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진정한 최소주의자들(minimalists)은 스스로를 수정주의자들(revisionists)이라고 부르는 학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구약성서를 기원전 5~2세기 작품으로 보며, 구약성서에서 실제적인 역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필립 데이비스

수정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은 아마도 데이비스(Philip R. Davies)가 1992년에 쓴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In Search of 'Ancient Israel')일 것입니다. 160여 쪽에 불과한 이 책에서 데이비스는 다른 민족과 고고학적으로 구분되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없으며, 성서에서 묘사하는 '이스라엘'은 고고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는 다른 이스라엘이라고 봅니다. 데이비스는 '이스라엘'을 세 부류로 구분합니다. (1) '역사적' 이스라엘로, 철기시대 팔레스타인 사람들 (2) 성서적 또는 '문자적' 이스라엘 (3) '고대 이스라엘'로 이는 (1)과 (2)를 가지고 현대 성서학자들이 창조해 낸 이스라엘.

(2)와 (3)의 이스라엘은 사회적인 고안품(Social constructs)일 뿐 허구라는 겁니다. 역사적(historial) 이스라엘은 고고학 등의 객관적인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에 증명할 수 없고 단지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재구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서 속의 이스라엘은 실제가 아닌 단지 문학적인 이스라엘이며, 성서 연구의 학문적 창작품(a scholarly creation)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누가 성서 문학을 썼을까? 그는 성서 문학의 대부분을 기원전 5~3세기에 쓰인 것으로 봅니다. 고대 세계의 문맹률이 95%나 되기에 성서와 같은 문학은 개인이 아닌, 하나의 계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 경제·정치의 역학 관계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겁니다. 성서를 기록한 이들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있었던 기원전 6세기 경 페르시아 시대 예후드 (Yehud) 지방에서 살았던 서기관 학파였다고 봅니다. 이들은 성전 또는 궁전에 고용되었거나 지원을 받은 엘리트들로서 아마도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라는 거죠.

데이비스는 신학의 '성서'(the Bible)는 하나의 '이상'(ideal ones)일 뿐 실제적인 성서들(real bibles)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창세기 2~3장의 죄와 불순종에 관한 해석을 거부하고(사실 죄, 불순종이라는 낱말이 2~3장에는 없습니다), 이를 인간 창조에 대한 신의 의도를 성취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합니다. 곧 사람들은 불순종에 의해서만 신(神)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봄으로써, 남성 신, 남성 기록자, 남성 독자(讀者)에 의해 희생되었던 여성이 실제로는 생명과 지혜의 전달자라고 해석합니다.

렘케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닐스 피터 렘케(Niels Peter Lemche)라는 성서학자가 도발적이지만 널리 인정받은 책을 내놓았는데, 1985년도 판으로 <초기 이스라엘: 왕조 이전 이스라엘 사회에 대한 인류학과 역사적 연구>(Early Israel: Anthropological and Historical Studies on the Israelite Society Before the Monarchy)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그는 매우 급진적인 관점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오늘날 읽고 있는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는 철기 시대, 곧 다윗 왕조 시대의 문헌이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2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진(편집된 수준이 아니라) '경건한 선전 문구'(pious propaganda)라는 거죠. 히브리 성서는 시대의 산물로서, 헬레니즘 시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정체성 혼란을 막고 자신들의 혈통을 지켜 나가려는 허구적인 이스라엘의 신화적인 역사라는 입장입니다.

1998년에 렘케는 <역사와 전통 속의 이스라엘>(The Israelites in History and Tradition)에서 히브리 성서는 역사적인 자료로서는 부족하기에 고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 자체로 문학적 상상의 부산물로서 그 역사는 실제가 아니라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기와 같은 신화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실체가 없는 역사를 형성시켰던 자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허구라는 주장입니다.

그는 족장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은 허구이며, 성서는 페르시아 시기에 저작된 것이기에 성서는 역사로서가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렘케는 수정주의자들과 대립하는 윌리엄 데버(Dever)를 '시온주의자'라고 비난했으며 데버는 그를 '나치주의자'라고 맞받아쳤습니다.

톰슨

톰슨(Thomas L. Thompson)은 1974년에 쓴 <족장 내러티브의 역사성>(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에서 올브라이트와 대립했고 1992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 기록된 것에서부터 고고학 자료들까지>(Early History of the Israelite People from the Written and Archaeological Sources)에서 팔레스타인의 세속 역사(실제 역사)를 찾으려 시도합니다. 1994년에 그는 수정주의자 입장에서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를 언급하는데 400쪽이 넘는 분량의 <신화적 과거: 성서 고고학과 이스라엘의 신화>(The Mythic Past: Biblical Archaeology and the Myth of Israel)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神) 야웨조차 성서가 이해하는 신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동기시대에 도시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고학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 문화로부터 구별하지 못한다. 철기시대 1기(기원전 12~11세기)에 고유한 이스라엘의 존재에 주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울과 다윗 왕은 아더 왕(Arthur) 같이 전설일 뿐이다. 모든 유다 고지대에 거주한 농부들은 단시 수십 가구에 불과하기에 7세기까지의 유다 왕국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서야 정치·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개념은 그리스 또는 페르시아 시대의 문화적이고 신학적인 창조물이다. 히브리 성서는 유대인들의 창작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남부 시리아 주민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장 극단적인 수정주의자 입장에 서 있습니다.

휘틀렘

1996년도 작품,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침묵당한 팔레스타인의 역사>(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에서 그는 현대의 '경건한' 기독교인들과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국수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스라엘을 '발명'(invented)해 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세기 성서학자들의 주된 정치적 이념은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권리에는 침묵함으로써 근대 이스라엘 건국의 합법성을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얼만 전에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는데요(키스 W. 휘틀럼,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침묵당한 팔레스타인의 역사>, 김문호 옮김, 이산 펴냄), 성서 속의 '고대 이스라엘'은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성서 학계는 단지 성서를 잘못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후퇴한 제국주의'에 말려들었고 팔레스타인 역사를 침탈·말살했다는 겁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관한 역사와 연구서들은 서유럽 학자들에 의해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이스라엘과 갈등 관계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는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그의 경험에 비추어서 성서의 해석과 해석의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고대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성서학자들에 의해 '발명된'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단 하나의 실체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다고 주장합니다.

데버(Dever)는 휘틀렘이 정치학을 근동 고고학 속으로 불필요하게 끌고 들어왔다고 비판합니다. 휘틀렘이 주장한 것(역사학자들이나 성서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역사를 쓰지 않았다는)과 달리 고고학자들은 100년 동안이나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써 내려왔으며 이들의 역사는 모든 이들의 역사라는 반론을 펼칩니다.

핑컬스타인

최근에 수정주의자 쪽으로 돌아선 텔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핑컬스타인(Israel Finkelstein)은 2001년에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The Bible unearthed)를 출간했습니다. 그는 수정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온건한 편이며 유능한 고고학자로서 다양한 고고학 증거를 근거로 성서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원래 유목민이었다가 나중에 농민으로 정착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서가 묘사하는 것처럼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원래 가나안 사람들이었으며, 야웨 신앙은 출애굽이 아닌 포로기 시대에 삽입된 것이며,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은 왕국이 아니라 촌락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입니다. 다른 수정주의자들과는 달리 핑컬스타인은 실력 있는 고고학자이기에 자신의 주장을 하나의 학설로서가 아니라 고고학적인 논증과 증거를 동원해서 풀어갑니다. 휘틀렘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과 함께 핑컬스타인의 이 책은 아주 유익한 책입니다.

수정주의자들의 견해가 구약성서의 역사성에 매우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현대 이스라엘 중심의 성서학과 고고학 연구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각입니다. 넓게 보면, 수정주의자들은 성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 도전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해석해서 십자군 전쟁, 중세 식민지 전쟁, 아랍 민족과의 전쟁 등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과격하고 때로는 '참람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친(親)유럽, 친미, 친이스라엘 세계관이 균형을 잡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물론 수정주의자들의 한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최근의 탐구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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