 언급된 것과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그 도시가 언급된 것은 그 도시가 족장들 이야기를 집필할 당시 특별히 중요했거나 적어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창 20:1).

낙타와 아라비아 상품, 블레셋인, 그랄의 결합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이 모든 단서는 성경에 기록된 족장들이 실제로는 수많은 시간이 지나간 뒤 편집된 후대 시기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무대는 후기 청동기시대 아얄론 계속과 벳-스안 중부 산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기원전 1200년경에는 인구가 매우 적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전승이 유목민들 사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유목민들은 아브람, 혹은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는 지역 영웅을 숭배했고 아마도 이미 족장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아브람(아브라함)에 관해 알 수 있는 전부입니다. 아무리 보수적인 학자라고 해도 성서 속의 족장 이야기의 역사를 증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창세기 족장 이야기에서 실제 역사를 찾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존 브라이트의 말이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유감스럽지만 외적 증거에 의거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성경이 말해 주는 것 외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며, 성경의 설화의 자세한 내용을 정말하게 검토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리고 족장 시대의 연대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도 없다…. 족장들의 생애에 관하여 성경에 나온 내용에 아무것도 더할 수 없다(존 브라이트)."

그렇다면 족장 이야기에서 역사는 전혀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족장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족장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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