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1장은 워낙 오래된 이야기로 역사성을 증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12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데라의 아들 아브람이 조상 대대로 살던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Ur, 오늘날 유프라테스 강 하류 서쪽으로 약 16㎞)를 떠나면서 족장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창세기 14장에는 평원에 있는 다섯 도시(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 혹은 소알)의 왕들이 메소포타미아 동쪽에 있던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네 왕의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돌라오멜, 시날 왕 아므라벨의 이름은 메소포타미아 기록에서 찾을 수 없으며 살렘 왕 멜기세덱 역시 성서를 벗어나면 흔적도 없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창 20장, 26장)도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헤브론의 유지였던 헷 사람 에브론(23장), 세겜의 지도자인 하몰(34장), 보디발(39장), 그리고 창세기 36:31~39의 에돔의 왕들도 찾을 수 없습니다.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을 찾아서

족장 이야기는 적어도 3단계의 기록 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장 이른 것은 기원전 10세기이며 가장 늦은 것은 바벨론의 예루살렘 함락(기원전 587년~6년)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록의 층들은 제2성전 시대(기원전 538년 이후), 또는 일러야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587~6년~538년)에 한데 모아져서 오늘날의 형태로 편집되었습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족장 이야기가 비록 후대에 쓰인 것이기는 해도 이러한 자료들이 더 이른 시기(족장 이야기의 실제 배경이 되는 시기)부터 유래하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전승들에 기초하고 있다고 봅니다.

올브라이트 학파

탁월하고 위대한 신학자인 윌리엄 F.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와 그의 제자들은 족장 이야기에 나오는 세부 자료(사람 이름, 사회적 관습, 법적 절차, 생활 풍속)는 기원전 2000년대의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가나안 등의 문화 특징과 잘 들어맞는다고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창세기의 묘사는 역사적(historical)이다. 전기적 세부 사항의 일반적인 정밀도와 족장들의 생생한 삶의 묘사는 의심할 이유가 없다." -올브라이트

올브라이트의 수제자인 G. 라이트(G. Ernest Wright)에 따르면,

"아브람이 실존 인물이라거나, 이런 저런 일을 했다거나, 이런 저런 말을 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마도 결코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삶과 시대가 제2000년대 초기와는 완벽하게 들어맞지만, 그 이후의 다른 시대와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은 증명할 수 있다." - 라이트

성경은 이스라엘이 모압, 암몬, 에돔(창 19:30~38, 36장)만이 아니라 미디안과 아라비아 부족들(25:1~5, 12~18)과도 혈연관계가 있다고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은 특히 아람인들(기원전 2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대규모로 이집트로 이동)과 강한 혈연관계가 있는데, 그들의 메소포타미아 친척들의 고향은 아람-나하라임이나 밧단아람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라반은 거듭 아람 사람으로 불립니다(창 25:20, 28:1~7, 31:20, 24). 창세기 22:20~24에는 아람 사람과 갈대아 사람이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후손으로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신 26:5)"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이를 근거로 해서 학계에서는 성서의 족장들을 아모리 사람(아람 사람)과 같은 인물들로 보며 이것을 '아모리 가설(Amorite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올브라이트는 자신이 기원전 2100~1900년으로 잡은 이 시기를 중기 청동기 시대(Middle Bronze I: MB I)로 불렀습니다.

라이트의 제자인 존 브라이트는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첫째,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언 형상과 유사한 현상들이 마리 문서(시리아, 유프라테스 강 중류의 '마리'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2만 장 이상 되는 점토판 문서. 대부분 기원전 18세기의 야스마하 아다드 왕 시대와 짐릴림 왕 시대의 것으로, 외교·의식·역사·상업·행정 문서 등)에서도 나온다. 이러한 문헌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습과 제도들이 이스라엘 선조들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마리(Mari) 문서에서도 볼 수 있는 예언 제도는 이스라엘에서 사사 시대(드보라, 사무엘 등)에는 이미 확립되어 있었고, 처음부터 이스라엘 종교 생활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곧 비슷한 문화 환경으로부터 이주해 온 선조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에 전해졌을 것이다.

둘째, 계약 법전(출 21~23장)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판례법이 에쉬눈나(Eshnunna)법전과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잘 드러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법률 전승과 비슷하다. 따라서 기원전 2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의 사법 전승들을 알고 있었던 이들이 이주해 오면서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전해졌다고 추론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셋째, 창세기 2장의 창조 설화와 6~9장의 홍수 이야기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온 자료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이런 이야기는 가나안이나 이집트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메소포타미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창세기 시원사(창세기 1~11장) 배후에 있는 전승들은 기원전 2000년대 전반에 이주해 온 집단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물론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이스라엘의 선조들도 끼어 있었던 일부 아모리인들이 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족장들이 2000년대에 그 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왔다는 성경 전승의 역사성은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브라이트는 성경 자체에서 나오는 증거 자료가 지닌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브라이트가 창세기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강력한 이유는, "고고학 역시 족장 이야기의 실제성을 부정하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폅니다.

또 다른 시도들

많은 학자가 올브라이트처럼 엄격하게 족장 시대의 아브라함 단계를 MB Ⅰ(중기 청동기 Ⅰ)로, 야곱 단계를 MB ⅡB(중기 청도기 ⅡB)로 추정하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연대를 제시합니다. G. E. 라이트는 "간단히 말해, 족장 이야기는 제2000년대 초의 배경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올브라이트가 주장한 MB Ⅰ시대에는 실제로 '도시'와 연관된 고고학 유적이 나오지 않는 난감한 상황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성서의 아브라함 시기에는 몇몇 도시 이야기가 나온다. 요단 계곡의 여러 도시들(창 14:2), 블레셋 도시 그랄(창 20:1), 요새화 된 도시 헤브론(창 23:2)). 그러므로 그것보다는 더 나중 시기인 MB ⅡB로의 재도시화 시대와 족장 시대를 동일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중심 도시들 가까운 곳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이는 MB ⅡB의 마리(Mari)나 다른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유목민과 도시민의 공존 생활과 비슷한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타당한 듯 보입니다.


연대-기원전
 
고고학적 시대
 
올브라이트의 분류
 
올브라이트의 연대
 
2250~2000
 
EBⅣ(Early Bronze)
 
MBⅠ(아브라함?)
 
2100~1900
 
2000~1800
 
MBⅠ(Middle Bronze)
 
MBⅡA
 
1900~1750
 
1800~1630
 
MBⅡ
 
MBⅡB(야곱?)
 
1700~1600
 
1630~1550
 
MBⅢ
 
MBⅡC
 
1600~1550
 

그들은 성서의 족장들과 제2000년대(특히 MB ⅡB)의 연관성을 보여 주기 위해 특히 창세기 12~50장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 비슷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첫째, '야곱'이라는 이름은 제2000년대 초기 자료에 일곱 번 나타나며 '아브람'이라는 이름도 같은 시기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나 '요셉'과 같은 예는 남아 있지 않지만 두 이름 모두 '모리어 형태'이므로 이 주장은 족장 시대에 나오는 성서 인명이 제2000년대 초의 역사적 맥락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이죠.

둘째, 올브라이트나 에프레임 A. 스파이저(E. A. Speiser)는 제2000년대의 성서 이외의 문서에 나오는 사회, 법률 관행들이 족장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누지(Nuzi)에서 나온 설형문자 문서들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누지 토판은 제2000년대 중기에 동 티그리스 지역에서 번영했던 민족인 후리 사람들(Hurrians)의 관행과 관습을 반영하고 있는 토판입니다. 족장들을 후리 왕국 미타니(Mitanni)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려는 학자는 없었지만 이 시기에 후리 사람들이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까지 널리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학자들은 후리 사람들과 족장들 사이에 수많은 연결 고리를 제안했습니다. 누지의 결혼 계약서에 보면 자녀를 낳지 못하는 부인은 남편에게 여종을 주어 자녀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 16:1~4의 하갈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은 나중에 쫓아낼 수가 없으며 이는 창세기 21:10~11의 이스마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주장입니다.

"실질적인 혈연관계와 무관하게 아내를 남편의 누이로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법을 보면, 후리 사회에서 한 남편의 아내는 특별한 지위와 보호를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 역할은 아내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다." -스파이저

그에 따르면 창세기에서 아브라함(12:10~20, 20:1~18)이, 그리고 나중에 이삭(26:6~11)이 자기 아내를 누이로 소개하는 일화들의 배경에 이 관습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전반적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많은 사회‧법률 관습이 제2000년대 중기나 초기의 관행과 비슷하지만, 그 후대의 관행과는 유사점이 없기에 성서 전승이 제2000년대의 '실질적 역사성'을 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학자는 창세기 14:14의 히브리어 '하닠'(훈련된)과 14:23의 '미후트 베아드 쉐록-나알(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과 같은 낱말이 기원전 15세기에 쓰인 표현이기에 창세기 14장이 고대의 것임을 입증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어떻게 고고학과 어긋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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